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대중가요를 연구하는 일은 당시의 사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으로 각종 신문을 검색하고 보는 일이 불가능했던 시절,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나는 당시의 신문 자료와 씨름해야 했다. 마이크로필름으로 되어 있는 신문을 보기 위해 기기를 돌리며 열심히 신문을 읽다 보면, 현기증이 나고 눈이 아프고 어깨가 굳어오고 급기야 구토를 느끼곤 했다. 안구건조증은 그때 얻은 고질병 중 하나이기도 하다.

허나, 그렇게 신문을 돌리고 돌리다가 대중가요와 관련된 기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때로 기쁨과 환희로 소름마저 끼치곤 했다. 그 희열 때문에 마이크로필름 돌리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사실상, 다른 사료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의 신문은 객관적이고도 상세하게 당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신문은 오직 사실과 진실만을 전하는가? 아주 오래전, 나는 너무나 순진하게 대부분의 기사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곤 하였다. 기자의 관점에 따라, 혹은 신문사 자체의 성향이나 빛깔에 따라 대중에게 사실이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음을 안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안다. 때로 사실과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되기도 한다는 것을. 결국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사실을 찾아내 이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인터넷에는 자극적이고 현란하고 선정적인 기사 제목이 범람한다. 충격적인 기사 제목에 이끌려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기사는 도에 지나치게 해당 내용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또 어떤 기사는 제목과 달리 너무 평범해서 노골적인 제목이 이른바 ‘낚시’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의 허탈함이나 불쾌함을 말해 무엇 하리오.

‘투데이 뉴스’가 창간을 하게 되었다. ‘정론직필의 바른 신문, 시대와 세대 공감의 창이 되는 소통의 신문, 뉴 트렌드에 반응하는 젊은 신문, 사랑과 행복을 더하고 나누는 공익의 신문’을 만든다 한다. 수많은 신문과 기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신문의 창간은 어쩌면 모험이자 용감한 도전이라 하겠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순수하고 성실하고 깨끗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주의와 주장이 만연한다. 문제는 자신과 다른 주의와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더러 어떤 사람들은 편 가르기에 골몰하고 적과 동지로 나누어 상대를 배척하고 비판하는데 몰두하기도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렇기에 모두 아름답다.

수없이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를 배제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소모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다.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곡선의 상생’이다. 상생하고 생산하기 위해서는 둥글어야 한다. 둥글어야 포용하고 수용하고 새로운 것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자궁도 둥글고 지구도 둥글고 우주도 둥글다.

우파니샤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만약에 언어가 없다면 선과 악도, 진실과 허위도, 쾌 불쾌의 어느 것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언어를 통하여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언어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진실을 전달하는 귀중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거짓을 퍼뜨리는 천박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을 잘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 투데이 뉴스가 세상에 일어나는 많을 일들을 객관적이고도 참되게 전하는 전령사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투데이 뉴스가 편을 갈라 적과 동지로 나누는데 동참하기보다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투데이 뉴스’의 모토는 ‘내일을 여는 오늘’이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다. 따라서 지금 이 ‘오늘’을 잘 꾸려야 내일이 안녕할 수 있다. ‘투데이 뉴스’가 ‘오늘’을 잘 기록하고 전달하여 우리의 내일이 풍성해지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곡선으로 상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이, 처음은 서투르고 거칠 수도 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나 그 끝은 창대하기를 기원한다. 그러면서도 그 첫 마음의 순수함과 열정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투데이 뉴스’의 창간을 축 하 한 다.

대중음악 평론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