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형 칼럼니스트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
▸저서 <와주테이의 박쥐들> <김대중vs김영삼> <왕의 서재>등 다수

【투데이신문 이동형 칼럼니스트】수백 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건으로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있다. 특히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학생들이었다는 데서 국민들의 슬픔은 더 크게 다가온 듯하다. 10년 전『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으로 수백 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은 전례가 있는 우리들은 또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했다. 재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효과적으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사고 매뉴얼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세우면서 뉴스에 귀를 기울였던 이유도 사고에 대처만 제대로 했다면 실종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온 국민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생존자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동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이코패스 모델은 여객선 침몰사고가 일어난 직후, 자신의 SNS에 “재밌는 놀이”라는 제목의 기이한 사진을 올렸다. 본인이 옷을 입은 채로 물이 잠긴 욕조에 들어가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이었는데 누가 봐도 침몰사건을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뿐인가? 사고수습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인들은 사고지역으로 내려가 언론에 “얼굴 알리기”를 하고 있고 6.4지방선거 출마자들은 자신을 홍보하는 문자를 유권자에게 보내면서 여객선 침몰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 언론도 문제이다.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는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된 여학생에게 “어떻게 살아나왔나. 친구가 죽은걸 알고 있나?”라는 상식이하의 질문을 해서 트라우마에 빠진 여학생의 가슴을 난도질 해댔다. 실종자들의 사망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보험금부터 들먹이는 방송도 있었고 칠흑 같은 밤에 아무 조명도 없는 구조현장을 생중계 하면서 “구조대가 조명탄 까지 터트리며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라는 거짓뉴스를 내보낸 방송사도 있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이들에게는 그저 자신과 자신이 속해있는 회사를 알리고 홍보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어렸을 때부터 경쟁교육만을 강요당하며 자란 결과가 낳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일선 학교에선 학생들이 자기 또래 친구들의 사고 소식에 안타까워 뉴스에 귀 기울이고 삼삼오오 모여 걱정을 하고 있으면 교사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너네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있냐? 그럴 시간에 책 한 장이라도 더 봐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지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긴, 부산의 한 야구장에서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가슴 아픈 일이 있으니 과도한 응원을 자제해 달라.”라는 공문에도 불구하고 앰프를 켜고 심지어는 “뱃놀이”라는 응원가를 부르며 노 젓는 춤을 추었다고 하니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까지 망가질 작정인지 모르겠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는 사람들을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이번 사고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 쯤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런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들이 있었기에 똑 같은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언젠가는 자기 자신, 혹은 자기 가족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통한 부의 축적, 남 눈치 안보고 경주마처럼 오직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들은 최빈국에서 단 몇 십 년 만에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린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아닌지, 삶에 있어서 가치를 물질에만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적이 아닌 인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본 적이 있는지 뒤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사회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고 타인이 존재해야 나도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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