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창현 국민대 교수 ①

   
▲ 정창현 국민대 교수
【투데이신문 한규혜 기자】지난해 12월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실각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당반혁명 종파행위’, ‘국가전복 음모행위’로 사형을 선고받고 즉시 처형됐다.
 
장성택은 김일성 수상의 딸인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김정일 시대에 당중앙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에 북한의 최대 실세였던 장성택 처형은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여주는 중차대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북한전문가인 정창현 교수는 장성택 처형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장성택 숙청은 계획됐다”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투데이신문>은 정 교수를 만나 장성택 사건이 갖는 의미와 이 사건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더 나아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제언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성택이 처형된 배경은. 
 
-지난 2012년 4월 김정은은 당대표대회를 열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공식취임했다. 앞서 2011년 11월 최고사령관에 이미 추대됐고, 자연스럽게 2012년 4월 최고직책을 승계함으로써 제도적 리더십이 형성됐다. 이후 김정은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간부들의 비리나 부정부패 척결, 기존에 관성적으로 이뤄졌던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군의 힘 빼기’다. 
 
‘군의 힘 빼기’를 위해 김정은이 진행한 것은 무엇이 있나.
 
-당이 군에 대한 지도력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했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것이 군이 갖고 있었던 경제적 이권들, 예를 들면 군이 운영하던 무역회사나 군이 외부와 교류하며 갖고 있던 광산개발권과 같은 것들이 내각책임제를 강조하면서 내각으로 이관할 것을 명령했다. 힘이란 것은 북에서도 돈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관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는 분명 김정일 시대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일이 시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체제 유지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간부들의 부정부패 척결에 힘쓰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김정일 시대에는 군을 많이 대우해주고 군을 앞세워야만 사회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많이 붕괴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군에 대한 특혜가 많이 이뤄졌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노동당이 우월한 지위에서 지휘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고, 이는 군의 반발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됐다. 국가의 공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무역을 하고 광산을 개발함으로써 자체적으로 먹는 것, 입는 것 등 부족한 것들을 채워 온 구조였는데, 국가가 이제부터는 필요한 부분을 국가에서 줄 테니 갖고 있던 이권들을 모두 내각으로 이관시키라고 한 것이다. 군에서는 ‘국가에 돈이 없는데 무슨 얘기냐’는 반발이 있었고, 이런 문제에 대해 리영호 총참모장이 총대를 메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됐나. 
 
-문제 제기 이후 김정은의 군장악 과정은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김정은은 당정치국회의를 열어 리영호를 해임했다. 그리고 65세 이상 노군 장성들을 모두 은퇴시켰으며, 인민군 총참모나 작전국장은 50대로, 당장들도 4,50대로 교체했다. 군장악 진행과정은 작년 상반기에  이미 마무리됐다. 이를 위해 김정은이 작년 1월 당 세포(세포: 당 조직 중 가장 말단 조직으로 당원 3명만 있어도 만들 수 있다.)비서대회를 열고 당의 영도력을 높여야 되고, 당의 일꾼(당원)들이 인민들에 대해서 민생중심의 새로운 인민관을 가져야 된다고 강조했으며, 기존의 세도, 관료주의 문제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제 삼겠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지난해 6월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개정했다.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충심을 확고히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모든 당 간부들과 주민들은 내용을 암기한 후 실천해야 하는 규범이다. 이후 김정은이 일부 개정해서 다시 공표한다. 그전에 없었던 ‘세도’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다. 
 
‘세도’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세도척결, 당 내에서의 특정한 사람이 권력을 갖는 것에 대해 계속적으로 경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기 외에 힘을 갖는 세력을 없애겠다는 의미도 있는 한편, 장성택을 겨냥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세도라는 말은 일반권력자가 아니라 특정한 누구와 특정한 집단이 보여주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기에는 ‘그때부터 세도라는 얘기를 하면서 장성택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구나’하고 납득이 됐다. 그리고 한동안 그 문제가 제기되지 않다가 지난해 5월 장성택이 휘하 간부의 비리와 관련해서 40일 동안 근신하게 된다. 그 뒤 6월부터 당 간부들이 다시 세도라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한다. 장성택을 겨냥한 것이다. 
 
   
▲ 장성택(좌)과 김정은(우) ⓒ뉴시스
김정은은 장성택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가.
 
-장성택은 당 행정부장에다가 정치국위원, 국방위원회부위원장에 국가체육지도위원장까지 맡은 인물이다. 소위 잘 나가는 인사였다. 북한에서는 현지지도를 얼마나 다녔냐는 것이 권력을 상징하는데 장성택은 2012년 100회 이상 현지지도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현지지도가 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평양 서쪽 해양도시 남포에 수상사업소가 있다. 남포는 원래는 군이 관장했지만 장성택이 관할하는 당 행정부가 군에서 뺏어와 관장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이를 두고 군은 ‘어업권을 군이 갖고 있어야 군인을 먹이고 더 힘을 기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고 김정은도 수긍했다. 수상사업부를 군으로 이관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찾아가니 그쪽에서는 ‘장성택의 승인이 있어야 된다’며 거부했다. 이관 받으러 간 사람들은 최고사령관 명령을 거부하니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다 총격전까지 일어나 조사가 벌어졌고 이런 문제들이 보고되면서 지난해 11월 18일 장성택이 연금됐다. 당 행정부의 리용하 부부부장은 체포된 지 일주일 지난 후 총살됐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군인이 전시에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는 것과 같은 사항이므로 즉결처분됐다. 그리고 김정은은 백두산 현지지도를 간다. 그 때 장성택 처분결정이 구체적으로 결정됐다고 본다.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정치위원들 뿐 아니라 당 간부도 참여할 수 있는 회의)가 열렸다. 장성택의 출당에 대한 논의로 ‘반당, 분파행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체포가 결정되었고 그 이후 군사 사형까지 한 달도 안 되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이유는 장성택이 갖는 상징적 위상이 존재했기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대한 빨리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세도를 경고하고, 관리하던 와중에 이러한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그 시점이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이 김정은에겐 득인가 실인가.
 
-장성택 처형으로 김정은 체제가 공고히 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춰볼 때도 최고지도자의 유일체제(독제체제)가 공고히 되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1956년의 ‘8월종파사건’이나 1967년 ‘박금철·이효순의 반당반혁명사건’의 사례에서도 체제 불안정보다는 공고화로 끝이 났지 않는가. 장기적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단기적 중기적으로 보면 김정은 체제가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군 장악력이 커진다는 건 우리에게 위험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투명해질 수 있다. 군의 돌출행동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연결 역할을 해온 장성택 처형으로 북중관계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는가.
 
-2009년, 2010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 세 번 방문해서 정상회담 할 때 장성택도 참석했다. 또 2011년에 열린 황금평 착공식에 장성택이 북을 대표해 참석해 ‘중국과의 외교를 주도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실질적으로는 조선합영투자위원회가 그런 역할들을 해왔다.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측면에서 자리에 참석한 것 뿐이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경영권의 투자상담, 협력관계가 잠시 일부 미뤄지는 것도 있겠지만 기본 골격과 흐름은 그대로 갈 것이다.
 
다만, 장성택이 상대적으로 중국식개혁개방을 선호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중국이 장성택에 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것은 처형판결문 내용(지하자원을 만탕 팔아먹도록하여 공화국에 많은 빚을 지게하고,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장성택 숙청은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북한의 반발적인 요소가 존재했다고 보여 진다.
 
   
 
6자 회담이 개최된다면, 현재 정세에서 6자회담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중국이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즉,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부분들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비핵화 평화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논의하는 틀이 바로 6자회담이다. 중국이 6자회담 열자고 했지만  미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올해로 넘어왔고, 올해 열리게 된다면 5월이나 7월에나 가능할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있어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는 북미관계가 함께 가야만 진전된다. 그렇게 돼야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다. 작년 11월 달 공식취임 후 처음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그것은 북쪽과 계속적으로 정상회담의지가 있느냐에 대한 간접적 화답이다. 
 
남북 간 좌우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6자회담 제기되느냐는 남북정상회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잘 진행될지는 낙관적이지 않다.
 
2002년도에 발표한 9.19성명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 면은 북한의 비핵화, 핵포기에 대한 합의 이며 다른 한 측면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가 같이 가야한다. 말과 말, 행동 대 행동, 기브 앤 테이크이긴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선 비핵화를 주장한다. 평화체제를 마련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먼저 비핵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일정부분 들어줘야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얘기한다. 그 뿌리에는 북한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북핵 문제와 북한의 도발 가능성, 남북한 통일 방향 등에 관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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