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말과 활> 발행인 홍세화
朴대통령 소통 요구, “내 얘기 듣기만 해라는 것”
안철수 현상, 불안한 심리 속에 정치적 메시아 찾는 것
진보, 패권주의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 반영해야
무관심과 무지는 뻔뻔함의 토양
【투데이신문 한규혜 기자】<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톨레랑스(관용)’을 말했던 우리시대 지식인 홍세화 선생이 이번엔 민중을 향해 “아가리를 열라”고 한다.
권력의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 찬 안녕하지 못한 사회에서 여기저기 힘차게 떠들지 않으면, 세상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은 “침묵당하고 침묵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터뜨리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민주주의의 시계는 다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8일 홍세화 선생을 만나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진보와 보수, 민중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최근 김민웅 교수와 함께 펴낸 시사정치쾌담집 <열려라 아가리>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A. 여기에서 ‘아가리’란 민중의 입을 의미한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행동도 중요하지만 일단 말부터 시작해야한다. 말하는 것도 행동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사회체제나 구조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손해 보는 세상이다. 사적인 안위를 위해 침묵이 강요되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면 축출 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집권세력에 동의하지 않으면 모두 종북, 비판세력으로 몰아 입을 봉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아가리를 열자’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민중이 제목소리를 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Q. 지난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시급한 것은 너무도 많다. 전부 퇴행되고 있고, 민주주의도 거꾸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집권세력에 대해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침묵하지 말자는 것이다. 잘못된 두 가지를 예로 들면,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경제민주화’에서 ‘민주화’라는 것은 애당초 집권세력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집권세력이 민주화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민중이 비판적 의식으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집권세력에게 대항해 그들의 지배력을 상실케 하는 힘이 민주화의 힘이다. 이러한 민주화를 지배세력이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마치 새누리당이 민중의 색깔인 빨간색을 빼앗아갔듯이 민주화라는 말을 빼앗아간 것이다. 그것은 한편 민중의 삶 자체가 굉장히 열악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강조하고 있는 게 소통 아니냐. 소통은 반대자 또는 소수자가 요구하는 것이지 집권자가 운운할 얘기는 아니다. 집권자가 소통을 운운하는 것은 내 얘기를 듣기만 하라는 것이다. 나는 경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방통행이나 마찬가지다. 자기위치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소통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들이 현혹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말속에서도 온통 가치가 전도된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Q.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등 여러 가지 선거공약을 내세우며 ‘국민행복시대’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약후퇴’ 비난도 만만치 않다.
A. 경제성장에 대한 자랑은 많이들 하면서 매일 듣는 이야기는 “OECD국가 중에 행복지수 꼴찌, 자살률이 1위”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이런 삶의 현실에서 꺼내든 장밋빛 공약들이 집권하는데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갔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면 공약이 지켜질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기업과 부자에게서 부를 떼어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집권하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못하냐. 누구 말처럼 경제민주화를 구체화하고 관철시키려면 ‘어떤 태도와 어떤 역량이 대중들 속에서 있어야하는가’ 하는 지적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고 본다.
Q.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A.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국가의 오른손과 왼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국가의 오른손은 국민을 관리 통제하는 경찰, 군대, 정부 등의 고위관료를 뜻하고, 국가의 왼손은 교육, 복지, 의료를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는 오른손이 굉장히 비대하다.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것이 작은 정부라고 할 때 왼손은 줄이고 오른손은 강화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한다. 국정원 사태와 같은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작은 정부와는 맞지 않지만 경찰력 강화 등 실제로 오른손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는 신자유주의 기조의 연장선인 것이다. 국정원 사태는 정보통치와 경찰국가, 정보화가 이뤄지면서 우리가 처할 위험한 사회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Q. 우리나라 진보의 현 상황을 진단해 본다면.
A. 지리멸렬상태에 있다. 총선 때만 해도 민주노동당이 10명 정도가 국회에 들어갈 때와 비교해보면 현재 진보는 완전히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5월 통합진보당으로 진보가 하나로 통합했지만 지금은 뿔뿔이 찢어져 나갔다. 이러한 상황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패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막무가내로 민주노총, 철도노동자, 전교조법 문제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한편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이 과연 비정규직노동자들이나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을 함께 껴안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해왔는지 의문이다. 제대로 못해왔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다고 본다. 결국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보여준다.
Q. 진보의 위기란 얘긴가.
A. 그렇다. <열려라 아가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진보는 분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수는 이른바 떡고물이 있어 사람들이 모인 것이고, 진보는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더라도 방법론이 다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다름에 대한 자세가 보수 세력하고 싸우다보니 ‘나하고 다르면 다 적이다’라는 도 아니면 모 식이다. 나하고 모든 게 다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게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을 위해 진보세력이 가져야 할 자세는 생각이 다른 이들은 하나로 우겨넣는 게 아니고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연합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세력과 마주할 때 극복할 수 있는 세력인지, 힘을 합칠 수 있는 연대세력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구세력과 싸우다보니 ‘나와 다르면 모두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연합이란 개념 자체가 살아있지 못한 상황이다.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해” 그 자체가 폭력이다. 이념과 지향, 전략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에 다 우겨넣겠다는 것이다. 그 자체가 폭력이고, 폭력이 진행되어온 것이다. 그게 결국 통합진보당사태로 폭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보라는 데에 하나로 다 우겨넣은 다음 말아먹은 꼴이 된 것이다.
Q. 진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A. 진보의 미래를 위해서는 외부에 있는 극복대상에 대해서 보다 내부에 있는 경쟁대상에게 더 적대적인 태도는 불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진보운동의 역사가 짧아 배움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싸워온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왔던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세력이 극복세력인가, 연대세력인가 그런 기본적인 인식자체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일제 부역세력도 청산하지 못했고, 분단이라는 특별한 상황과 주변 4대 강국이 버티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쉽게 진보의 이념이 착근되기 어렵다. 조급하면 안 된다. 조급하니까 우겨넣게 되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세력을 규합하고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진보의 이념, 진보의 상, 진보의 인간됨 이런 것부터 재구축할 상황이라고 본다.
Q. 책 속에서 두 차례의 민주당 집권이 오히려 자본의 독재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는데.
A. 민주당 정권이 두 차례 집권했다는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집권기간 동안 뭔가를 이뤄냈다는 것은 착각이다. 집권동안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 전가시켜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 등을 줄줄이 공식화했다. 이것이 역설이다. 자유주의 수구세력에 맞서서 들어선 이들이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인 것이다. 그들의 집권이 민중들에게서 얻어진 사회운동의 열매라면 집권동안 민중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뤘어야했는데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시대의 변화를 말해줄 수 있는 뭔가가 없다. 그나마 남북관계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작은 단초라도 민중들에게 주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Q.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결성, 신당창당 초읽기에 들어갔다. 소위 안풍(安風·안철수바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언제까지 계속 새 정치를 얘기할지 궁금하다. 이미 충분히 헌 정치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이면 정치적 지향이나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는데, 포퓰리스트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한국적 상황이다. 불안한 심리 속에서 정치적 메시아를 찾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박정희의 향수를 그리워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인물에 열광하는 것이다.
Q. 진보신당 대표직도 수행하셨는데, 다시 정치를 하고 싶으신지.
A. 생각 없다. 깜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Q. 최근 교학사 교과서 사태와 관련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다가 상식이라는 선에서 밀려난 꼴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많은 고등학교가 결국 교학사 교과서를 철회한 것은 너무나 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실제로 교육될 수도 있는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고, 또 우리를 깔보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집권세력들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하려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마련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 있다.
Q.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희망적으로 바라보는지.
A. 물론이다. 가만있지 말아야 한다. 하워드 진도 얘기했지만 결국 중립이란 건 없다. 가만히 있는 것은 지금 힘을 밀어붙이고 있는 세력에 올라타는 것이다. 그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사회는 이미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여기에 저항하느냐, 순응하느냐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Q.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속에 ‘민중의 말’이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무관심과 무지는 뻔뻔함의 토양이다. 뻔뻔한 자들이 계속 뻔뻔하게 설칠 수 있고 뻔뻔한 얘기를 할 수 있고 악질적인 얘기를 하는 모든 시도를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맞서지 않고 침묵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주 쉬운 예로 다수의 사람들이 무관심할수록 집권한 사람들은 뻔뻔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하지만 결국엔 다 굶게 되는 것이다.
Q. 우익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베’에 대한 생각은.
A.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내 개인적인 판단은 들씌워진 욕망에 비해 그것을 채우기가 너무 버거운 상황에서 오는 분노의 표출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물론 사람마다 견해가 다 다르다. 대중매체를 통해 욕망은 엄청나게 증폭되어 있는데 비해 이걸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Q.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요즘 힘든 청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힐링’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까 현실에서 위안을 얻자는 마음이다. 그러나 생각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로지 힘의 논리를 내세우는 현실에서 힘없는 우리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한다. 현실적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자신을 끊임없이 성숙시키고 학습하고 주위를 바꾸기 위해 집요하게 설득해야한다.
Q. 종편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시는지.
A.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교육과 언론이다. 87년 유월항쟁의 열매로 공중파의 노조가 나름대로 건전했고, 공영방송인 KBS, MBC가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공공성을 담보해줬다. 민주화 운동이 성숙된 민주주의와 PD저널리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부터 기존 방송을 ‘조중동화’함으로써 두 가지 방법으로 언론을 장악하려고 했다. 하나는 권력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낙하산 인사를 통해 지령이 위에서 내려가는 방식으로 방송을 변질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종편이다. 이 두 방법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언론의 공공성이 지리멸렬하고 초토화됐다. 종편은 공공성이 담겨진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공영방송에 의해 지켜졌던 일정부분의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 상황에 대단한 위기감을 느낀다. 결국 국민의 수준, 의식수준, 비판적 사회를 보는 시각이 높아져야 한다.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정치적, 전인적 인간으로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많이 늘어나야 된다. 사회의 수준은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고 가치관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적 역량이나 공동의 가치를 키우려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를 꾸려나가고 있다. 이를 통하여 꾸준히 같이 공부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사회를 어떻게 대면하면서 살 것인지 고민하고 싶다. 또 격월간지인 <말과 활>을 통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한규혜 기자
todaynews@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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