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마침내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0%를 기록하게 되었다. 애초에 교과서의 편향된 입장을 논하기 전에 그 부실한 수준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자료 출처에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가 버젓이 적혀있는 교과서라니, 이건 애초에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일부 진영에서 진보니 외압이니 말이 많은데, 이것은 그저 상식에 따른 결과라고 봐야 옳을 게다. 허나 그럼에도 채택률 제로에 이르게 된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학교가 주목 받으려면 교학사 교과서를 택하라?
 
교육은 온 국민의 관심사인 탓에 전 과정이 항간의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우선 교학사 교가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다. 가령 사학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 전주 상산고등학교가 그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우선 호남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였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 상산고 교감(이종훈)은 학교가 주목을 받아 흐뭇하다고 밝혔다가 그만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더욱이 여기 이사장은 성경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었다는 <수학의 정석>의 저자 홍성대 씨인데, 이 때문에도 역시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균형 잡힌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교학사와 지학사의 교과서를 모두 가르치겠다는 것이 홍 이사장의 변이었다. 허나 정작 재학생이 붙인 대자보는 철거하고, 학교 게시판에 올린 반대글은 모두 삭제함으로써, 그 스스로 전혀 균형 잡힌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이 지대했다. 
 
의문의 여지가 없이 학교 구성원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우선 상산고 동문들은 전주와 서울에서 ‘존경하는 홍성대 이사장님께 아룁니다’라는 유인물을 내놓았고, 특히 이십여 명의 졸업생들은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더욱이 상산고 학생에 따르면, 1월 5일에 있었던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무려 응답자들 중의 90%가 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강행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학교도 있다는 사실에 있다. 끝까지 굳건하게 절개(節槪)를 지키던 학교는 경북 청송여자고등학교이다. 물론 이마저도 학부모간담회와 학교운영위원회를 연달아 개회한 끝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 마지막 잎새가 끝내 지게 된 연유에는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학운위(학교운영위원회)의 회의록을 위조했다는 것이 공개된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교사들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1순위로 추천한 교육과정협의회의록 또한 조작됐을 의혹을 사게 되었다. 강종창 청송여고 학교운영위원장은 “학교 측에 한국사 교과서 선정 때 학운위를 거치지 않은 절차상 하자를 지적하고 교학사 교과서를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박삼옥 교장은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불신과 분열을 초래해” 결국 채택을 철회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럴 걸 왜 처음부터 무리하게 일을 밀어붙였던 것일까?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도 외압인가?
 
헌데 더욱 난감한 것은 교육부의 반응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학교들에 이례적으로 특별조사까지 한다는 거다. 하병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교학사를 봐주려 시간 끌기를 한 것”으로 보고, 나아가 “아직 교과서를 선정하지 않은 학교에는 외부 압력을 막아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았다. 즉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해석한 셈인데,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재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동창들이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학생, 부모, 동창들의 반발이 분명한데도 여기에 대해 외압이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한다. 교육부의 반응이 외려 외압으로 보인다. 도대체 왜 일부러 논란을 키우는 것일까? 과연 무엇을, 혹은 누구를 의식하고 이런 우행(愚)을 저지르는 것인지에 대해 의혹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최근에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이들이다”라고 언급하고 이는 “일본 아베 총리의 역사관과 똑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위안부 서술의 오류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국가는 국민이다. 헌데 교육부는 국민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쁜 검인정 교과서나 좋은 국정 교과서나
 
이 지점에서 불쑥 발언한 새누리당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교과서 채택률이 0%에 달하게 되자, 갑자기 국가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 5.16 군사 혁명을 구국 혁명이라고 말한 이가 바로 현재의 대통령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國定)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까마귀가 활강(滑降)하니 배가 우수수 떨어지는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허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정부가 주도하여 단일한 교과서를 내놓겠다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이건 민주당을 포함한 어느 정권 하에서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중립적 역사 교과서가 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하나의 교과서를 국정으로 지정하여 그것을 강제하겠다는 거다. 검인정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정작 갈등은 다수 시민과 일부 보수층(정당, 학자, 언론) 사이에서 발생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대한민국 헌법의 제1조 2항에 기반하여 외치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국민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듯이 정상적인 국민은 상식에 기반하여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외려 일부 지도층이 국민을 상대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이 있다. 허나 국민의 상식적 시선을 제외하면, 어떠한 욕망의 분출일 뿐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