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사고 5일째인 20일에 찾은 진도 실내체육관.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단원고 2학년 7반 OOO 학생 가족 계십니까?”

이 한 마디가 실내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마이크를 타고 나오는 소리가 묵직한 침묵을 깬다. 세상에 이토록 잔인한 부름이 있을까. 실종자 시신을 찾았다는 소리에 아빠, 엄마, 형제 이렇게 네 가족이 서로의 손을 부여 잡고 관계자에게 뛰어간다. 잠시 후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울음이 들린다. 목에 학부모 명찰을 걸고 있던 어머니는 부축을 받고 나온다. 그리고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만나러 체육관 밖을 나갔다.

그렇게 누군가는 체육관을 떠났고 누군가는 남아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은 채 힘겹고 잔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4월 20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 진도실내체육관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감정을 표현할 길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흐느낌과 기도 뿐이었다. 체육관 바닥에 매트를 깔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는 가족들. 모두의 감정은 같겠지만 2층에서 바라본 1층의 가족들 모습은 달랐다.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어떤 이들은 동그랗게 앉아 위로도 하고 구조와 관련된 대책회의를 하기도 했다. 눈이 빨개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두꺼운 옷을 입거나 이불과 함께 엉켜있기도 했다. 친지의 어깨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대어 있는 가족, 이불을 얼굴까지 덮은 채 누워있거나 링거주사를 꽂고 쓰러져 있는 사람까지…. 몸을 움직일 힘도 없어보이는 지친 가족들에게 다가가 심정을 물어볼 수 없었다.

   
 

실종자 가족 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예람(홍익대학교 디자인영상학부2)씨는 “현재 실종자 가족들의 심리는 굉장히 슬프고 애통해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을 빨리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며 “(실종자 가족들이)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만 매우 지쳐있고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고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대신 전했다.

오전 10시. 희망하는 가족들에 한해 DNA 채취를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힘없는 몸을 이끌고 DNA 검사실로 향했다. DNA 검사실에서는 그 누구도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 못했다. 벽을 붙잡고 서 있거나 주저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에서 언론사의 카메라 세례가 터지자 한 관계자는 “가족들의 얼굴이 절대 나오면 안 된다”며 기자들에게 주의를 줬다. 늘어선 줄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도 서 있었다. 아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검사를 받은 후 빨리 자리를 떴다.

한편 그 시각 실내체육관에는 뉴스를 보여주는 TV가 나오지 않았고 실시간 통계 역시 나오지 않았다. 기계의 고장으로 생각한 기자가 경기도 한 관계자에게 물으니 그는 “어제 저녁 실종자 가족들이 꺼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내 TV와 실시간 통계가 나왔다.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세 가지였다. 실시간 구조 상황과 뉴스 그리고 시신확인창이었다. 시신확인창에는 성별을 비롯해 신장, 옷차림, 머리모양, 신체 특이점이 쓰여져 있었다. 시신확인창으로부터 멀리 앉은 사람들은 글자를 크게 해서 보여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행여 내 가족일까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켠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 전광판이 있었다. 탑승자 276명, 사망 49명, 구조 174명, 실종자 253명…. 숫자가 어지럽게 전광판을 메웠다. 가족들은 구조자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몸은 지치고 정신은 희미하지만 눈은 희망으로 조금 빛나 보였다.

4월 20일 오전 10시 6분이 되자 전날 수색결과가 발표됐다. 관계자는 함정 192척, 항공기 31대 동원 수색, 잠수부 536명 투입, 총 15회 선체수색 사망자 수습에 나섰다고 전했다. 또 전날 오후 7시 10분부터 당일 오전 8시까지 남자 15명, 여자 2명의 선체 사망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구조계획에 대해서는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 투입과 수색, 잠수부 563명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관계자 발표에 귀를 세우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 됐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힘겹게 한 숟갈을 삼키거나 누워있었다. 짐싸는 가족들도 하나둘 보이고 서로 유가족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도시락을 나르거나 조심스럽게 식사를 권하는 자원봉사자의 모습도 보였다.

   
▲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구호 물품

하지만 실종자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구호 물품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몰상식한 이들도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화를 불러일으켰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체육관에서 그나마 마음 한 켠이 따뜻했던 이유는 자원봉사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적십자사 재난현장 긴급구호, 긴급가족 돌봄, 세월호 의료지원단, 다문화 가족을 위한 통역서비스 지원 등의 다양한 봉사가 이뤄졌다. 자원봉사자들은 바닥이나 의자 등을 닦거나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다. 라면, 떡, 김밥, 빵 등 먹거리를 나눠주거나 물티슈, 여성용품 등 생필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봉사자의 손과 발이 체육관 곳곳에 가득 꽃 피어있었다. 

오후에는 단원고 실종자 학생 학부모, 단원고 실종자 교사 가족, 일반인 실종자 가족 대표의 회의가 진행됐다.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시간은 되돌리고 싶은, 멈추게 하고 싶은 것이리라. 잠시 바깥을 나가보니 날씨는 잔인하리만치 맑았다. 맑고 화창한 날씨가 구조에 도움되기를 바라는 가족들. ‘기적’이 존재한다면 제발 보여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기도가 이뤄지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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