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백성을 향한 선조들의 마음과 그 정책
아픈 백성을 향한 선조들의 마음과 그 정책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1.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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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연구원

새해 벽두부터 민영화와 관련된 논란이 한창이다. 이미 수서발 KTX 노선과 관련된 철도노조의 파업과,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본 정부와 여당의 대안 제시, 그리고 이로 인한 노조의 파업 철회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료민영화 논쟁이 한창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있었던 현 정부와 여당의 보건의료 정책을 ‘의료민영화’, 혹은 ‘의료영리화’로 보고, 이것을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보건과 관련해서 어떠한 정책을 펼쳤는지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근대 이전에는 개인의 의료기관인 의원과 국가 차원의 다양한 사회복지 기관들이 존재했다. 고려시대 이전의 기록에서는 국가 차원의 기관이 확인되지 않지만, 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직책이 존재했던 것을 보면, 그에 상응하는 기관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국가 차원의 기관이 사료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고려시대에 관한 사료들에서부터이다. 그 대표적인 기관이 혜민국(惠民局)과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다. 혜민국은 서민의 병을 구제하는 일을 담당했던 기관이었으며, 동서대비원은 수도 안에 있는 환자, 무의탁 노인,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고 수용하며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이러한 기관들은 왕조가 교체된 조선시대에도 거의 계승되었다. 혜민국은 서민들의 병을 구제하기 위한 약재의 수납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고, 동서대비원의 후신인 활인원은 아픈 서민의 치료와 함께 도성 안의 무의탁자의 수용, 사망자의 매장을 담당하였다. 이 외에도 일반대중의 질병구료,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등의 의서편찬, 구호사업, 각도의 향약재(鄕藥材) 수납과 저장, 의녀(醫女)의 양성. 또한 행려자의 치료나 미아 보호 등까지 담당한 제생원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 기관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근대 이전의 기관들은 의료 사업과 동시에 무의탁 노인, 행려자, 굶주린 사람들의 구제 등 사회복지 업무까지도 담당했던 종합복지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근대 이전의 의료기관은 단순히 설립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세심하게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종 때는 동서활인원의 환자 중 생존한 사람과 사망한 사람의 수를 매월 사헌부에 보고하라고 명령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 기록에서는 특히 가장 굶주린 사람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차상위계층까지도 아프면 치료할 수 있도록 하라는 사간원의 건의가 있었고, 그것을 태종이 받아들인다.

전염병이 돌 경우에는 그 관리를 더욱 철저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세종이 도내에 진제장을 설치한 때부터 나와서 먹은 환자의 수와 죽은 자의 수효를 자세히 아뢰고, 또 진제장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죽은 사람은 몇 사람이며, 이미 도착하여 죽은 자는 몇 사람이며, 병들어 죽은 자는 무슨 증세로 죽었는가, 당시에 병에 걸린 자, 본향으로 돌아간 자, 현재 있는 자, 도로에서 유이하였다가 죽은 자의 수효와, 역질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모두 “모두 빨리 아뢰라.”라고 명한 기록이 등장한다. 단순히 죽고 산 사람의 수 뿐만 아니라 그 상세한 내역을 전수조사해서 신속하게 보고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왕을 비롯한 지배층들은 전염병이 돌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스스로의 부덕함을 탓하면서 전염병 창궐이나 천재지변이 중단되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음식을 줄이고, 죄인을 석방하는 등 도덕적 종교적 차원의 행위도 하였고, 창고의 곡식을 풀고, 구휼과 치료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세종 때는 의료 기관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소나무를 심게 하거나, 무더위에 열병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서 얼음을 나누어주었으며, 서리나 노비가 병을 숨기고 일하다 사망할까봐 염려해서 그 증세가 가볍더라도 병을 앓으면 부역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그 왕조에 대하여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실제 그 의료 현황이 부족한 상황은 상대적으로 기록이 덜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의 상황과 과거의 상황을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선조들의 의료정책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 씀씀이였다. 세종은 전염병이 더 이상 돌지 않기를 바라거나, 전염병이 돌아서 국가에 부역할 인원이 줄어들거나 인구가 줄 것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명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효율성보다는 백성 하나하나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고 세심하게 살피는 선조들의 모습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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