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훈 칼럼니스트
現 국가개발연구원장
現 국민정치경제포럼 대표
정치·경제 컨설턴트

【투데이신문 김용훈 칼럼니스트】학교-집, 학교-집-학원의 테두리를 벗어나 공부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인 수학여행!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지만 실제로는 놀러가는 여행으로 학생들의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즐거웠을 것이다. 목적지가 머지않은 이른 아침 설렘으로 육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마치 영화처럼 삶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평소 어른들의 말을 그렇게도 안 듣던 학생들은 막상 커다란 위험에 닥쳐 선내에서 흘러나오는 방송만 들렸나 보다. 움직이지 말라는 그 말!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어 나왔으면 상황파악이 빨라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삶의 줄을 잡았을 텐데 실내에 꼼짝없이 기다리던 순수한 학생들은 다음 지시를 기다리다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육지에서 그리 먼 장소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섬에서 얼마든지 구조선박이 올 수 있는 거리였건만 허둥지둥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놓쳐버리고 군함과 어선들이 겹겹이 둘러싼 채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봐야했다.

사고현장에는 해경, 해군, 소방청 등에서 파견된 배와 헬기가 에워쌌고 민간인 잠수부들도 수백 명이 동원됐지만 물속에 있는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희망의 시계가 멈춘 후였다. 그 많은 인력과 장비들은 조류가 너무 세서, 바다가 탁해서, 장비가 열악해서 등등의 이유로 망설이며 시간을 낭비하고 군이 자신의 장비와 병력을 실험한 후에야 자신들의 장비는 적합하지 않으니 민간의 장비를 사용하겠다며 민간잠수부를 투입했다. 잘 짜여진 작전지휘본부는 자신들에게 일임하라며 모든 사람과 장비를 통제했지만 결국 소리만 요란했지 일사불란한 구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악조건 때문에 지켜만 보는 구조대가 안타까웠던 사람들은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는 사람대신 수중구조를 하는 소형 잠수정이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보조기구를 사용해 바다의 상황에 상관없이 사람의 활동을 도와주는 기계나 로봇이 없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화처럼 섬세한 수준은 아니지만 해난사고를 위한 첨단장비들은 있었다. 천안함사고 이후 1590억 원을 들여 수상 구조함을 구축했다. 3500t급 최첨단 수상 구조함은 좌초된 함정이나 침몰 함정의 탐색과 구조, 인양에 최적화된 선박이다. 그런데 이 최고수준의 최첨단의 통영함은 세월호 구조에 투입되지 못했다. 탑재돼 있는 음파탐지기, 수중로봇 등의 첨단 장비들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점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였다. 통영함은 지난 2012년 9월에 진수됐는데 1년 반이 넘도록 장비테스트조차 안돼 있다니 할 말을 잃었다. 이 때문에 해군에 인계도 못하였다는데 언제까지 미뤄 받을 예정이었을까?

사람대신 물속에 들어가 수색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무인잠수정도 2006년 202억의 거대한 예산을 투입해 3대를 제작하였지만 개발이후 실제 운영은 천안함 잔해 수색 때로 딱 1번뿐이었다. 언제 사용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냥 이러한 첨단의 잠수정과 수상 구조함이 있다는 과시용일 뿐인가? 실전에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뒤늦게 대전의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에서 테스트중인 해저 탐사용 로봇인 그랩스터가 투입됐다.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음파탐지기로 해저 면을 3D지도로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로봇의 크기가 길이 2.4m, 높이2m라고 한다. 이 로봇이 세월호 선내를 들어갈 수 있을까? 수심 200m까지 잠수할 수 있고 600㎏의 무게 때문에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다리로 바닥을 짚고 움직인다고는 하나 크기가 너무 크다. 결국은 예상대로 선내로 들어가지 못하여 내부파악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고 배의 상태와 해저지형, 유속, 유향, 혼탁도 등의 선박의 모습과 바다 상황만을 전해줬다. 구조작업으로 긴급 투입됐다기 보다는 장비의 시험테스트 용으로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내세우기 위한 전시행정으로 현실을 커버 하려니 불협화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탁상공론으로 이루어진 이론적인 요식행위들의 규정들은 사고 현장에서는 단순한 지침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경험이 많은 노련한 전문가의 동물적인 판단이 발 빠른 사고대응에 더 효과적이다. 작전지휘체계의 지휘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경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의 사정을 잘 모른다면 현장의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민간요원들의 말을 작전에 충분히 고려했었어야 한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해양사고 대응수준이 이 정도였다. 해양사고 예방을 위해 2012년 해사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평균 5천5백억 이상의 예산을 해마다 투입하고 있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안타깝다. 이 와중에 안전행정부 국장은 사망자명단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해양경찰서의 한 간부는 세월호의 초기 대응이 미진한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이 아니냐며 강력한 항의를 했다. 현장에서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의 수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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