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위대한 한국인-부제 한민족 부국강병론-박정희시대’편 칼럼을 쓰면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에서 조심스러웠다기보다는 우리사회 팽배한 박정희 시대에 대한 부정적 기류나 비판적 시각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자칫 독재를 미화하거나 편중된 역사인식을 가진 분석이라는 비판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그 당시 시대를 기록한 방대한 관련 자료를 분석해보고, 그 당시 개발독재의 반대편에 섰던 민주화인사들의 고난의 세월과 활동상을 균형감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 서울상암동 박정희
5·16 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는 5·16 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내리는 권위가 있거나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최근 한국의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5·16 군사쿠데타를 시발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정책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제시하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을 뿐이다.5·16 에 대한 정보나 객관적인 시각은 아마도 대한민국 정부탄생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지켜보았던 미국의 입장에서 그 일단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글은 5·16 을 포함한 한국의 군사정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드디어 전쟁이 끝이 났다. 한국전쟁은 남북 양측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낳았다. 전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 엄청난 인명이 살상됐다.북측의 민족해방이라는 명분하에 치러진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의 허구’였다. 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명분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이 자그마치 남북양측의 군인과 민간인, 미군 등 UN군 전사자,중국군 등 을 포함 500만명에 이르렀다.얼마전 동국대 강정구 교수는 6.25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었고,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1만명 정도의 희생만 치렀으면 끝이 날 전쟁이었다고 주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36년간 일본의 강압적인 폭압통치로 거의 한민족이 민족재기 회생불능의 상황에서 극도의 신음할 즈음 1945년 8월 15일 갑자기 해방이 찾아왔다. 그것은 자력으로 되찾은 해방이 아닌 타력에 의한 해방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의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힘이 없었다.1945년 조선의 해방은 그래서 또 다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의 시작이었다.38선을 경계로 이북에는 공산주의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남에는 대한민국이 세워졌다.일제의 강압통치하에 희생된 조선인들만 자그마치 수백만명을 헤아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1960년대 이전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보릿고개’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정도로 말이다.‘보릿고개’란 전통적인 농업국가였던 한국이 겨울철이 지나 모내기를 할 봄철이 되면 겨우내 먹던 주식인 쌀이 떨어져 들녘 이른 봄에 피어난 채 여물지도 않은 보리낱알을 먹어야만 했던 열악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대부분 한국인들의 삶이 여기에 해당했다.이른 봄철이면 아낙네들이 대나무 소쿠리를 옆에 끼고 아직 채 찬기운이 가시지 않은 온 들녘을 헤매며 쑥이며 소리장구 등 야생약초나 식용이 가능한 야생풀을 뜯으러 다녔다.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일까?학창시절 놀기에만 열심이고 공부 못해 좋은 대학 못간 사람? 아니면 귀가 얇아 사기를 당하고 사는 사람?부모 살아생전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가 돌아가신 후 목 놓아 우는 사람?보는 각도에 따라 어리석음을 평하는 기준이 달라지겠지만 필자는 바로 무한한 능력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