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HJ Culture

【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 칼럼니스트】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이 만나면 어떨까?

뮤지컬은 시간의 연속성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회화는 일정한 공간을 구성하며 완성되는 예술이다. 공간과 예술의 접목. 필자는 이것을 ‘갤러리 뮤지컬(gallery musical)’이라고 부르고 싶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서양 미술사에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37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고독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생전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흐를 도운 것은 그의 동생 테오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칭송을 받지만 살아생전에는 누릴 수 없었다. 그를 누군가는 ‘광기 들린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가난 속에서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고 정신적인 불안과 고뇌가 지금의 고흐를 만든 것은 아닌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았던 700여 통의 서신(書信)을 대사화했다. 지면 위에 담긴 빈센트의 육필과 그림은 무대를 에워싸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다. 고흐의 삶과 예술이 그의 작품과 편지로 무대 위에서 복원된 것이다.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의 반원형 무대는 심플했다. 흡사 캔버스에 간단한 스케치만 해놓은 듯 보이는 새하얀 벽, 침대와 의자, 문 등 간단한 가구. 대형 뮤지컬에 볼거리를 중시하는 요즘의 대형 뮤지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케치에 색을 입힌 것은 무대를 가득 메운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투영되는 빈센트의 수십 장의 그림 그리고 영상의 위트 있는 모습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무대 위 배우들이 영상과 앙상블을 잘 이룬다는 생각보다는 영상에 연기를 방해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의 천재적인 모습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오의 형이자 목사의 아들, 친구이자 남자로 살았던 평범한 고흐의 모습과 그 속에 보이는 갈등은 반 고흐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기 원한다. 허나 세상은 그의 작품이 형식이나 구도를 무시한 졸작이라며 무시하고 저평가한다. 성공지향적인 삶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고자 했던 빈센트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후(死後)에 비로소 최고의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빈센트.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그의 아름다운 그림과 드라마 같은 그의 삶 자체이지만,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단어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주는 보너스이다.

2인극으로 90분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다 인물의 일생을 다루는 것은 자칫하면 드라마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허나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것과 빈센트의 그림을 큐레이터(curator)가 설명해주는 듯 자연스럽게 그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찬사, 광기로 치닫는 예술혼,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고흐의 생애에 박수를 보낸다.

4월 27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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