【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가 자박자박 흥행가도를 걷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도중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불과 스물여덟의 나이로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짧은 생애가 영화를 통해 정연하게 재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미덕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는 윤동주의 시를 일제치하의 괴로운 장면들과 함께 읽음으로써 그의 시가 머금고 있는 간단치 않은 무게와 깊이를 시각화했다는데 있다.예컨대 옥에서 생체실험의 일환으로 정체불명의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으며 각혈을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지난 20일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1986년 영화화된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작가’로 규정짓기는 무색할 정도로 다방면에 해박한 지성과 반짝이는 통찰이 돋보이는 ‘지성인’ 중 한 명이었다.국내에 번역된 에코의 책만 해도 수십 권에 이르기에 이를 모두 섭렵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러잖아도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은데 한 작가가 이토록 다작을 남겼다니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바야흐로 에코와 같은 이로 대표되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2016년 1월 18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독문학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어릴 적부터 철학자를 꿈꾸었던 그는 독일로 유학했으나 교수자격시험에서 아쉽게도 낙방했다. 이후 그는 방송국과 출판사 등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대중에 감화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철학계의 문법과도 괴리되지 않은 소설, 즉 철학과 훌륭히 결합한 소설을 쓰고자 노력해왔다.그 노력의 충실한 결실로 탈고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뼈?투르니에의 데뷔작이자 그를 단숨에 프랑스 문단의 스타로 만든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니체는 19세기 말 과도기적 세계의 피안에 홀로 서서 근대 사회가 쌓아온 가치와 진리를 부정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 그로 인한 경제의 발전은 겉보기에는 인류의 진보를 보란 듯이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민한 심성을 소유한 니체의 눈에는 그 찬란한 성과들의 저변에서 서서히 곪아 오르는 몰락의 징후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언명대로 ‘신은 죽은’ 시대의 인간들을 향해 니체는 쓴 소리를 내뱉는다. “슬프구나! 인간이 더 이상 아무런 별도 낳지 않게 될 때가 오고 있다. 슬프구나! 자기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하나의 이데올로기가 한 사회를 오래도록 지배할 때, 그 사회는 외견상 탈(脫)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어떤 사회보다도 이데올로기와 깊이 연루돼 있다. 이데올로기는 마치 자연 법칙처럼 사회 전반에 각인돼 있다. 따라서 사회의 표면적인 현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때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사실을 드러내려면, 재현은 결코 사실적이지 않아야 한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독주하며 세계의 지배 논리로 굳어가던 1950년대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1911년 취리히에서 태어난 막스 프리쉬 Max Frisch는 20세기 스위스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그가 살던 시기의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독재정치로 몸살을 앓는 격랑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스위스는 전쟁을 관망하며 ‘중립’을 고수하였으나 외부 정세에 대해 마냥 초연할 수만은 없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겉보기에 평온해보이지만 내면에는 불안을 품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한없이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속으로는 이방인에 적대적인 이중의 정서를 가질 수밖에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가 시집 코너에 떡하니 놓여 있는 두툼한 시집을 보았는데 이름 하여 『시밤』이었다. SNS에 올린 시들을 엮어낸 것으로 ‘시 읽는 밤’의 줄임말이란다. 재치 있는 제목에 눈길이 가고,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하는 짧은 시들을 큼직하고 예쁘게 인쇄해놓아 손길이 가고, 웃음이 나오고 무릎을 절로 치게 하는 문장들이 종잇장을 거푸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는 시집이었다. 저자의 이력 또한 “시팔이, 시 잉여 송라이터, 센스머신, 시POP 가수” 등 ‘시인’이라는 두 음절은 지루하다는 듯 퍽 감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신들의 복잡한 가정사로 뒤얽힌 그리스 신화에는 아버지에 대적하는 아들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남편인 우라노스가 자식들을 자궁에 가둬놓고 핍박하자 이를 참다못한 막내아들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거시기를 낫으로 쑹덩 잘라내 영원히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권좌에 오른 크로노스 또한 무려 10년씩이나 전쟁을 치른 끝에 자신의 막내아들인 제우스에게 자리를 내놓게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반목은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며, 이것이 제대로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우리에게 서정시 「로렐라이」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본색은 꼭 서정적이지만은 않다. 그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서정성은 표면적으로는 사촌 아말리에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을 꼽는다면, 아마도 젊은 나이에 독일을 떠나 생을 마칠 때까지 프랑스 파리에 묶여 지내며 갖게 된 향수(鄕愁)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한 연모가 클수록 그것이 변질되는데 대한 애정 어린 고언(苦言) 또한 혹독해지는 법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혼란한 시리아를 탈출하여 독일로 건너가려다 목숨을 잃고 터키 해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유럽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또한 과반수의 독일 유권자들이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어 그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일정 부분 모르쇠로 일관하며 문제를 키워오던 그들이 사진 한 장에 호들갑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에 등장하는 르네 미셸은 부유층이 주로 사는 고급 아파트를 27년 동안 관리하고 있는 수위 아줌마다. 늙은 과부에 못생기고 뚱뚱한데다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쉰네 살 먹은 아줌마를 아파트 주민들은 눈여겨보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라는 범주로 고착시킨 사회적인 믿음”을 충족시키는 자신의 외양을 가면으로 삼아 수위실에서 남들 몰래 고상한 부르주아적 취향을 만끽하는 것. 그녀는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난해하고 두꺼운 철학 서적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여름에는 볕을 피하기 위해, 겨울에는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종종 모자를 쓴다. 또한 요즘 사람들에게 모자는 패션의 완성을 위해 간과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능적인 용도나 패션의 용도에 앞서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드러내고 그에 맞춰 격식을 차리기 위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모자를 쓰게 하였을 것이다. 모자는 한 사람의 인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머리 위에 오른다는 점에서 다른 신체 부위에 착용하는 여타 의복에 비해 그러한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모자는 남다른 존재감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한국사람 치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포하는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의 한 자리에는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가 빠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 정확히 어떤 계기로 『데미안』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데미안』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유년 시절의 한 켠에 놓여 있었고,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헤세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감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특히 작품 속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나는 책이 좋고 문학이 좋아 문학도가 되고 최근에는 운 좋게도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하지만 책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나 정말 갖고 싶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도서관에서 빌려보자는 것이 나의 오랜 원칙이었다. 책 수집광인 남편을 둔 덕에 이제는 그 원칙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분간은 고수할 수밖에 없다. 문화평론을 하고 책을 쓰는 남편과 문학평론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는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책 쇼핑은커녕 마트 쇼핑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누구 말마따나 밥 없이는 못 살아도 책 없이는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어렸을 적 나에게 집이란 곧 ‘아파트’였다. 1980년대 이후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랐다. 이사를 심심찮게 했지만 그것도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가령 102동에서 107동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사라기보다는 타워 크레인에 매달린 궤짝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며 궤도를 수정하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에 나오는 ‘민’의 표현을 빌면 우리들 대부분은 “공중에 들린 채로 유아기를 보낸” 아파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5월 20일 중동 바레인에서 입국한 한 내국인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채로 평택성모병원 등을 방문한 뒤로, 감염자와 감염 위험지역이 일파만파로 퍼져가고 있다. 이 와중에 2013년 개봉되었던 영화 가 현 상황과 거의 흡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호흡기를 통해 순식간에 감염되는 극악한 바이러스가 한국을 침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격리되고 도시는 폐쇄되는 등, 영화는 최악의 재난 사태를 그리고 있다. 감독은 2003년 메르스의 사촌 격인 사스(SARS)가 대대적으로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여러분은 혹시 초등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시’가 있으신지? 혹은 학교에서 배운 ‘시’ 중에 여태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어릴 적에 읽은 시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은 당시 한창 인기를 얻었던 류시화의 이 전부다. 생일 선물로 받은 그 시집에 나는 단박에 매료되었고, 류시화의 다른 시집들은 물론 그가 번역한 잠언 시집들도 꾸역꾸역 수집하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분명 그 시대의 유행이었을텐데 당시 학교 수업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고,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정신분석의 창시자이자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문명이 태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으로 ‘부친 살해Vatertotung’를 말한다. 인류 역사의 기원에는 모든 권력과 쾌락을 독점하는 ‘원초적인 아버지Urvater’가 군림하고 있다. 그의 아들들은 절대적인 아버지를 선망하는 동시에 증오하기에 공모 끝에 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누리게 되지만 죽은 아버지는 없어지지 않고 사회를 작동시키는 ‘법’이 되어, 또한 아들들의 마음속에 ‘죄의식’으로 뿌리를 내려 영생한다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JTBC의 인기 예능프로 는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 경합을 벌이는 구도이다. 이 때 셰프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요리 재료는 오로지 출연한 게스트들의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신선한 재미를 자아낸다. 제작진은 게스트의 집에서 냉장고를 통째로 뜯어와 세트장에 고이 모셔다놓는 엉뚱한 재치를 발휘하여, 남의 집 냉장고를 활짝 열어놓고 샅샅이 탐사하는 관음증에 가까운 재미까지 선사한다.냉장고 속 재료는 게스트의 성별, 가족구성, 취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투데이신문 이은지 칼럼니스트】20세기 독일의 위대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극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서사극Episches Theater’이란 관객들이 무비판적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드라마적인 연극을 배척하고, 사건을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연극을 일컫는다. 극적이고 인과적으로 연출되는 기존의 연극과 달리 서사극은 장면들의 관계가 느슨하고, 극중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들이 끊임없이 개입한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경기 불황으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독일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