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무렵의 3년쯤을 중국 베이징에서 보냈다. 학생이자 동시에 이곳저곳의 한국어 강사였던 나는 그중 한곳인 인민대학교 유학생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방학이 되면 가끔 마작 모임을 열었다.딱 지금 이맘때쯤이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중국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나 기숙사 안은 썰렁했고 인터넷도 안 되던 때라 달리 무슨 여흥이 없었다. 날까지 추운데 어디 나가 놀 곳도 없는 가난한 유학생들은 내 방에서 열리는 마작 파티를 몹시 기대했다. 우리는 중국의 대중문화를 섭렵한다는 미명하게 열심히 마작 패를 돌리고 부수고 쌓았다.
종교와 정치와 연예와 교육을 단 한 사람이 총괄하던 시대를 우리는 제정일치 시대라고 부른다. 제사장인 단군할아버지는 종교인, 정치인, 선생님, 연예인의 역할을 당신 혼자서 모두 책임져야했다. 그러니까 단군 할아버지는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말 잘하고, 잘 생기고 유머 감각 넘치면서도 인기 아이돌처럼 춤과 노래에도 능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팬덤이 형성되고 그들은 하나로 뭉치게 되었겠지.백성을 가르치고 한 데 뜻을 모으게 하고, 또 즐거움을 주던 집단 종교의식은 공동체 구성원을 끈끈하게 묶어주었다.대학 시절 과목
입시철을 맞아, 나의 고3 겨울로 잠시 되돌아가볼까 한다. 몸도 마음도 몹시 추웠던, 처음으로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30년 전 그때로.1986년 겨울, 점쟁이는 ‘이 아이가 사람을 몰고 다니는 운이라 어디에 원서를 넣어도 떨어질 거’라고 예언을 했다. 그깟 운명론에 굴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공부가 싫어서 재수만은 피하고 싶었던 나는 엄청난 하향 안전 지원을 했다. 그런데도! 그 해 유독 내가 지원한 학과에만 벌떼처럼 학생이 몰려 그만 똑 떨어지고 말았다.서로의 절망을 숨긴 채, 엄마와 나는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
세상 여자들이 선호하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교회 오빠(종교의 종류, 유무와 상관없이)그리고 나쁜 남자.교회 오빠 스타일인 남자들은 다정하고 섬세하다.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 남성이 사기 치는 것만 아니라면, 원래부터 속속들이 교회 오빠의 면모를 지닌 사람이 확실하다면 여성들은 당연히 이런 남자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교회 오빠 유형의 남자와 결혼한 모든 여성들이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땅의 모든 남자와 여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종족으로서 결코 그 간극을
2011년 가을부터 7년째 탈북민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한 분씩 만났으니 이 땅에 뿌리내린 3만 탈북민 중 1%가 넘는 분을 만나본 셈이다. 북한의 인권실태에 관한 한, 가장 많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본 맹인 중 하나가 아닐까... 나 스스로 자부하는 이유다.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하루에 일주일치 녹음을 몰아서 하니 일단 만나면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게 되고, 방송 전 미리 읽어봐야 할 사전 인터뷰 분량도 만만치 않아서 마지막 회를 녹음할 때쯤 되면 초대 손님 인생의 모든 걸 알게 됐다는 착각이 들기
J가 정말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다.방송사 아카데미 수업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인연을 이어 서로 친구처럼 지냈던 J. 다들 그렇듯 사는 게 바쁘다보니 서로의 삶에서 조연급이던 처음의 배역은 엑스트라로 내려앉았다가 카메오가 되었다가... 그 조차도 끊어져 회상신(scene)에서나 가끔 만나던 차였다.J는 큰 비밀을 털어놓듯 사실 몇 년 전에 이혼했노라고 했다.‘아, 그래서 네가 그토록 열심히 물건을 팔았던 거구나...’J는 잘 나가는 영업사원이다. 워낙 이직률이 높은 직종이라 성우 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그쪽에서 일하려 한다고 했을
가난한 신혼부부가 있었다.둘은 한 달간 국내에서 신혼여행을 했다. 사이판이나 괌으로 떠날 돈이면 한 달쯤 국내를 떠돌 수 있었다. 마침 둘 다 백수였고 신혼집은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둘은 되도록 천천히 현실로 돌아오고 싶었다. 자동차 트렁크 속 커다란 여행 가방에 커플 티 대신 코펠과 브루스타를 담았다. 둘은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를 찾아다니며 많은 양의 끼니를 싸구려 모텔 방과 계곡 주변에서 해결했다. 주로 라면, 가끔은 고기도 구웠다.‘그렇게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그들은 그 경험을 책으로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였
내가 최초로 읽은 미스터리 멜로물은 안데르센의 동화 이다.극 중 눈사람은 어쩐 일인지 난로를 사랑한다. 제 생명마저도 녹여버릴 치명적 매력에 반한 걸까?읽는 내내 궁금했다. 바보 같이 왜 하필 난로람?페이스북에 친구 진석이가 올린 사진을 보다가 그 동화 생각이 났다.“우리 딸 예쁘죠?”진석이(가명‧49세)는 아이가 셋. 그 셋이 모두 아이돌 뺨치는 출중한 외모를 가졌다.지난 십년 간 한두 번 쯤 봤던가...? 서로 사는 게 바빠 못보고 지냈지만 SNS상으로 가끔 소식을 접하는데 그게 죄 자식 자랑이다. 본인 얘기
노래방 엔딩 곡이 언제나 인 친구가 있다.아, 그 노래! 하고 반색하는 분이라면 당신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태어난 사람일 게다. 그리고 이 노래가 ‘고무신을 꺾어 신었음 직한’ 옛 여친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도 잘 알 것이다.6070이 아닌 분들을 위해 잠시 노랫말을 소개한다.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발 디딜 틈 없는 그곳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때,넌 놀란 모습으로 음음음음~너에게 다가가려 할 때에 난 누군
지난 회 제목인 은 왠지 더 쓸 얘기가 있을 것 같아 II편에 대한 구상이 전혀 없었는데도 굳이 I이라고 꼬리를 붙여두었다.역시...동양인 특유의 선견지명 ‘내 그럴 줄 알았지’의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음이 곧 입증되었다. 속편의 주인공이 제 발로 내 일상에 튀어 들어 온 것이다.“나 그 남자 기억난다.”초등학교 동창 카페에서 뒤늦게 내 글을 보았다는 친구 K의 뜬금없는 카톡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으응? ... (30년 전 기억 스캔 중)아, 맞아. 맞아! H랑 K, 나와 그 사람, 이렇게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가 20대 중반일 즈음이었다. 라디오를 듣는데 양인자 선생님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김희갑 양인자 부부는 대한민국 가요사에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지만 가요프로그램에서 직접 만날 일은 흔치 않았기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KBS 2FM 정오의 희망곡.... 디제이는 오미희... 라는 게 내 기억인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의례적 인사가 오가고 디제이가 물었다.이번에 따님이 결혼 하신다면서요? - 네스무 살 밖에 안 된 따님의 결혼을 허락하셨어요. 걱정되지 않으세요? -음.. 우리는 모두 스
현재 지구상 70억 인구 중, 사랑에 막 빠져들어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실연의 상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사람이 더 많을까?위 질문은 이 칼럼의 독자 확보를 위해 꼭 알아야만 하는 주제다. 그러나 그 답을 알 방법은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이런 추측은 해 본다. 목하 열애중인 사람은 요런 글 챙겨볼 시간이 없지 않겠는가하고. 또,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진 달콤한 순간보다는 지지부진한 관계 속에 피곤해했거나 이현우의 이 구구절절 내 얘기 같았던 날이 더 많지 않았
Y는 어느 날 대학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자기 부인 얘기를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선배를 바라보다 상념에 빠졌다.“은행 다니는 우리 마누라는 매일 가계부를 쓰는데 10원짜리 하나까지 다 맞아야만 잠자리에 들어.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매일 밤 이마 찡그리고 영수증 들여다보며 가계부 쓰는 마누라가 귀여워 죽겠어.”Y는 전 남편과의 이혼 사유를 그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시시콜콜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바로 그 가계부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진저리를 쳐왔었다. 전직 은행원 출신이던 Y의 전남편은 뭐든 대충 대충인 Y의 성격에 문제가
S는 를 보다 펑펑 울었다. ‘숨겨진 영웅들’이란 뜻을 가진 이 영화는 소련과의 우주 전쟁에서 밀리고 있던 1960년대 미국 NASA를 배경으로, 인종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꿈을 지켜낸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성공담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느꼈겠지만 S처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꺼이꺼이 통곡할 스토리는 아니었다. 나름 자기 자신을 냉철한 사람이라 믿고 있는 S는 잠시 분석에 들어갔다.뭐지? 왜지?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S는 회사 탁구 동
박인환의 시 을 처음 접했던 십대 소녀 시절,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당시의 내 뇌는 너무나 탱글탱글하여 사랑했던 그 사람의 이름을 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뇌의 한 부분을 칼로 도려낸대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단 말이다. 다행이도 내 뇌는 아직도 제법 탱글탱글한 모양인지 유치원 시절 맘에 두었던 사내아이의 이름까지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다만 이럴 때는 있다. 내가 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계면쩍어서 ‘아... 뭐더라... 그... 걔 이름
서른 즈음, 같은 제목을 가진 책 두 권을 읽게 되었다.한 권은 동양의학과 양의를 동시에 공부한 한 의사 선생님의 책이었고, 또 한권은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일본 유명 소설가의 단편집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몸은, 모든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나는 의학자는 아니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에서 다룬 얘기만 해볼까 한다.남녀공학인 중학교가 있다고 치자. 그곳의 어느 반에 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있다. 그 두 아이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 하지만 반 아이들에게
여배우 김수미를 좋아하는가? 글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나로 말하면 호도 불호도 아니고 그냥 그 중간 어딘가 쯤이다. 그러나 의 ‘일용엄니’는 다르다. 나는 일용엄니를 존경한다. 아니, 광팬에 가깝다. 오로지 딱 한 회차의 스토리 때문이다. 나를 일용 엄니의 광팬으로 만든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일용엄니의 외아들 일용이에겐 복길이라는 딸이 있었다. 아마도 1978년생쯤 될 것이다. 그 딸이 초등학교 2,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 총각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왔다. 촌스런 시골 학교엔 어울리지 않는, 지
연재를 시작하며 모든 것은 P의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장님을 좋아한대.”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름다운 30대 후반의 이혼녀가 자기가 다니는 직장의 상사를 짝사랑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유부남인데도 말이다. 뭐 그 정도까지는 가끔 봐왔던 스토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사장님은 자신을 그 회사에 취직 시켜 준 사촌 언니의 남편이었다. 사촌 형부라... P는 원치도 않는 비밀을 알게 되었고 또 그걸 지켜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외쳐버린 거였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