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직박구리가 찾아오는 시간이 당겨졌다. 이들은 매일 동녘이 푸르러질 때 집 앞에 날아와 먹이를 찾는다. 직박구리 특유의 수다스러운 소리가 좀 더 일찍 들렸다는 건, 그만큼 아침이 당겨졌고 봄이 다가왔다는 뜻이다.봄은 침묵하지 않는다. 작은 세계는 수많은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따끈한 볕은 공기를 데워 티끌과 양분을 사방으로 날려보낸다. 무기질이 떠다니다 유기질과 협착하고, 생명이 생명에게 보태진다. 겨우내 언 땅이 풀리고 수분을 끌어올리면, 메말랐던 나뭇가지 끝까지 생기가 돌고 연두색 햇잎들은 급격히 산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미래에 인류가 멸망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마침 아주 먼 은하계에 생명수가 흐르는 행성이 발견된다. 사람들은 각자의 우주선으로 선단을 꾸려 장거리 우주여행에 나선다. 한시가 급하니 다 같이 최고 속도로 항해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우주선은 광속에 근접할 정도로 빨라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그만큼 빠른 우주선을 가지고 있을까?삶의 철학적 목표와 행위의 목표가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른 생각을 말하고 말한대로 실천하는 태도를 가진 구도자 유형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는 발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벌건 등짝을 겹겹이 포갠 채 네모난 패들이 엎드려 있다. 녀석들이 어떤 그림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신중한 손길로 맨 위의 한 장을 집는다. 엄지와 검지만으로 빠르고 맵시 좋게 뒤집는다. 바닥에 깔린 패들과 그림을 맞추자 희비가 엇갈린다. 그제야 비로소 불확실한 미래는 현실이 된다. 고스톱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벌이는 줄다리기다.여느 명절처럼 이번 설 연휴에도 전국의 많은 가정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인간의 심리가 변수로 작용하는 고스톱에선 아무리 상대의 패와 남아 있는 패의 확률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현대사회에 갑작스레 떨어진 원시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원시 틴에이저(Encino man. 1992)’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빙하기의 원시인이 동굴 속에 갇혀 냉동 됐다가 현대에 발견되고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 원시인 ‘링크’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많은 것을 접한다. 힙합을 듣고 전자오락을 하고 기계들과 마주친다. 그는 원시의 습성과 현대사회의 규칙 사이에서 좌충우돌 해가며 점차 20세기에 적응해 간다.한 인물이 까마득한 과거의 한 지점으로 부터 현대의 한 지점에 ‘도착’하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2016년. 단 1년 사이에 상상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정치사회적 사건이 일어났다.봄이 오기 전엔 국회에서 역대 최장시간 필리버스터가 있었고, 겨울엔 도심에서 역대 최대 인원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오랜 세월 양당체제의 한 축이던 민주당이 당명을 바꾸면서 분당을 공식화 한 게 작년 12월 28일이었는데, 일년 뒤 올 12월 27일엔 또 다른 한 축인 새누리당이 분당했다.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을 경제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인 개성공단을 성급하게 폐쇄해 오히려 외교적 숙제를 남겼다. 피해당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거기 나가면 젊은 애들한테 욕먹는 거 아닌가 몰라.” 아버지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찍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광화문 광장의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일흔을 넘긴 노인은 추운 밤 내내 홀로 인파 속을 서성이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경기도 깊숙한 집으로 돌아갔다.지난 2012년에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했다. 오늘날의 참담한 결과를 미리 알지는 못했다. 이 미욱한 현실 앞에서 혹시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잘못 가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될 수 밖에 없다.이념은 인간의 삶을 윤택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주말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는 복면을 쓴 가수들이 나와 오직 노래 실력만으로 우열을 가린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외모, 출신, 유명세 등 평가에 영향을 주는 선입견을 차단한다.우스꽝스러운 복면 디자인 또한 가수의 카리스마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철저하게 아무런 편견 없이 실력에만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목소리의 주인이 아니라 목소리 자체만을 판단하면서 무대 위의 모든 참가자에겐 공평한 한 곡의 권리가 보장된다. 이는 우리의 불공평한 현실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기도 하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리어왕의 곁엔 늘 광대가 있었다. 몰락한 왕이 되어 광야를 헤매던 비참한 순간에도 광대는 항상 함께 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리어의 괴팍함을 비꼬았다.17세기 초에 지어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리어왕’은 믿었던 두 딸에게 나라를 물려줬다가 배신당하고 미쳐버린 왕 리어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가족관계와 권력다툼이 여러 겹의 암투로 얽혀 있다. 등장인물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욕망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간다. 그런 그들 사이에 미천한 광대가 있었다. 명령 한마디로 사람 목숨을 쥐락펴락하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어떤 사회적 논란은 ‘상식을 다루는 방식’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본질을 알 수 있다. 때론 복잡한 사실 관계가 본질을 가리기도 한다. 백남기씨 사망사건 논란이 그렇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다양한 법리적·의학적 주장이 분분하지만, 정작 그것은 사안의 맨 얼굴이 아니다.상식은 주관의 교집합이다. 각자의 주관은 늘 충돌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동의 할 수 있는 만큼 합의 할 필요가 있다.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남을 때리면 안 된다는 등의 인식을 공유해야 소통과 협력이 쉬워진다. 상식은 규범의 출발선이다. 나아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대통령의 기이한 언어습관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을 보며 씻김굿을 떠올린다. 그의 말투에 대한 시민사회의 갑갑증에서 멸절했던 근대의 넋이 한판 굿에 불려오는 걸 본다.근대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확산되면서 개인의 인권이라는 가치가 시민사회의 성립에 결정적 축이 되는 과정이었다. 구성원 각자는 욕망이 거세된 받침돌이 아니라 집단 그 자체의 동력원이 됐다. 이 시기의 개인은 자신의 지향을 시대의 향방에 동기화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춰 나갔다.물론 사람들은 혁명을 지렛대로 고답스런 중근세와 결별하는 과정에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구글은 국제자본시장에서 사업적으로 빛나는 일대기를 써가는 중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하사비스는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천문학적 금액의 인수 계약서에 사인 했다. 이세돌은 그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이 모든 것을 알려주듯이 인간으로서 극에 다다르는 능력만을 갈고 닦은 개인이다.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들은 자본주의 시대가 바라보는 만화경 속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대립항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대국을 두고 구글 장사에 이세돌이 말려들었다거나, 공정한 승부가 아니라거나,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마음이 복잡하게 충돌하면 표정도 뒤섞인다. 근래 세월호 청문회에서 답변하는 정부 측 증인들의 얼굴이 그렇다. 애처로운 처지가 보이는 사람도, 잘못 없다 항변하려는 사람도 비슷한 표정을 자주 보여준다. 그런 표정의 뿌리는 보통 어렸을 때 생긴다.거짓말을 했다가 엄마의 유도심문에 걸려 진실을 말해버린 5살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벌어진 자기 입을 손으로 막는다. ‘놀람’이라는 표정과 ‘감춤’이라는 행동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15살 정도만 되면 자백이나 다름없는 큰 손동작은 삼가게 된다. 그 대신 입을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지하철 안. 한산한 실내에 앉아 가는데 경로석 쪽이 시끄럽다. 머리 허연 사람들 서넛이 뭔가 목소리가 높아져 있다. 대충 들리는 목소리는 육이오 때 포탄이 머리 위로 날아다녔고, 철원이 정말 추웠으며, 내가 왕년에 한 끗발 했다 정도의 무용담이었다. 어조로 봐선 술 한 잔씩 걸친 듯한데, 어째 얼굴은 붉은 기 없이 허여멀겋다. 심하게 취한 것 같지는 않으니 곧 잠잠해지겠지 싶어 피곤한 눈을 감았다.그러나 오가는 목소리가 마음의 안정을 방해하기 충분한 소음이 되는 데엔 몇 십 초 걸리지 않았다. 일정하게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어떻게 먹을 것인가. 인류가 수렵과 채집을 하던 때부터 내려온 고민이다.숲에서 빈 손으로 돌아오면 어제 남긴 부실한 먹거리를 부족민들이 나눠 먹어야 한다. 이 때 누군가가 재료를 한 데 끓여 양분을 우려내고 양을 불려 주면, 비로소 모두의 배가 공평하게 채워지고 공동체엔 평화가 온다. 요리방법은 종종 그렇게 생존전략이 되곤 한다.온갖 재화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비슷한 고민은 이어진다. 가난한 청년은 새우깡을 뜨거운 물에 풀어 새우죽 한 끼를 만들고, 살아남기 급급한 식당은 값싼 조미료로 음식의 맛과 양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고양이와 함께 살았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매일 원룸에서 부둥켜 안고 살다 보니 어느새 귀가 트인 것이다. 녀석의 이름은 마르스(Mars).마르스는 ‘니야아옹’이라고 하지 않고 늘 ‘니야아’에서 말꼬리를 흐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 니야아를 트롯트 가수처럼 여러 번 꺾었는데, 보아하니 꺾이는 음절 수나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달랐다. 동거를 한 지 몇 주 지난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르스가 하는 말을 들었다.“물 좀 줘”.높낮이를 1234, 강세를 ‘^’,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언론의 시선과는 달리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갈등은 지금 반드시 필요한 과정, 전혀 부정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정청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강경한 발언을 한 이후, 꼬리를 물고 친노, 비노, 문재인 리더십, 김한길 모략설 등이 꼬리를 물고 논란의 중심으로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분화와 그에 따른 경쟁갈등이 과연 죄악인가.우리 현대사에서 오랜 시간 야권의 지형은 민주화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수렴되어야만 했다. 연대와 통합은 시대적으로도 긴급하고 생존의 수단으로서도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개흙 보다 쓰고 바닷물 보다 짠 날들을 삼킨다. 4월 16일은 다시 왔으나 흐르는 며칠이 생미역 씹는 것 보다 아리다. 나는 세월호 희생자들이 마지막에 들이켰을 절망을 가늠 할 수 없어, 생환을 고대했던 작년의 72시간을 다시금 염(念)하듯 묵묵히 견뎌보았다. 한 줄의 문장이나 한 토씨의 표현도 잠갔다. 부단히 쏟아지는 광화문발 기사와 현장소식을 놔둔 채, 차가운 물에 서서히 잠긴 이들의 갑갑함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수감했다. 그렇게 격분과 좌절이 함께한 사나흘의 질식 같은 추모로부터 이 글을 쓴다.참사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사람은 억울하다거나 진실을 죽음으로 밝히겠다는 의지를 본질 삼아 자살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것은 모종의 결심이 아니라 자존감의 형해화에 기인한다. 무기력의 부피를 전신의 피부로 절감할 때에라야 비로소 삶을 ‘포기’ 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질식할 것 같을 때 고통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 자살이란 점에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자살은 일종의 타살이다. 숨 쉴 틈 하나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억울한 자살의 핵심은 교살에 의한 질식사다.경제와 문화가 급격히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어지럽혀진 글투를 바르게 돌려 놓는다는 뜻의 문체반정(文體反正).18세기말 정조는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새롭게 유행하던 문체를 문제 삼았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엮은 패관소설들이 경박하니 전통적인 문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문체반정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선진국인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던 패관소설과 잡서들을 금한다. 새로운 사상과 지식의 길도 덩달아 흐릿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란 생각이고 마음이니, 문체반정은 새로운 변화를 누르는 억압책으로 볼 수 있다.정조는 개혁적인 왕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소문과 실제가 섞인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13세기 말, 낯선 오리엔트 문화는 마르코 폴로에 의해 좀 더 신비롭게 각색되었다. 지중해의 자연환경이 신들의 훼방으로 그려져야만 오디세우스가 운명에 맞선 영웅으로 완성되는 것과 같다. 극적인 모험담은 인기가 많은 법이다.암살자를 뜻하는 어쌔신(assassin)이 마약인 해시시(hashish)를 복용하던 중세 이슬람 암살조직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산 속의 냉혹한 노인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는 젊은 암살자들을 당시 유럽사회에 설명하려면, 환각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