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싸움의 승패는 단순하다. 먼저 우는 쪽이 지는 거다. 상대를 울리는 게 이기는 거라는 신념은 일종의 규칙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대의 마음에 상처 주는 방법을 쓴다. 태어나 좀 살아보니 알겠는 거다. 괴로움을 선물하면 상대가 운다는 사실을. 그리고 학습한다. 감정을 요리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첫째, 안 좋은 별명을 붙인다. 들으면 기분 나빠 할 온갖 것들로 부른다. ‘바보야!’나 ‘멍청이야!’는 순수한 축에 든다. 사람들이 꺼리는 동물이나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아니면 듣는 순간 왠지 모욕적일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동네에 있는 아파트 단지 옆을 걸었다. 인도와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따라 얕은 잔디 둔덕이 길게 나 있다. 둔덕은 여러 나무와 식물들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잔디 위의 풀과 꽃들을 보며 길을 걷는데 웬 팻말이 달린 말뚝 하나가 리듬을 깨고 툭 꽂혀 있다. 팻말에는 “이곳은 길이 아닙니다.”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팻말 아래에는 인도와 아파트 사이를 잇기라도 하듯 좁은 길이 나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든 팻말인 줄 알았는데 구청이름이 박혀 있다.녹색 잔디 위에 황색 맨흙이 슥 그어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주를 항해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가르강튀아라는 블랙홀이 나온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가르강튀아 블랙홀 근처에 있는 밀러 행성에 잠시 다녀온다.널리 알려진 대로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서 한번 빨려 들어가면 빛조차도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다. 밀러 행성은 그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긴 하지만 블랙홀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모선으로부터 작은 우주선을 타고 밀러행성에 간 주인공은 두어 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온다.주인공이 모선에 귀환했을 때, 그를 기다리던 동료는 흰머리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친구에겐 아파트가 두 채 있다. 한 곳에선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고 다른 한 곳은 세를 주었다. 두 채를 합해 25억원 정도 된다. 그러나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재에 밝다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남다른 촉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둔한 거 너도 잘 알지 않냐. 그런데 변두리에 아파트 하나 마련했더니 가만히 있어도 집값이 오르더라. 시세차익 노리며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이사 갈 때마다 올랐다. 부동산만이 유일하게 큰돈을 벌게 해주더라. 내가 그걸 20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대중은 연예인에게 엄격하다. 도덕적 잣대의 기준이 웬만한 장관급 인사 청문회 수준이다. 아니, 언론에 항상 노출돼 있는 그들의 삶을 볼 때 어쩌면 연예인은 정치인보다 혹독한 환경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엄혹함은 주로 스타 연예인들에게 집중된다. 그들은 대중적인 명성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다.오늘날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과거엔 왕족이나 하다못해 귀족 쯤은 돼야 누렸을 법한 이익들을 얻는다. 날 때부터 귀한 몸이거나 폭력으로 쟁취하지 않으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남자고등학교를 다녔다. 혈기왕성한 오십여명의 남자 아이들이 한 반에 있었다. 그 시기의 또래들은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작은 집단을 이루기를 즐긴다. 내게도 자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름보단 짓궂은 별명으로 자주 불렀다. 물론 상대에 대한 짓궂은 마음은 일종의 친밀감 표시이거나 동류의식을 공유하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약점이나 주눅들어 하는 부분을 굳이 상기시키는 건 어떤 이유로든 불쾌한 일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짙은 쌍꺼풀과 두툼한 입술과 곱슬머리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일본만화가 있다. 원제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인데 김전일이라는 소년이 뛰어난 추리력으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방영됐다. 주인공인 김전일은 난해한 트릭들을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낸다. 동시에 사람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상황이 어떻게 사건으로 비화했는지 밝혀낸다. 이 만화에선 매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식이 있다. 우선 관련자들을 모두 한 방에 모은다. 그리고선 여러 트릭을 하나씩 설명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소리친다. ‘범인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일제가 남긴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5년에 해체가 시작되었다. 해체 전까지 중앙청, 정부청사, 국립 중앙박물관 등으로 계속해서 이름과 쓸모가 바뀌었다. 그 곳이 국립 중앙박물관이던 시절에 몇 차례 간 적이 있다. 묘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하필 점령국의 위세를 떨치려 지은 의도가 명백한 건물에서 피식민지였던 나라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문화재와 유물을 전시하는 모순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의미가 깊은 자리에 일제가 지은 건물을 그냥 두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당시 국민일반의 정서와 맞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충전 케이블에 연결하는 일이다. 보조 배터리는 귀찮아서 가지고 다니지 않다 보니 저녁 즈음엔 배터리 잔량이 간당간당하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실 형광등을 켜는 일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충전한다. 이어서 샤워를 한다. 뜨거운 물을 틀면 보일러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린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뒤 전원을 연결하고 부팅 시킨다. 노트북은 와이파이를 잡아 인터넷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11월 27일에 대법원장의 출근차량에 불이 붙었다. 강원도에서 돼지 농장을 하던 70대 남성이 던진 화염병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타고 있던 차가 맞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불은 이내 진화됐고, 범행을 저지른 남모씨는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그는 과거 자신의 농장에 친환경 인증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한다. 소송은 모두 남씨의 패소로 돌아왔다. 1심에서만 변호사를 선임했던 남씨는 2, 3심을 혼자 진행했다. 남씨는 경찰 조사에서 법원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했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그 장면은 코미디 같았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의 간부이자 현직 유치원 원장이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헤드랜턴을 쓰는 순간이었다.아이들 교육에 쓰여야 할 돈이 유치원 원장 개인의 주머니로 빠져나간 사건을 다루는 자리였다. 그 간부는 영세한 원장들이 이른 아침부터 몸소 일한다는 걸 주장하려 헤드랜턴을 썼다. 한유총 측은 제도미비와 경영난을 말하며 자신들을 범죄자로 몰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일말의 책임이 있는 측의 모습이라기엔 매우 엉뚱했다.더 코미디 같은 상황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헤드랜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정부의 기밀 문서가 동의없이 유출되어 공개됐다. 현직 국회의원에 의해서. 심재철 의원이 재정분석시스템에서 비인가 행정정보를 100만여건 다운로드 받은 것이 논란이다. 몇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우선 그의 행위가 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단순히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국민의 심복인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경로로든지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없는 정부의 고수준 정보에 최초 접촉할 수 있었고, 하필 그 정보가 나라와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설령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어느 날 낙지젓을 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맵다는 건 무언가. 매운맛에 대한 두 가지 상식이 있다. 첫째는 고추에도 들어가 있는 캡사이신이 매운 맛의 정체라는 것. 순수한 캡사이신은 청양고추의 2만배가 넘게 맵다. 상상이 잘 안되는데 이보다 더 매운 물질도 있다. 모로코 지역의 선인장 비슷한 식물에는 캡사이신 보다 1000배나 매운 레시니페라톡신이라는 성분이 있다. 10g만 먹어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두번째로 널리 알려진 게 매운 건 맛이 아니라 고통, 즉 통각이란 것. 다시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차일드 44 (Child 44, 2015)’라는 영화가 있다. 개리 올드만, 톰 하디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낙원엔 살인이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murder in Paradise.)’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배경은 옛 소련이다. 전후 스탈린이 주장하는 소비에트 연방은 모든 인민에게 행복한 낙원이어야 했고, 국가 안보 총국(MGB)은 그런 지상낙원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색출하고 잡아간다. 반체제 인사를 분류하고 고문해서 죄를 인정하면 총살형. 일단 붙잡히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고등학생 때 짝사랑을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하기를 엄청 예쁜 누나가 화실에 다닌다고 했다. 네 살 많았다. 녀석의 눈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봤자…’ 하고 가볍게 넘겼다.당연히 얼마 뒤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줄거리가 됐다. 그림을 그만 둔 그 누나는 화실 옆에 커피숍을 차렸고, 화실 학생들은 그 곳에 주스 마시러 자주 다녔고, 나는 친구네 화실에 놀러갔고, 그 누나를 처음 보게 됐고, 반했다. 외모 때문이거나 친절함 때문이거나 혹은 그 둘 다였겠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고요한 밤의 공중전화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 있다. 자주 쓰지는 않는다. 다른 코팅 프라이팬들을 죄다 꺼내 쓰다가 미처 설거지를 하지 못해서 당장 쓸 팬이 부족 할 때 쓰게 된다. 바꿔 말하면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녹이 잘 슬지 않고 잘 부식되지 않는다. 열전도율이 좋고 그 온도가 일정하게 오래 간다. 때문에 다른 보통의 프라이팬 보다 적은 열 에너지와 약간의 기름만 있어도 조리하기가 쉽다. 코팅 프라이팬의 코팅 성분 위해성 논란으로부터 빗겨나 있으며, 코팅이 벗겨질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으러 한강에서 가까운 단골 식당에 갔다. 돈가스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차나 한잔 할 겸 한강 공원으로 갔다. 아직 해가 뉘엿거릴 뿐 지지 않았기에 강가 풍경이 꽤나 좋았다. 배를 대기 위해 만들어 둔 너른 콘크리트 경사로가 탁 트여 있었다. 가까이 가니 강을 구경하기 안성맞춤이어서 앳된 티를 막 벗어낸 젊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있는 그들의 장면이 너무나 낭만적이고 행복해 보여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초인의 힘을 가진 영웅들이 처음엔 범죄를 막고 전쟁을 막더니, 나중엔 지구를 구하고 급기야 우주마저 구하러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미국의 코믹스, 즉 만화 속 세계관에서 출발한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는 영웅들이 만들어 온 역사의 결말부에 해당한다. 무려 10여년에 걸친 세계관을 매듭 짓는 중이다.원래 만화를 출판하던 마블은 영화 시리즈를 통해 방대한 만화 속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줘 왔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블의 영화는 큰 인기다. 이번 ‘인피니티 워’는 그간의 여러 영웅들이 함께 악의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무한도전이 끝났다. 13년 동안 방영되던 프로그램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주째 토요일 마다 이어지는 이 예능프로그램의 종영기념 방송을 보면 한 세대의 고별식처럼 보인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 특히 걸출한 MC인 유재석을 보면 더욱 그렇다.유재석은 X세대다. 한국에서 X세대는 대체로 1970년대 즈음을 전후 해 태어난, 지금의 40대가 속한 세대다. 초기 무한도전 멤버들인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이 모조리 X세대다.X세대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문화적 속성을 드러내며 등장했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스코틀랜드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참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대략 16세기 즈음, 소니 빈(Alexander Sawney Bean)이라는 남자가 태어났다. 하수구 청소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난폭하고 게으른 성격 탓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소니 빈은 결국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여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그들이 정착한 곳은 한 해안가의 동굴. 만조가 되면 동굴입구가 막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은밀한 요새였다. 두 사람은 인근을 통행하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며 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