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의례의 ‘기능’이라는 차원에 집중하면, 의례는 기억을 상기시키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장례식이나 제사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와 기억을 강화시키며, 은혼식이나 금혼식의 경우 결혼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되고, 사진, 녹음, 영상 등 과거를 재생시킬 수 있는 기능이 강화된 오늘날에도 의례는 조금 그 기능이 퇴색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례의 강력한 기능으로 인하여, 의례가 보여주는 것이 많음을, 그리고 의례가 보여주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도 있다. 조선시대에 대보단(大報壇)이라는 제단이 있었다. 이것은 병자호란 이후 명(明)의 태조(太祖)와 신종(神宗), 그리고 의종(毅宗)을 제사지냈던 사당이다. 표면적으로 대보단은 명의 첫 번째 황제인 태종,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원해 준 신종, 그리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에 대한 제사를 지냄으로서,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내서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할 뻔한 위기에서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를 기리고자 지내는 의례를 치르는 제단이다.

그런데 역사를 거울삼아 더 좋은 미래를 열고자 하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역사학자는 대보단에서의 의례가 당시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는 선비 정신, 그리고 청(淸)에 대항한 자주적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오랑캐로 일컬어졌던 청나라에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으며, 이후 청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 황제를 제사지내고, 잇따라 대보단에서의 의례에 임진왜란 때의 장수들을 추가로 제사지냄으로서, 오랑캐에게 꺾이지 않는 기상과 중화(中華)의 맥을 잇는 것은 조선이라는, 소중화(小中華)라는 정체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시각을 달리하면 매우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에 의해서 조선이 거의 망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의 강력한 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역대 전쟁사에서 매우 빠른 시간에 국토를 모두 빼앗길 정도로 무능하고 부패했던 조선 지배층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기득권을 지킨 조선의 지배층은 임진왜란의 참화를 야기한 당시의 모순과 부정적인 상황을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준 명의 황제와 장군들에 대한 의례를 치르고, 이를 위한 공간으로 대보단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당시 지배층의 인식은 매우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나 흉년에도 대보단의 의례는 꼭 시행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제사의 주체인 왕이 병을 앓으면 세자를 보내서라도 대보단에서의 의례는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일반적인 사당의 형태인 집의 모양이 아닌, 제단을 만들었고, 이것을 통해 설치와 철거를 쉽게 만들었다. 또한 창덕궁 금원(禁苑) 옆에 조성함으로서, 청에서 온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띠지 않게 했다. 강자인 청의 눈치를 보면서 기득권을 보여주고자 했던 당시 조선 지배층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태를 보인 지배층은 약 200여년 더 기득권을 유지했고, 그 이후 일제강점기라는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픈 시기가 도래했다. 그리고 이 아픈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부정과 부패로 인한 인재(人災)가 발생한다. 해운과 관련된 사고 만해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 등이 있었고, 그리고 2014년에 세월호가 침몰하는 참사가 또 발생했다. 반복되는 사고 속에서 역사는 잘못된 사후 처리와 죽음에 대한 추모, 그리고 쉬운 망각이 계속되면 사고는 계속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국가의 잘못된 행태가 원인이 된 재난에 대해, 대보단의 사례와 같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을 감사하는 형태가 아닌,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죄가 재난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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