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훈 칼럼니스트
現 국가개발연구원장
現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정치·경제 컨설턴트

【투데이신문 김용훈 칼럼니스트】포대기 속에 싸인 작은 아이는 엄마에게 기대 앉아 조그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자유롭게 되지 않는지 손바닥을 쫙 편 채 검지 손가락만 앞세워 엄마가 잡고 있는 스마트폰을 툭툭 건드리며 장면 장면마다 신기함과 놀라움을 토해내며 집중하고 있다. 지하철의 많은 사람들로 인해 한번쯤은 주변을 둘러보며 깜찍한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오르지 작은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으며 신나는 모습이다. 신세대 엄마 역시 아이의 생기발랄하고 예쁜 표정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글씨를 보며 흡족해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이고 스마트폰의 보급률 또한 우수하다. 인터넷 이용자수가 10년 만에 1천만 명이 늘어 4천만을 넘어 섰고 인터넷 이용률은 65.5%에서 82.1%로 확대되었다. 스마트폰을 보유한 가구가 전체 가구의 79.7%로 증가하면서 유선 인터넷 접속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터치만으로 작동되는 편리한 스마트폰의 이용률이 증가한 까닭이다. 이러한 시대의 환경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아이는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스마트폰에 나오는 각종 광고와 게임 그리고 애니메이션에 빠져 자라난다. 색색 깔로 화려한 칼라의 그래픽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영상에 깜찍한 효과음이 아이의 정신을 쏙 빠지게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마냥 아직 말도 떼기 전의 아이는 이렇게 그림을 터치하고 뭔가를 보고 즐거워 하지만 조금 머리 큰 아이들은 미친듯이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산다.

풀브라우징이 구현되는 최신 휴대폰은 컴퓨터 못지않은 성능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게임 속에 빠지거나 드라마 속에 빠져 전철 안에서는 물론이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스마트폰에 혼을 빼앗긴다. 심지어 서로의 눈동자를 읽어가며 감정을 키워야할 연인마저도 서로 마주보며 스마트폰에 집중을 하고 있다.

이처럼 편리함에 깊이 사색해야 할 부분도 생각하지 않고 작은 궁금증에도 기억력을 되살리거나 추리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한량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하고 손가락을 연신 터치하며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기억해야하거나 의식하고 있어야할 부분마저도 모르면 바로 스마트폰을 터치를 해버린다. 알고 있어야 할부분도 기억해야할 부분도 필요가 없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이 자신의 전두엽을 대신하고 있다.

두뇌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새로운 기술을 접하여 자라난 현재의 젊은이들을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뭔가를 해보지 않은 그들은 가장 무기력한 세대이기도 하다. 당장 무엇이든 척척 해법 아닌 응답을 내놓는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떨어져 있을 때 매우 불안해하고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생각조차 하기 힘든 뇌사상태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순식간에 변하는 사이버 세상에 자신의 은둔처를 마련해 놓고 모든 관계조차 사이버 세상이 편한 우리에게 현실의 사회는 가상보다 공허하고 낯설어지고 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혼자서도 아무런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우리에게 미래는 무엇일까?

이러다보니, 쉽게 찾아온 방법들에 익숙해져 막상 인생의 중대사 또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 도래하면 결정은 고사하고 선택에서도 망설이게 되거나 코마상태가 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교계는 물론이고 생계마저도 찝쩍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인터넷 뒤에 몸을 숨기고 관망을 한다. 덩치만 크고 늙었지 애와 어른이 구별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은 자신마저 믿지 못하고 남의 일을 관망하며 관음증에 찌든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무엇이든지 기계와 인터넷에 의존하다보니 자신의 역할과 사고는 점점 좁혀가지고 누구의 그늘 밑 또는 뒤에 서있는 것이 익숙하고 편해졌다.

속된 말로 날로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창피해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들만큼만 자신의 이상에 가장 큰 도달점이 되어버리고 그마저도 안 되면 오랫동안 공황장애에 빠져 감각이 버티지를 못한다. 쉽게 산다는 것이 어디 편한가? 하지만 지금은 쉽게 사는 것이 굳이 돈이 없어도 길게 장기적으로 버틸 수가 있게 되었고 그러한 삶이 그리 나쁘지도 않게 되었다. 사회적응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니 사람과의 조직력과 응집력 관계력 친화력은 스마트폰에 검색하여 나오는 검색어에 불과하다. 적극성이란 오르지 스마트폰의 가상세계에서는 가능하고 현실 속에서는 한없이 소극적이거나 아예 함께하지 못해 스스로 낙오자가 된다.

문명의 발달이 편의를 가져다주는 것은 맞다. 그러나 누릴 수 있는 편의는 생활의 작은 부분으로 이용되고 활용돼야 한다. 즉 편의를 활용하여 자신이 작은 역할을 쉽게 하려는 것이지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한다. 한방의 편리함이 곧 실패의 한방이 될 수가 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인지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일은 가치를 찾아낼 수 있지만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나친 의존을 하게 되면 결국 그 편의에 종속되어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전화, 위성통신, 무선랜, 디지털방송이 연동된 4세대 이동통신이 초당 1기가바이트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다. 헌것은 그렇다 치자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마저 엄청난 속도로 기기에 종속되어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내게 하지 않으려면 기술의 편의에 무조건적인 이용이 아닌 목적에 의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하자. 분명 이 또한 웹창에 “홀로서기 방법?” “인터넷 안 하고 사는 법?” “창조적인 삶이란?”이라는 검색어를 치지 말고 스스로 자아와 가치관의 굴림으로 반드시 성장해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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