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미국에 하퍼라는 야구선수가 있다. 거액을 받고 워싱턴 팀에 입단한 그는 만 19세의 나이에도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차며 좋은 활약을 보이는 중인데, "벌써부터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주심에게 항의를 하는 등 상대 선수들 입장에서는 요것 봐라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모습들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하퍼는 얼마 전 경기에서 상대팀 투수 해멀스의 공에 허리를 맞았는데, 이건 누가 봐도 고의적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해멀스는 실수가 아니라 신고식 차원에서 고의적으로 그랬다고 말했다.

고의로 상대타자를 맞추면 당연히 징계를 받는지라 해멀스에겐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워싱턴 투수는 하퍼가 공에 맞은 직후 그에 대한 보복으로 타석에 들어선 해멀스의 왼쪽 다리를 맞췄다. 이것 역시 고의적이었지만, 그는 고의성을 한사코 부인했다. 결국 워싱턴 투수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사례 2.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경선제는 침체에 빠져있던 당에 일약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당원들만의 행사로 알고 있었던 공당의 대선후보를 국민들이 결정한다니 그럴 수밖에. 1위가 예상되던 이인제를 물리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로 당선된 것 역시 경선의 흥행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개혁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경선 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역시 개혁성 면에서 평가가 좋았던 김근태 의장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불법 자금을 받아썼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양심선언을 한 것.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법 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의 양심고백은 좀 뜬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심지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벌인 쇼"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첫 경선에서 1.5%로 최하위에 그쳤고, 이틀 뒤엔 후보를 사퇴하기에 이른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의 고백이 있은 직후 검찰은 김의장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함으로써 그는 1년여에 걸친 지리한 법정투쟁을 견뎌내야 했다.

사례 3.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는 BBK가 문제를 일으키자 "나랑은 관계없다"고 우겨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 와중에 나온 주어가 없다는 언어를 흑마술로 승화시킨 명대사였다. 결국 그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는데, 그가 좀 더 솔직했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 거짓말이 주는 성공에 도취된 탓일까. 취임 첫해 광우병 소를 걱정해 광화문에 시민들이 몰려들었을 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2008년 5월 7일)

"약속하면 지키니까 쇠고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008년 5월 8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

작금의 사태로 보건대 그건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보려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었고, 시위의 불길은 시나브로 사그라져 갔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다시금 올라갔고, 그 이듬해 높은 지지도에 힘입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 우리는 나무를 자기가 도끼로 찍었다고 자백한, 그래서 죄를 용서받은 미국 대통령 워싱턴의 일화로부터 솔직함의 미덕을 배웠다. 그 집에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워싱턴 말고 또 누가 있었겠으며, 어차피 알고 물어보는데 자기가 안그랬다고 답해봤자 더 혼났을 테니 엉겁결에 자백한 것 같긴 해도, 아무튼 어린 것이 거짓말로 둘러대는 걸 보는 것보단 자백하고 야단을 맞는 게 훨씬 좋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솔직할수록 손해를 보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걸 잘할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권력을 감시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할 언론이 제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금의 언론은 정당보다 오히려 더 정치적이어서 사실을 그대로 전하기보단 특정 정파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데 급급하다.

<투데이 신문>이 창간했다. 안그래도 언론사가 많은데 하나가 더 생기는 게 뭐가 그리 의미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거야 모를 일이다. 이 신문사가 언론사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솔직한 사람이 더 잘되는 세상을 만들어 줄 지. "정론직필의 바른 신문, 시대와 세대 공감의 창이 되는 소통의 신문"이라는 창간 당시의 의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이 신문의 분투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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