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의의 적들' 저자, 범죄심리전문가 표창원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회초리로 때려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말로 하는 거예요”

‘범죄심리분야 전문가’하면 떠오르는 사람, 표창원(48). 그가 회초리 대신 책을 들었다. 사회정의를 해치는 정의의 ‘적’들을 향해서 말이다. 이런 소망을 담아 <한겨레신문>에서 인기리에 연재하던 칼럼 ‘표창원의 죄와 벌’을 다시 엮어 <정의의 적들>을 내놓았다. 책 쓰는 것을 ‘출산’에 비유한 그는, 13번째로 자신의 분신과 같은 책을 내게 됐다고 말한다.

<정의의 적들>은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관계된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한다. 때론 항의를 받고 소송위협도 받은 적 있지만 그는 굴하지 않는다. 사실의 오류가 없기에 오히려 당당하다. 우리 사회를 향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돌직구를 던지는 표창원. 그가 던지는 공에 맞는 사람들이 곧 ‘정의의 적’들이다. 법을 어기는 자, 권력이란 이름으로 정의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자, 불의에 침묵하는 자…. 정의의 적은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너무 많았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들은 권력에 장악된 사법부를 비롯해 진실이 은폐된 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사연, 돈으로 면죄부를 받은 사건까지. 보는 내내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어딘가 숨어있는 정의감을 불타오르게 한다. 눈 감고 침묵하는 것도 정의의 적이라고 말하는 표창원. 이것이 그가 세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는 이유다.

<투데이신문>은 지난달 28일 오후, 청담동 근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평소 방송에서 보여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푸근하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왠지 까칠하고 무뚝뚝할 줄 알았던 예상이 자연스레 빗나간 것이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다가도 정의, 범죄, 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무섭도록 진지해졌다.

그는 원리와 원칙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는 인연을 끊을 만큼 원칙주의자다. 착한 척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할 말 서슴없이 하는 사람. 경찰에 몸담았었음에도 우리나라 사법기관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용기있는 사람. 약자의 편에 서는 정의의 사도같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괴짜라고 하지만, 그는 그런 삶이 좋다며 웃는다.

- 책을 출간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번 책은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기고하던 칼럼을 바탕으로 쓴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범죄, 불법의 문제들을 단순하게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층적인 부분들을 파고들었죠. 책을 통해 과연 범죄의 근원에는 뭐가 있는지 던져주고 싶었어요. 그걸 저는 ‘정의’라는 문제로 접근한 거죠.

돈이 많고 적고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하지만 인간이기에 같은 것은 딱 두 가지있죠. 평등하고 모두가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법 앞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해요. 헌법에 쓰여 있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상황을 방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자 목적이죠.

- 책 소개를 부탁한다.

지금껏 우리가 단순히 주변에서 발생하는 범죄행위에만 주목했다면 이 책은 그러한 범죄행위들의 배경, 토양, 근원이 될 수 있는 깊은 문제, 특히나 권력의 범죄를 말하고 있죠. 권력이 썩을 때, 권력 스스로가 법을 지키지 않을 때, 권력 이용해서 범죄 저지르려고 할 때 그걸 찾아내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런 수사제도의 기본적인 목적이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도록 만들어져 있단 말이에요. 이처럼 서민들의 범죄만 살피도록 만들어져 있다 보니까 그 위에서 행한 범죄들은 참 찾아내기도 해결하기도 어렵다는 거죠. 그런 부분을 말하고 싶었어요.

- 책을 쓰면서 어떤 점을 신경 썼나.

가능하면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인 범죄지만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범죄행위 한 자들과 사회적 파장이 있는 것들을 소개했고요. 범죄를 수사하라고 만들어놓은 수사기관 스스로가 법을 어기는 범죄행위들, 그건 그야말로 있어선 안 되거든요. 직무를 이용해 공공의 신뢰를 받기 때문에 수갑도 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정보도 들여다볼 수 있는 등 특권을 누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수사행위를 할 때 절대로 법을 어겨선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져 있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걸 어기는 범죄행동은 그 수가 적다해도 결국 시스템에 대한 법을 집행하고 그 법을 어긴 자들을 심판하는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만들어 내죠. 그 부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소개했어요. 또 독자들이 법집행이나 관련된 분야가 아니라하더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의롭게 살아야겠다’ 혹은 ‘불의를 보면 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 <정의의 적들>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꽤 걸렸죠. 연재됐던 걸 그대로를 모아 찍어낸 게 아니거든요. 편집, 배열도 다시 해야 하고요. 또 처음 칼럼을 썼을 때와 달리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이 더 진행된 경우도 있고 추가된 사실이 발견된 경우도 있어서 하나하나 다 점검했어요. 칼럼을 썼을 때의 표현 역시 고쳤죠. 새로 책을 쓰는 것 못지않게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 책이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남자는 아이를 못 낳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문학작품이나 아내를 통해 간접적으로 출산에 대해 듣기는 하지만 직접 느끼진 못한단 말이에요. 책이 딱 나올 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감정이 들었어요. 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가 세상에 나온 느낌, 성취감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내 이름이 박힌 내 아이같은 존재가 있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해서 외면받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감도 당연히 있지만요.

-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주로 SNS를 통해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비판은 다른 곳에서 하실테지만(웃음). 저는 재미있다는 말이 제일 듣고 싶어요. 제가 쓰는 책, 강연 등이 재미를 드렸으면 좋겠어요. 약이 아무리 몸에 좋아도 너무 쓰면 먹기 힘들잖아요. 당의정(糖衣錠)처럼 메시지도 전달하고 재미를 드리고 싶어요. 재미가 있어야만 읽어보시라고 감히 권할 수도 있는 거죠.

- 책에서 말하는 ‘정의의 적’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해치고, 빼앗고, 다른 사람을 망가뜨리는 행동. 이런 것들이 다 정의의 적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시 말해 정의의 적들이란 정의를 자꾸 희석시키고 훼손하거나 또는 의미를 반감하려는 모든 자들이죠. 무엇보다 직접 범죄를 행하지 않더라도 엄연히 살아있는 사회의 정의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회의 정의 수준을 낮추려고 시도하는 자, 폭넓게 정의의 적들이라고 보죠.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 옳지 않은 부분에 고쳐나가는 입법을 방해한다던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죠.

- 그렇다면, 반대로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옳은 것이죠. 저는 상대적 정의론은 믿지 않아요. 그건 오히려 합리화이자 정당화이며 정의를 희화화하고 그 의미를 깎아 내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정의는 반드시 법적, 철학적,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해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살아온 사람들, 이 세상과 눈높이를 맞춰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게 형성돼 있죠. 국민의 법감정, 상식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그래서 정의는 상식일 수밖에 없어요.

 

- 책을 통해 정의가 ‘반드시 온다’고 말했다.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가 반드시 온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역사인데요. 일제의 불의한 시기가 36년이나 지속됐잖아요. 그래도 저항한 분들이 독립투사이고 ‘일제의 지배가 계속될 거야’라고 한 사람들이 친일파잖아요. 그 이후에 유신독재, 5공 독재도 마찬가지죠. 옳지 않은 것은 비록 오랫동안 힘을 갖고 감추고 진전을 방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가진 못해요. 그들의 힘이 끝나는 순간, 단죄받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죠. 그게 곧 정의는 반드시 온다는 의미고요.

또 하나는 인간의 본성이에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물질만능, 황금만능 이런 세태로 바뀐다 해도 인간의 대뇌 자체가 올바른 일을 해야만 기쁨을 느끼도록 보상체계가 만들어져 있어요. 그건 심리학, 뇌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학습이나 경우에 의해 ‘어릴 때부터 겪어봤더니 괜히 입바른 소리 했다가는 혼난 적이 많다’ 혹은 ‘강한 자에게 빌붙어 있으면, 양심을 조금 꺾으면 이익이 생기더라’ 하며 살아나간다고 해도 이면에는 그게 옳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죠. 그런 본성이 건드려지게 되는 계기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요. 범죄 저지른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면, 죄를 저지른 자가 이기고 정의가 죽은 걸까요. 아니라고 봐요. 그 나름대로 어디서든 대가를 치르고 있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그 삶이 범죄행동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없어요.

- 묻지마 살인,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 한국사회는 온갖 범죄와 비리가 만연하고 있다.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이죠. 권력의 이기적인 속성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아직까지 확실히 안 돼 있어요. 예를 들면 삼권분립을 만들었다 해도 결국에는 가장 강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비열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삼권분립이 확립된 국가라면 사법부의 수장이면 대통령 못지않은 자기 스스로의 독자적인 영역의 수장이잖아요.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대법원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 앞에서 고개 숙이고 시키는 대로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죠. 실제로도 그렇고요. 경찰청장은 안 그런가요. 저는 역대 경찰청장을 대단히 불쌍하게 보거든요. 그 분야에서 최고의 수장이면서도 자부심이나 용기, 만족을 찾아보기 힘들죠.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나의 모든 힘을 다해서 경찰을 발전시키겠다’는 모습이 아니에요. 나보다 더 강한 자 앞에서 조아리고 구걸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이 일어서고 옆 사람 또 일어서고 하면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그런데 왜 자꾸 당신들은 무릎꿇고 조아리느냐’라고 이런 이야기를 제가 끊임없이 던지고 싶어요.

- 사실 지금 경기침체로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정의를 논한다는 게 우리에게 사치라는 생각도 드는데.

예를 들어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헐벗고 못 살게 된 건 어쩔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함을 느끼고 돌봐줘야겠지만 그건 어찌 보면 근본적인 사회적인 문제라고 보기 어려워요. 근데 잘못한 게 없음에도 억울한 피해를 보고 핍박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있잖아요. 특히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이들이 공평한 출발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 제가 살고 있어요. 내가 아무리 잘나가고 많이 가진다한들, 누가 날 존중해줍니까.

삼성에 취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통과하면 행복해지나요. 이 세상이 이렇게 썩어있는데 그렇다고 자기 행복을 포기해야 하나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돼요. 내가 과연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관심갖고 있는지 고민하고 반성해야 해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라도 클릭하고 트위터에서 ‘리트윗’이라도 해야죠. ‘어차피 세상은 더러운 거야’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정의롭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예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 행복해지는 거예요. 정의가 없으면 행복도 없는거죠.


- 책에서 대한민국은 정권의 위기 때마다 엉뚱한 사람을 간첩이나 영웅으로 둔갑시켜온 어두운 역사가 있다고 했다.

수지김 사건의 경우 윤태식이라는 남편을, 당시 살인자를 영웅으로 만들었어요. 독재자들은 그런 짓들을 늘 해요. 그래서 대중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대중은 우매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정보체계를 그들이 통제, 장악하고 있으니까 모르는 거죠. 우매해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쉽게 말하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피의자 유우성 씨 같은 경우도 정보가 통제되고 장악되니 처음에는 ‘아 간첩인가보다’하며 보고 있는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 짓을 하는 정권, 뻔하다는 거죠. 제가 회초리만 있다면 회초리로 때려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말로 하는 거예요.

수지김 사건 : 1987년 1월 홍콩에서 한국 여성 수지김이 남편에 의해 살해되자 국가안전기획부가 전두환 군사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수지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한 사건. 

-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의가 무너지는 이유, 근본적인 것이 권력이에요. 국정원 대선개입과 간첩조작사건이 전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거죠. 자기네들이 권력을 이용하고 국민의 신뢰를 악용해서 범죄를 저질렀으면서 들키고 나서는 뭐라고 하나요. ‘우리도 한 사람의 작고 약한 피해자’라고 방어권을 누리게 해달라고 난리를 치잖아요. 엄연히 말하면 그들은 다른 피해자들과 달라요. 다른 피해자들은 개인의 약한 모습으로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상태에서 억울한 점도 있고 이런 시스템에 맞는 방어권에 맞는 권리를 누려야 될 권리가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국민의 세금과 공공의 신뢰 여기에 바탕을 둔 법과 권력을 갖고 악용해 범죄를 저지른 거잖아요. 그럼에도 발각됐다면 그때 두 손들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나와야 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시면 자기들이 범죄를 저지르죠. 이걸 감추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요. 이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 같은 기관이다 보니까 그들이 제대로 못하고 있죠. 법 앞의 평등 원칙에 따라, 다른 피해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못 해요. 감추고 연루되죠. 이건 사법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리는 거예요.

- 경찰, 검찰, 국정원이 정의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에게 힘을 부여받아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아닌가.

결국 권력이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죠. 사법기관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법과 제도 인사를 가지고 강아지처럼 부리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언론이 뭐라하든 권력이 진실을 왜곡하든 간에 무엇이 옳은지 다 안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언젠가 그들 마음속에 뿌려진 씨앗이 어떻게든 달라질 거예요. 그게 법과 제도를 통해서 완비가 되면 검찰은 앞으로 제재조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러나 경찰은 아니에요. 지금껏 경찰청장이나 고위관료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의를 향한 몸부림, 경찰 조직의 정직성, 국민으로부터의 신뢰 원칙의 준수, 이런 부분을 위한 저항이 아니란 말이죠. 위에서 붙잡고 노는 것도 문제지만 경찰 스스로가 자존심을 찾고 긍지를 찾고 명예를 찾겠다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한 몫한다고 봐요.

-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소극적인 수사에 반발하면서 경찰대 교수를 그만뒀다. 후회는 없나.

후회는 전혀 없어요. 만일 제가 잘못했고 뭔가 욕심을 부렸다거나 이랬다면 당연히 후회를 하겠죠. 그런 게 아니니까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 뭘 얻기 위해서 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결과가 좋고 나쁘고에 따라 후회한다면 그건 아직 인생을 제대로 못 산 사람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 책이 사실적이면서도 속시원하기도 하다. 한편, 일부는 과격하고 직설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의견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다 수용해요. 단점은 하나도 없는, 장점만 있는 글을 쓰겠다는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좀 직설적이죠(웃음). 때론 실명도 거론해버리니까요. 그래서 당사자들의 항의도 많이 받았어요. 소송 위협도 받아보고요. 때론 사실의 오류가 있던 경우도 있었어요. 직접적인 오류보다는 오보라든지 재판과정에서 이후 판결에서 내용이 바뀐 경우였죠. 물론 저의 주관에 해당하는 부분은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고요.

 

- 그 동안의 행적을 보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뛴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로운 말,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주로 제 나이 또래에 한국 사회, 특히 조직사회에서 살아오신 분들은 저보고 어떻게 사냐고 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우리 사회의 중년 남자가 즐기는 술도 안 먹고 골프도 안 치거든요. 인맥을 넓히는 일도 잘 안 해요. 누가 식사하자고 하면 목적이 뭔지부터 물어요. 이렇게 사니까 재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과거 경찰관, 경찰대 교수시절, 사건과 관련해 부탁한 사람과 인연을 끊기도 했어요. 일반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괴짜죠. 과격하고 지나치고요. 그게 오랫동안 습관화 돼있다 보니 괜찮아요. 음식도 덜 짜고 덜 매운 거 심심한 음식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잖아요. 그런데 남들 볼 때는 어떻게 그런 걸 먹고 사냐 그러죠. 그거랑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된 계기가 있는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게 영국 유학이에요. 일선에 있을 때는 술을 엄청 마셨죠.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보통 사람들처럼 살았을 거예요. 집에 있는 게 어색하고, 아이와 아내와 대화하는 게 익숙치 않고 말이죠. 주로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그랬을 거예요. 경찰관 시절 유학을 갈 기회가 생겼고 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반대했어요. 간부로서 높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기에 이제 승진도 하고 커나갈 수 있는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죠. 연예인들이 한창 잘 나가려고 할 때 유학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 시기인 거예요. 그렇게 원했던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그곳 생활 습관대로 살 수밖에 없었어요.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죠. 그러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신혼 초기부터 아내와 함께 공부하고, 도시락도 먹고,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소소하게 살다보니까 그게 습관화가 돼 버렸죠.

- 지금껏 다양한 사건을 접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하지혜 양 사건이었어요. 영남제분 회장 부인인 윤길자 씨가 이화여대 법대생인 하지혜 양과 판사인 사촌오빠와의 관계를 의심해(실제 그런 일 없었는데) 청부살해했던 사건이죠. 검찰이나 경찰이 포기 내지는 범인을 못 잡고 있었을 때 아버지가 직접 생업을 포기하고 뛰어다니면서 해외로 도피한 범인들의 위치를 알아냈어요. 윤길자라는 여자는 워낙 악독하고 교묘하고 돈도 많다보니까 청부사실을 숨기려고 했어요. 이후에도 하지혜 양 아버지가 쫓아가서 사실 밝혀내고 그 다음 청부살인이 밝혀져서 무기징역형 받았는데도 교도소도 안 가고 세브란스 병원 특실에서 호화롭게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죠. 국가가 풀어준 거예요. 그래서 이 사실을 안 아버지가 언론에 고발하고 다시 돌아가게 됐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제가 죄송했어요. 지금 경찰 소속은 아니지만, 한때 몸담았었고 그 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피해자 아버지와 가족 분들이 겪어야할 고통과 국가에 대한 불신, 사법시스템에 대한 원망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딸의 한을 풀고 싶다는 아버지의 부정이기도 하지만 전체로 보면 우리 사회의 무너져가는 정의를 그 아버지가 붙들어 세워주신 거예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고 안타깝고 안쓰러웠어요.

-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다 보니 이를 좋지 않게 보는 이들에게 외압이나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나.

불이익을 당할 게 없잖아요. 가진 게 없으니까 (웃음). 불이익은 뭐가 있어야 승진이 누락된다든지 월급이 깎인다든지 하겠죠. 근데 지금 백수인데 무슨 불이익을 주겠어요. 법을 어긴 것도 없고요. 지금은 외압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당, 정부, 경찰, 검찰 이쪽에 있는 사람들도 제 반경 100m이내 접근을 안 해요. 한 번은 학생들이 강의요청을 해서 다 잡아놨는데 대학 측에서 강의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취소된 적도 있어요. 그게 외압인가요. 근거는 없어요. 불이익보다는 불편은 좀 있죠.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하면서 자유를 누리고 이 사회 이익까지 챙기겠다는 건 욕심이죠. 제 나름대로 권력이나 정권, 정부 등의 도움 또는 관계없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어요.

- 자신을 ‘진짜 보수’라고 밝혔는데.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한 점이라든지 그간 저의 발언을 보고 진보라고 보는 분도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제 생각에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가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아요. 기득권으로 생떼 부리고 성장이나 성공을 위해서라면 법원칙을 좀 어겨도 된다는 것을 보수라고 여기죠. 헌법, 법률, 윤리, 도덕 원칙 등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기득권, 정권과 권력을 비판하는 것을 진보라고 오해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죠. 전부 자기들 나름대로 방식으로 올바른 세상,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말해요. 방식에 있어서 보수는 현재의 시스템, 제도, 관행, 원칙, 법들을 지키고 시대에 맞게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게 보수적인 방법인 거죠. 진보는 근본적인 틀의 개혁, 사회권력의 변화 이런 것들을 목표로 하는 방식이고요. 하지만 매번 ‘지금의 시스템 구조를 잘못됐다’, ‘바꿔야해. 아니면 방법이 없어’ 라고 하는 건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저는 보수일 수밖에 없어요. 30년 가까이 경찰관, 교수로 살아왔고 누구보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정의가 구현되길 바라고 있거든요.

- 교수직 사직 후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는 예상들도 많았다. 정치에 대한 꿈은 없는지.

전혀 없어요. 저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살면서 어떤 이익같은 것들 때문에 삶의 원칙을 바꾸지는 않거든요. 사실 저도 옆에서 자꾸들 정치를 해보라고 말씀하시니 ‘내가 정치해보면 어떨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상적인 모습의 정치와 현실 정치가 다르다는 것을 요즘 많이 알게 됐어요. 정치인들로부터 정치에 입문하라는 요청과 권유도 받아오며 1년3개월 동안 분석해 “정치는 내 분야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죠. 정치하길 바라시는 분들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 마음을 버리라고 말씀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네요.

 

- 책을 만들고 글 쓰는 일, 어떤 매력이 있나.

제 글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것에 대해 기대와 흥분과 설렘이 있어요. 처음 구상하고 글쓰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에너지와 고민,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 어렵고 힘든 걸 때론 피하고 싶기도 하는데 오래 못가요. 이미 중독돼 있거든요. 평가를 받고 도전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요. 고집스런 사람의 생각을 내 글로 바꿔보고 싶다는 의욕도 있죠. 글쓰기가 주는 재미도 대단해요. 제가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글쓰기를 아무런 편견 없는 상태, 객관적인 상태에서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에요. 정치를 하면 그런 특권, 나만의 주관과 소신이 날아가 버리거든요.

- ‘표창원=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추구하는 삶이고, 계속 그러고 싶고요. 근데 제가 약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강하고 싶어요. 결코 남에게 동정이나 불쌍함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그런 분들이 자기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의 첫 출발부터 기회를 부여받지 못해 약자가 된 게 대부분이고요. 성장, 학업과정에서 본인의 적성을 찾아가지 못하는 환경에 있어 그런 분들도 있고요. 그런 분들이 힘이 없고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삶을 누릴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건 너무 싫어요.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건 뭐냐면 저의 이기심이에요. 제가 쾌감, 기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죠. 인간은 나의 성취, 나의 노력의 결과 이런 것들을 느껴야 행복하죠. 믿음, 신뢰, 사랑 등이 행복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행복하겠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굶고 처절하고 있어요. 그럼 내가 행복할 수 없어요. 이분들을 위해 나의 능력, 가진 것들을 써야 해요. 그때 나는 이기적으로 ‘나는 할 만큼 했어. 외면하지 않았어’라는 위안을 느낄 수 있죠. 그래서 사실 이기적인 거예요. 다른 분들이 봤을 때는 ‘당신, 약자편이네’라고 해주시지만 사실 그게 진정으로 같이 있고 그분들과 헐벗지는 않잖아요. 마더 테레사나 간디처럼. 저는 그런 위인은 절대 아니에요. 결코 제가 착해서 그런 건 아니죠.

-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겸손한 표현같다.

솔직한 거죠. 전 강의할 때도 그렇게 얘기해요.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아라”라고요. 재벌이나 힘있는 사람들이 행복해보입니까? 아무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부러울지는 몰라도요. 사실 행복하지 않거든요. 가지기만 하지 나눌 줄 모르죠. 그만큼 가지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아요. 제가 지금 약자 편에 있다는 칭찬을 듣는 게 절 행복하게 하잖아요.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바보예요.

- 최근 한 강연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백범 김구와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통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 분들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부분은 김수환 추기경이 답을 주신 거예요. 우리 인간이 처음 태어날 때 아기는 큰 소리내서 울지만, 간호사나 가족들은 예쁘다며 웃지요. 그럼 우리가 죽을 땐 어떻게 돼야 할까요. 나 혼자 웃고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그 이상의 답이 있을까요. 직업도 천차만별이요, 삶의 방식 취향, 다 다르잖아요. 그렇게 본다면 답은 하나죠. 죽음을 생각하면 돼요. 언젠가는 죽는다고 말이에요. 내가 죽을 때 돈이나 권력을 가져가지 못하잖아요. 주변사람들의 눈물만 가져갈 수 있죠.

백범 김구 선생님 말씀도 같은 맥락인데요. 김구 선생님은 힘든 외세지배 시기에 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던 많은 분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시잖아요. 이 분이 그렸던 우리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일본을 무찌르고 복수하는 그런 나라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을 꿈꿨을까요. 아니란 말이죠. 이분이 꿈꿨던 국가는 우리가 남에게 강압과 피해를 당했던 경험이 있으니 우리는 남을 강압하고 가해하지 않는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는 거죠. 우리가 너무 많이 가져 남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자는 말이에요.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바로 ‘문화’라고 했어요. 돈을 많이 가지면 주변 사람들이 기분이 좋나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잖아요. 권력도 마찬가지죠. 웬만한 건 나에게 좋지 남에게 좋지 않아요. 하지만 김연아 선수나 싸이를 보면 나 혼자만 좋은 게 아니죠. 우리 모두 행복해지잖아요. 이렇듯 김구 선생님은 문화가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해주기에 문화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계에 모범이 될 수 있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평화로울 수 있다고 하셨죠. 이는 우리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는 자유로운 어떤 시장, 사회 안에서 처음부터 제로에서부터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연구소를 만드는 거예요. 얼마 전 연구소 사업자등록을 했고요. 이름은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예요. 앞으로 이곳에서 범죄과학과 관련된 교육, 연구, 분석, 문화 등 4개 분야에 대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실제로 정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분석해서 제출해주는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초등학생부터 전문가영역까지 범죄예방 등에 대한 교육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미국 드라마 CSI같은 드라마 만들어내는 전문가 그룹이나 범죄물 장르가 없어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일본캐릭터 명탐정 코난에 빠져서 소비하고 사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요. 그래서 국산 캐릭터인 뽀로로와 같이 우리만의 탐정캐릭터를 만들고 영국이나 미국인들이 한국의 범죄 추리물을 기대하길 바라요. 제1의 인생은 경찰로 제2의 인생은 자유인으로 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대로 살았죠. 앞으로 제3의 인생은 범죄분야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저의 꿈을 이루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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