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사법史 오점 ‧특검뿐” vs 與 “민주 사과‧특검 불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의 경찰 수사를 의도적으로 은폐·축소한 혐의를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무죄 판결이 정쟁의 뜨거운 불씨를 당겼다.

이번 판결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국정원사건 특검문제가 또다시 정치권의 쟁점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특검 도입 공방은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여야는 그해 12월 3일 4자 회담을 갖고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2월 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게다가 특검문제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여야 모두에게 민감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김 전 청장의 1심 무죄판결을 계기로 민주당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 공세를 펼치면서도 특검문제가 다시 쟁점화 되는 것에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 질세라 야당은 이번 판결이 ‘사법史 큰 오점’ ‘권력의 폭주’라 규정하며 국정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특검뿐이라고 정부와 여당을 압박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황교안 법무장관 해임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김용판 무죄’ 후폭풍은 한동안 정치권을 휩쓸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수사축소’ 김용판 1심서 무죄 선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지난 2월 6일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3가지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5)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사건에 대한 외압 의혹을 제기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에 대해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유력한 간접증거인 권 전 과장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어긋나거나 당시 상황에 비춰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오히려 권 전 과장을 제외한 다른 증인들은 모두 김 전 청장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일치되고 상호 모순이 없는 진술을 하고 있고, 이 진술은 객관적 자료의 내용과도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서울청 분석팀이 분석 범위를 제한한 것은 임의로 제출된 노트북과 컴퓨터를 적법하게 분석하기 위해 임의제출자의 의사를 고려한 자체적인 결정"이라며 "이 결정이 부당하다고 보기 어려울 뿐더러 김 전 청장의 지시에 의해 '분석 범위 제한 논리'가 개발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김 전 청장은 분석 전 과정을 영상녹화하고 분석 과정에서 선관위 직원과 수서서 직원을 참여시키도록 하는 등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분석 결과물이 수사팀에 다소 늦게 반환된 것은 맞지만 분석관들이 분석 종료 직후 기자간담회 등 후속 일정을 소화하느라 시간적이 여유가 부족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지연 사유에 충분히 수긍할만한 점이 있다"며 "반환 업무는 통상 상부에 보고조차 되지 않는 업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 전 청장은 이같은 사정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245호 회의실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최경환 원내대표가 김용판 무죄 판결과 관련 "온 나라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민주당은 국민들께 최소한의 입장표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새누리 “침소봉대 민주당, 사과하라”
“도 넘은 정치공세에 일침을 가한 것”
“특검불가, 소모적 정쟁의 우 범하지 말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지난 1년간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이번 판결에 대해 “침소봉대하며 1년 내내 대선 불복에 매달려 도 넘은 정치 공세만 일삼은 야당에 일침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김 청장 무죄 판결’ 다음 날인 7일 오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고 "야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또다시 정치 공세와 소모적 정쟁에 불을 지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 원내대표는 “이번 판결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소영웅주의와 사익에 매몰된 정치수사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본인들이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모든 것을 부정하며, 정의가 아니라고 매도하고, 온 나라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민주당 생떼를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은 이 점에 대해 국민들께 최소한의 입장표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김용판 전 청장이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죄를 범한 게 아니라 민주당이 김 전 청장에게 허위 대선개입의 죄를 뒤집어씌운 게 밝혀진 것"이라며 "축소·은폐된 게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를 오히려 민주당이 대선 개입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수석부대표 역시 “민주당은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성찰하고, 고백하고, 그리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민주당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특검 도입 여부를 2월 중 논의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수석부대표는 “특검은 한마디로 사법정의와 삼권 분립을 부정하는 선동”이라며 “지금은 민주당이 특검을 말할 때가 아니라 특별한 반성을 해야 할 때”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략기획본부장인 김재원 의원도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특검 도입 요구에 대해 "삼권 분립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 김한길 대표와 의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특검촉구 및 김용판 부실수사 규탄대회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野 ‘김용판 무죄’ 십자포화
민주, 특검 도입‧황교안 해임건의안 불사
정의, “특검만이 마지막 진실 수단”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은 이번 판결을 정치적 판결로 규정하며 국정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특검뿐이라고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실정비판을 부각시키고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이번 판결과 관련, ‘무죄 프로젝트 가동 결과’라고 강력 반발하며 최고위원회의와 긴급 의원총회, 김 전 청장 1심 판결 규탄대회를 잇따라 열며 특검도입 공세에 다시 불을 붙였다. 황교안 법무장관 해임카드도 꺼내 들었다. ‘정권 퇴진’ 구호가 다시 등장할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 속에 민주당 내에서는 특검 도입을 관철하지 못하면 지도부의 책임론까지 거론될 만큼 후폭풍 조짐까지 나타났다.

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김 전 청장의 무죄판결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김한길 대표는 "법 상식에 기초해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 결과이다. 정권의 노골적인 수사방해로 진실과 국민이 모욕당했다"면서 “집권세력의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는 결국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 오늘의 자화상 보는 것 같아서 수치스러운 생각 들었다. 특검이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검찰 특별수사팀은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특검을 통한 재수사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특검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검찰의 부실수사를 초래한 외압수사의 장본인인 황교안 장관의 즉각적인 해임과 특검 실시를 박근혜 정권에게 엄중하게 요구한다"며 "특검 시기와 범위 협상하기 위한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전 원내대표는 "공소 유지조차 하지 못하는 검찰도 부실수사가 초래한 재판 결과를 핑계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일랑 접어야 한다"며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을 위한 특검을 즉각 수용하는 것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고위원들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양승조 최고위원은 "외눈박이 판결이며 양심 저버린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 사법부는 김용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민은 김용판과 박근혜 정권 사법부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특검 수용을 통해 진정성을 국민에게 전달해 달라. 그것만이 사법부 판결에 대한 국민 의구심을 풀어주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박혜자 최고위원 역시 "황당해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알고 있냐. 국민들은 그 사자성어를 용판무죄라고 한다. 어제는 국민들의 억장과 대한민국 정의가 무너진 날"이라며 "용판무죄와 인과관계가 있는 사자성어는 특검도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속 의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박범계 의원은 "착잡한 심정이다. 김용판 피고인에 대한 무죄 판결은 검찰의 부실수사와 재판부의 불공정한 재판의 합작품"이라며 이번 판결은 소위 말하는 국민의 보통의 보편적인 법감정과 상식을 저버리는 잘못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의원은 "권력에 의한 결과지만 민주당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노력 없고 신뢰받지 못하는 야당은 추풍낙엽처럼 국민에게 외면당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권에 맞서 결연하게 싸워나갈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의원은 "정권과 권력이라는 것이 수사 방해공작을 통해 재판결과를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며 "역설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특검의 필요성이 더 강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 직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장외 규탄대회을 열어 “126명 민주당 의원은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위해 불퇴전의 각오로 투쟁할 것을 서약한다”며 특검도입 불사 의지를 다졌다.

또한 황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사건의 핵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재판까지 맡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는 해석이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상무위원회의를 열고 "사법부의 권위 그리고 그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재판부는 스스로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언제가는 반드시 져야 한다"며 "특검의 도입은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사법적 국기문란 행위를 사법부가 도대체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많은 국민들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 분노가 정권의 위기로 비화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즉각 특검 도입을 수용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문재인 “권력의 폭주,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
새정추 “상식의 문제, 특검 밖에 없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의 교체로 공소유지를 방해한 권력의 의도가 그대로 판결에 반영됐다고 본다”며 “이제 이 같은 권력의 폭주를 누가 막을 것인가”하고 개탄했다.

문 의원의 대변인 격인 윤호중 의원은 ‘진실은 아무리 땅에 파묻으려고 해도 반드시 드러난다’는 덴마크 속담을 인용해 “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 말의 뜻을 잘 새겨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창당 준비조직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도 특검만의 해답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석 공동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추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국정원 댓글사건은 역사적 심판 과정으로 만들어야하는데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지 못한 것에 정치권 전체가 책임을 느끼고 성찰해야 한다. 진보, 보수, 여야를 넘어 상식에 관한 문제"라며 "이젠 특검 밖에는 없다. 국민적 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판 무죄 판결’이 특검도입의 불씨가 되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의 진실에 선명한 빛을 비출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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