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드라마 중에 ‘퀸스 갬빗’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체스 천재인 주인공 베스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어머니로 인해 불안정한 양육환경에서 자란 베스. 어린 베스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마저 잃고 보육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변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 말수 적은 소녀가 된다.베스는 보육원에서 우연히 체스를 접한다. 세상으로부터 감정적으로 고립돼 있던 그는 체스의 세계에 순식간에 빠져든다. 자신의 높은 지능을 체스에 대한 집착에 쏟으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웃을 일이 없다가 최근 간만에 웃은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놀랍고 당황해서 나온 헛웃음이다.첫번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다. 그는 발언의 이유로 “법무장관은 정치인이고, 정무직 공무원이다. 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멀다”라고 했다.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윤 총장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헌법의 구현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인터넷으로 뭘 검색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늘 그렇듯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흘러간 곳은 지능지수(IQ) 테스트 사이트들.사람의 지능을 측정하는 방법은 종류도 다양하고 표준편차도 제 각각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IQ 테스트들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데, 대개 멘사 샘플 테스트를 본 딴 도형 풀이 방식이다. 언어가 방해되지 않고 멘사라는 이름값까지 있으니 많은 사이트에서 사랑받는 모양이다.몇 나라의 멘사 샘플 테스트와 잡다한 사이트의 문제를 풀다가 재미난 광경을 목격했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 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갑을 잃어버렸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카드 몇 장도 함께 사라졌다.신분증과 카드라니. 잃어버린 곳으로 의심되는 전철역 주변을 꽤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얼른 다음 조치를 취해야 피해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지갑 찾는 건 빠르게 포기했다.먼저 카드사에 전화해서 이용정지를 신청했다. 상담원은 신분확인을 거친 후 카드를 정지시켜줬다. 전화를 통한 카드재발급은 수령까지 며칠 걸린다길래 다음날 직접 은행에 가서 재발급 받기로 했다. 주민등록증은 정부24 앱을 이용하면 아무 때나 분실신고를 할 수 있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병원에 가면 늘 보는 장면이 있다.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의사’나 ‘의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꼭 뒤에 선생님을 붙인다.선생(先生)이란 낱말을 한자 그대로 풀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여기엔 자연스럽게 두 가지 의미가 담긴다. 하나는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먼저 태어나 익힌 게 많은 사람은 뒤에 태어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을 전수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지시하고 따르도록 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적대적인 자연환경에 맞서기 위해 집단을 조직하고 이를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하루 전 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고소됐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피고소인이 망자가 되어 없으니 사건의 실체를 알기 전까진 고소인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과, 그런 말로 피해자를 위축시키지 말라는 사람들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 그러나 이런 갈등에서 사건의 실체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뉴스를 접한 다음날,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의 ‘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보았다. 다른 출연자들은 배를 잡으며 웃고 있었다. ‘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교정해 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개통령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강형욱 훈련사가 의뢰인을 찾아가 원인을 짚고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최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의뢰인이 화제가 됐다. 강 훈련사가 견종의 특성상 반려견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내보내야 한다고 무릎까지 꿇고 설득했지만, 의뢰인과 그의 어머니는 이 전문가의 제안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방송은 그 상태로 끝이 났다. 방송이 나간 후에 소란이 일었다. 의뢰인이 과거에 반려동물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매일 해질녘이 되면 집 근처 홍제천을 따라 걷는다. 코로나 19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천 주변 산책로에는 마스크를 쓰고 기어이 나온 사람들로 늘 붐빈다. 일정한 거리를 걷고 반환점 삼아 돌아오는 다리가 있다. 이 낮은 다리 한가운데서 내려다보면, 얕은 물 아래 한 평 남짓의 모랫바닥이 있다. 그곳에 민물고기인 버들치가 떼를 지어 산다.요즘 들어 유난히 그곳의 수면이 요동을 쳤다. 며칠은 그냥 궁금해하며 지나쳤는데 얼마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가만히 지켜보니 8자를 그리며 일정한 영역을 지키느라 바쁜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1994년에 상영됐다. 이 영화는 안정효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주인공 명길은 그저 그런 영화 조감독. 그의 친구 병석은 어릴 때부터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들과 대사를 통째로 외우던 영화광이다. 어느 날 명길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병석으로부터 평생의 집념이 담긴 시나리오 한 편을 건네받는다.명길은 병석의 완벽한 시나리오에 탄복하고 연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영화를 찍으면서 그 시나리오가 헐리우드 영화들을 온통 짜깁기했음을 눈치 챈다. 그는 양심의 가책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아킬레스는 달리기가 무척 빨랐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니 평범한 인간의 속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아킬레스도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유명한 역설이 있다.아킬레스가 거북이 보다 10배 빠르다고 가정하자. 거북이는 느리니까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도록 해준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킬레스가 100미터를 달려가는 사이 거북이는 10미터 전진해 있다. 아킬레스가 10미터를 더 달리면 다시 1미터 앞에, 1미터 더 달리면 0.1미터 앞에 거북이가 있다. 이러면 둘의 거리는 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대중서 ‘인류의 기원’을 쓴 이상희 교수는 인류에게 조부모가 급증한 시기를 다룬 논문으로 유명하다.그의 연구에 따르면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즈음에 손주를 볼 만큼 오래 산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 시기 노인의 증가는 그전 300만년 동안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때 공존한 적 있는 바로 앞 시대의 네안데르탈인 보다 젊은이 대 노인의 비율이 5배나 높았다. 조부모-부모-자녀로 이루어진 3대의 결합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크게 약진할 수 있었다. 부모가 먹거리를 구하는 일에 노동력을 충분히 쓰는 사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대상포진에 걸렸던 적이 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일이다. 나는 전공이 도예였고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방학엔 학교에서 졸업전시회 준비를 하느라 집에 가지 않고 지냈다. 선배가 차린 회사에 취업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방학 때 미리 바짝 작업을 해 두면 가을엔 취업계를 내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었다. 마지막 학기엔 돈을 벌면서 학비 외에 드는 하숙비나 생활비 등을 아낄 심산이었다. 내가 살던 하숙집은 원래 학기 중에만 학생을 받고 방학 땐 하숙을 치지 않았다. 다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해마다 설날 즈음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1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겠다. 그리고 아마 2위는 이 말이 아닐까.“새해 액땜했다고 쳐.”겨울엔 세상 모든 게 건조하게 쪼그라들었다가 눈과 비에 다시 말랑거리며 풀어지는 걸 반복하다 보니 멀쩡하던 것들도 왠지 물성이 위태위태해진다. 사람 마음도 비슷해져서 연말연시엔 관계로든 뭘로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종종 생긴다.사건이란 게 두개 이상의 진행이 서로 다르게 나아가다 만나서 생기는 거니까, 이미 그 교차점에서 굴절해 튀어나간 사건은 또다른 어딘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라는 책이 떠올랐다.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큰 꿈을 가지라는 주장이 곁들여진 대부분의 일화에는 ‘크고 좋은 걸 갖는 게 무조건 옳은 거야’ 따위의 독선이 비대한 결핍들과 함께 녹여져 있었다.가령 소소하게 카페를 차리겠다는 청년을 두고 꿈이 작다며 투덜거리는 식이었다. 당시 청년들 사이에선 전후 살아남는 게 목표였던 부모세대와 달리 평온한 삶에 대한 동경이 막 바람을 타고 있었다. 사회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남극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에 성공한 이는 단 둘 뿐이다. 둘리와 펭수. EBS의 새로운 캐릭터 펭수는 아마 2019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둘리와 펭수는 남극 출신이란 점만 같을 뿐 배경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일단 둘리는 자의에 의해서 한국에 온 게 아니다. 1억 몇천만년 전 원시자연에서 살던 둘리는 갑작스러운 빙하기에 냉동된다.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둘리는 현대에 이르러 빙하와 함께 한국으로 떠내려 온다. 둘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과 생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을 향한 검찰 수사를 두고 몇 주째 옹호와 비난의 목소리가 사회를 가득 울리고 있다. 결국 조 전 장관은 가족의 곁에서 법정 다툼을 준비하기 위해 법무부를 사퇴했다.그의 사퇴 후에도 여전히 광화문과 서초역에선 집회가 이어지는 중이다. 국회 앞으로도 번졌다. 물론 이런 상황을 혼란과 분열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서초역 집회든, 정부를 비판하는 광화문 집회든, 시민들이 모여서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하는 과정은 다음 세대 한국 정치의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하철 안.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이동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탄다.지하철이 서초역에 섰다. 청년들과 장년들, 성인과 청소년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린다. 직전의 방배역까지는 내리는 이들이 드문드문했다. 전동차의 문을 나서는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지만, 서로의 행선지를 확인했다는 듯 간간이 시선을 마주친다.9월 28일 저녁의 서초역 개찰구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던 의문이 있었다. 일제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던 100년 전 상황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그리고 광복군의 항일투쟁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쟁취하지 못한 독립에 그 저항들은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한없이 무력하여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했던 활동들을 왜 높이 사야 하는지, 그 해답의 증거들을 요즘들어 잘 보고 있다.인간에게 생존은 가장 큰 이익이다. 둘 이상의 사람이 생존을 위해 뭉치면 본질적으론 이익공동체다. 살고자 운명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운명공동체이기도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은 오래전부터 태평양에서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태평양 사령부’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1년 전인 2018년 6월에 태평양사령부의 이름이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뀌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 전 해인 2017년 아시아 순방 때부터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었다. 이는 이전까지의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환태평양 개념에서 좀 더 아시아 대륙을 깊숙이 감싸고 들어간다.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공간 중에 말라카 해협이 있다. 태국, 말레이시아,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6월 25일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으로부터 69년이 지났다. 웬만한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간 시간이다.나의 할아버지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 전에 태어나 일제시대에 청년기를 보내신 분이었다. 재가하신 증조모로 인해 평탄치 않게 자라난 분이셨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어른들은 젊은 남자들을 멀리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인민군이 젊은 남자를 보면 죄다 죽이거나 끌고 간다는 소문이 들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별 생각 없이 있다가 가족을 챙기고 말고 할 것 없이 황망하게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