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정국 빅이슈 사무총장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최근 ‘착한 소비’가 화제다. ‘착한 소비’란 나의 소비를 타인과 함께 공유하면서 나누고 기부하고 도와주는 소비를 일컫는 신조어로, ‘가치 소비’, ‘윤리적 소비’와 비슷한 말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착한 소비’는 국가 간에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하는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두로 만든 ‘착한 커피’였다. 이 커피를 마시면 기존의 커피보다 에티오피아 등 현지 커피 농가에 돌아가는 몫이 더 많아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소비로도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이러한 ‘착한 소비’의 물결이 출판계에도 잔잔히 퍼지고 있다. <빅이슈 코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착한 잡지’ <빅이슈>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0년 창간됐고 2014년 현재 50여 명의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들이 직접 <빅이슈>를 들고 지하철 역 입구와 번화가에서 판매한다. 홈리스에서 빅판으로 변신한 그들은 항상 약속된 그 자리와 그 시간에 구슬땀을 흘리며 단 한 권이라도 더 판매하기 위해 힘쓴다.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라… 이런 ‘착한 일’을 누가 고안했는지 궁금했다. 또 <빅이슈>라는 집단이 어떤 곳인지도 알고 싶어 <빅이슈>의 문을 두드렸다.
 
<빅이슈>의 윤정국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평소에 <빅이슈>를 자주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윤 사무총장은 기자에게 “현금으로만 빅이슈를 판매하는 것이 많이 불편하죠?”라며 기자가 아닌 독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면서 “카드결제기를 한 대씩 들이는 것은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무리가 있어서 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열심히 궁리하고 있다”며 <빅이슈>가 독자들에게 좀 더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생각하면서 기자에게도 이따금씩 <빅이슈>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종로구 이화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빅이슈> 사무실. <빅이슈>의 사무국과 편집국이 모여있는 작고 아담한 단독주택에서 윤 사무총장을 만났다.
 
Q. 빅이슈가 한국에서 시작될 수 있던 계기는
빅이슈는 1991년에 영국에서 시작됐다. 알려진 것처럼 홈리스의 자활을 지원해주자는 취지였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일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또 한국에도 알려지면서 2008~2009년에 국내에서도 빅이슈의 한국판을 창간하자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분들이 한 포털사이트에 ‘빅이슈한국판창간준비모임’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그곳에서 빅이슈 창간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1997년 시작된 ‘거리의 천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의 도움이다. ‘거리의 천사들’은 IMF가 터진 후 정리 해고된 직장인과 사업자들이 생기면서 가정해체가 많아졌을 때 거리로 내몰린 홈리스들의 자활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거리의 천사들’과 ‘빅이슈한국판창간준비모임’이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창간 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결실을 맺어 2010년 5월 서울시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았고 그해 7월 창간호가 발간됐다.
 
Q. 빅이슈의 첫 발걸음이 어렵게 시작된 것처럼 첫 빅판(빅이슈판매원의 줄임말)들의 모집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 ‘거리의 천사들’에서 활동하시던 사회활동가들이 처음에 관여를 많이 했다. 그래도 어려웠다. 우리가 직접 홈리스 시설에 찾아가 재기에 대한 의욕이 있는 분들을 모집했는데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설에서는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니까. 어찌 보면 길들여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편한’ 그곳을 떠나 본인이 노동하고 새롭게 자립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계속 재기 의욕을 불어넣어주고 설득해 빅판을 모집했다. 그 후 빅판 교육을 시키고 외모도 깨끗하게 단장해줬다. 빅판들의 판매수칙도 만들어 지키도록 하면서 지하철 역 앞에서 잡지를 들고 떳떳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Q. 그럼 처음에 함께 했던 빅판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계신가
자립에 성공해 임대주택에 입주하고 다른 곳으로 취업해 완벽하게 자립하신 분들이 많다. 물론 극복하지 못한 분들도 계신다. 홈리스 중에는 흔히 ‘알콜중독’이라고 하는 알코올 의존환자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 중에 결국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자립에 성공해서 원래 본인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되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잠실역 8번출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장경필 빅판. 사진 제공 빅이슈코리아/재능기부 이재인
 
Q. 요즘은 빅판 모집이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요즘에는 ‘염전 노예’ 사건 때문인지 오히려 오해를 많이 산다. 얼마 전 빅이슈 판매원 모집을 나갔을 때 홈리스분들께서 응하지 않고 시설 관계자분들도 우리를 경계하는 눈으로 보더라. 그래서 우리가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염전 노예’와 180도 다른데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Q. 홈리스들이 빅판을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는지
많이 변화된다. 매일 시설에서 주는 밥만 먹고 살았던 분들 아닌가. 그런 분들이 잡지 한 권을 팔기 위해서 항상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서서 어떤 말이라도 외쳐야 하고 고객에게 눈을 맞춰야 되고 거기서 잃어버렸던 사회관계가 회복된다. 그러면서 빅판들의 자신감이 싹트고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사회로 되돌아올 수 있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빅이슈는 절대 자립의 최종단계가 아니다. 중간과정이고 이걸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 취직하는 것, 그러면서 해체된 가정이 다시 결합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다. 빅이슈가 홈리스 자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Q. 홈리스들이 자활 의지를 불태우면서 일을 시작하고 또 자립하는 모습을 보시면 보람찰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다. 빅판들이 독립하고 사회에 복귀할 때가 가장 보람차다. 빅판을 하시다가 자립한 어떤 분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그분은 본인 사업을 하시다 실패해 빅판을 하게 됐다. 원래 증권회사에 다녔던 분이었다. 빅판을 하는 6개월 남짓의 기간 동안 그 분이 열심히 하시면서 알뜰히 모으시기도 하셨지만 아무래도 펀드매니저를 하던 본인의 능력이 있으니 생각보다 돈을 많이 저축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행스럽게도 다시 원대복귀해서 모 증권회사에서 현재 일을 하고 계신다.
그 분이 한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빅판을 했지만 빅판의 경험이 그분의 버팀목이 돼 재기를 도왔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일에 보람을 느끼게 한다. 또 이 일의 사회적 의미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
 
 Q. 홈리스 생활로 다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있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설에 계신 분들이 빅판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오신 것은 맞지만 옛날 습관들이 다시 나올 때가 많다. 특히 빅이슈를 판매하면서 돈이 생기니까 돈에 대한 유혹 때문에 넘어지게 된다. 돈이 생기면 일단 소주부터 사서 마시고 술에 취해 이튿날 못 일어나서 출근을 못하고 그러면 또 판매하는 일에도 차질이 생기는 거다. 그렇게 한 번 넘어져 옛날의 홈리스 시설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다시 빅판을 하려고 돌아오시는 분들도 있고. 빅이슈 직원들은 홈리스 시설로 돌아간 분들이 빅판을 하기 위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고 또 그분들이 멀리 못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홈리스들의 자립은 쉽지 않다. 그래서 독자분들이 혹은 빅판을 지나치는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빨간 옷 입고 빨간 모자 쓰고 빅이슈를 판매하시는 그분들이 거기 서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경이로운 일이라는 걸. 빅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서서 잡지를 팔고 있다는 것, 또 빅이슈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그분들을 격려하는 큰 용기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Q. 빅판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은데, 들었던 빅판들의 말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있나
작년 연말에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후 빅판들의 사정을 모두 알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다. 지금 빅판들이 약 50명 정도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각자 판매하는 장소가 다르지 않나. 일일이 다니면서 사정을 다 들어볼 수가 없다. 영등포에 빅이슈 ‘판매국’이 있는데 거기에서 빅판 7~8명을 한 팀으로 묶었다. 그렇게 팀별로 내가 격주 수요일마다 같이 점심을 먹는다. 거기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제대로 못한 점에 대해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저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왜 홈리스가 되셨을까 싶다. 사무총장 자리에 앉아있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현실파악이나 본인들의 문제에 대해 더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또 빅판을 하면서 앞으로 개선해야 될 점이나 필요한 점도 확실하게 요청하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그분들의 몸이나 얼굴을 잘 살펴보면 상처들이 참 많다. 치아가 무너져 내렸다든가,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든가 그런 식으로 인생을 평탄하게 살아오지 못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다는 것이 몸에 남아있는 거다. 잘 모르는 분들이 그 상처들을 처음 볼 때는 조금 피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모두 다 마음이 곱고 착하고 정말 기회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되신 거라 정말 안타깝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도 열심히 더 노력하고 있다.
 
Q. 빅이슈의 내용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뚜렷한 색깔이 없이 대중문화와 인문학 내용이 섞인 것 같다
내가 거꾸로 물어보겠다. 인문학을 많이 싣는 것과 대중문화를 많이 싣는 것, 어떤 쪽이 빅이슈와 어울리겠는가? (기자는 대중문화를 더 많이 싣는 쪽이 독자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대중문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대중문화를 중요하게 취급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일반 문화 예술쪽도 등한시하지 않고 영화나 연극, 에세이 등도 많이 쓰고 있다. 또 앞으로 빅판들의 생애를 만화스토리로 엮어서 연재를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5월부터 나올 것 같은데… 연재하면 빅이슈를 판매하는 판매원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 오늘날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자립할 수 있었는지 사회 구성원들도 알 수 있지 않겠나.
 
Q. 빅이슈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는지
그때 그때 시기적인 주제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격주간지이다보니 시사적인 이슈를 따라잡기에는 아무래도 어렵다. 또 우리 주 독자층이 2~30대 여성들이다보니 여성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들, 여러 가지 지식들을 좀 내보내려고 애쓰고 있다. 커버스토리나 스페셜기사도 아무래도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쪽으로 고르고 있고.
 
Q.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나 인물이 있다면
지난 연말에 진행했던 김광석 추모 특집이 상당히 인상 깊다. 당시 김광석의 노래들로 만든 뮤지컬도 있었고 연말과 잘 맞는 특집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추모 특집은 판권을 갖고 있는 분들(유족 등)이 기부를 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 1월 1일에 나왔던 빅이슈 표지 모델이었던 장윤주씨. 장윤주씨도 빅이슈를 사랑하시는 독자라고 들었다. 장윤주씨 표지에 대한 반응이 참 좋았다. 그런데 표지에 사용된 새 모형이나 한복은 우리가 섭외한 것이 아니라 장윤주씨 본인이 직접 다 섭외하셔서 모델이 되어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Q. 빅이슈의 기사 중 ‘빅판가변의법칙’이 상당히 인상 깊다. 온라인 편집숍 크래커와 합작한 것으로 아는데 패션편집숍과 빅이슈라, 어울리기 힘든 조합 아닌가
오히려 그 차이점이 ‘콜라보레이션’을 쉽게 끌어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젊은 예술가 그룹이 크래커 안에 모두 포진돼있다. 그분들이 재능기부를 해주셔서 우리 빅판분들의 외모를 완전히 뒤바꿔주신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동영상을 봤다. 암환자들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도 빠지고 살도 빠지면서 외모가 변하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본인들이 보면서 더 좌절한다고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모를 바꿔준 후 환자들에게 거울을 보여주는데, 거울을 본 암환자들이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거다. 그것을 보고 외모가 얼마나 사람의 심리 상태를 좌우하는지 느꼈다. 외모가 변신한 암환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면역력도 높아지고 결국 암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원동력을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빅판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뀐 외모를 바탕으로 재기의 의욕을 다시 북돋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 온라인편집숍 '크래커'와 함께 하는 '빅판가변의법칙'으로 변신한 삼성역4번출구 이의진 빅판. 사진 제공 빅이슈코리아/재능기부 신철민

Q. ‘빅판가변의법칙’을 통해 변화한 빅판분들이 내외적으로 어떤 변화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변신’하고 나서 1주일 정도는 간다. 그런데 계속 유지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빅판생활을 하면서 머리도 일일이 만지고 하는 게 어려운 점이다. 그래서 1회적인 것보다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영등포 판매국 사무실 안에 조그만 이발소를 하나 차려서 이발사 기능을 갖고 있는 분을 채용했다. 이분도 홈리스 출신이다. 자신들의 동료를 대상으로 머리도 깎아주고 수염도 깎아주는 일을 맡아서 하신다. 이발을 통해서 외모를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Q. 크래커와 합작을 하면서 빅이슈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실 빅판들의 내적인 변화말고 큰 변화는 없다. 그래도 이 기획 이후 젊은 남성들도 많이 사본다고 하더라. 앞서 말한 것처럼 주 독자층은 여전히 2~30대 여성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고객층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Q. 주 독자층이 젊은 여성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처음부터 타겟층을 잡고 판매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젊은 여성들이 많이 사본다는 것은 우리가 판매를 시작한 후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젊은 여성들이 주로 구입하는 이유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소비’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어쩌면 측은지심에서 한 권 구입하는 경우도 많을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그걸 뛰어넘어서 책의 퀄리티가 높고 볼 게 많아서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착한 소비’는 덤이고 빅이슈가 하나의 매거진으로서 볼 것도 많고 얻을 정보도 많더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Q. 앞으로 또 어떤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당장 계획된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빅이슈 판매원들의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일을 다양하게 시민단체 혹은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 할 수 있는 것은 많을 것 같다.
이미 홈리스 인식 개선을 위한 사업은 대여섯개 진행하고 있다. 홈리스 월드컵이 그중 하나다. TV에서도 작년 연말에 스페셜로 방영한 적이 있다. 해마다 외국에서 열리는 홈리스 스포츠 축제가 홈리스 월드컵이다. 홈리스 월드컵은 풋살(미니 축구의 일종)대회인데 우리나라 빅판 중에 뽑아서 보내드리면 다녀오신 뒤 자립이나 재활 의지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존심이나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그게 자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홈리스 발레단도 있다. 3년 정도 됐는데 과천시민회관 안에 있는 서울발레씨어터와 함께 한다. 제임스 전 예술감독님이 빅판들을 많이 아껴주신다.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2시간씩 시간을 내 빅판들을 위해 발레 기본 율동이나 기본 동작을 가르치신다. 거기서 빅판들의 신체 균형과 조직을 단련시키면서 건강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또 앞으로는 합창단도 만들 예정이다.
 
Q. 빅이슈의 판매 구조와 빅판이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에 빅판을 시작하면 10권을 그냥 드리고 판매하도록 한다. 다 팔고 나면 거기서 나온 판매 수익(5000원짜리 한 권을 팔면 2500원이 빅판에게 돌아간다)으로 다시 빅이슈를 사서 판매하게 한다. 그렇게 2주 정도 일하면 정식 판매원 자격을 주고 6개월 이상 성실하게 일하시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LH산하 주거복지재단에 우리가 보증을 서서 ‘이 홈리스는 성실하게 6개월 이상 잡지를 팔았기 때문에 입주할 자격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보증을 서는 빅판에 한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입주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자립단계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 임대주택에 입주한 회기역1번출구(경희대 정문앞) 박영현 빅판. 사진 제공 빅이슈코리아/재능기부 김상준
 
Q. 빅이슈를 판매하는 장소 선정은 어떻게 하는 건가
기본적으로 지하철 역 근처다. 혹은 빅판들이 기존에 있던 장소. 기존 빅판들이 그만 둘 경우에 다른 곳에서 옮겨오는 빅판들도 있고 새로 들어오기도 한다.
빅이슈는 대학가에서 잘 팔린다. 특히 이대 앞, 홍대 앞, 혜화역 대학로 근처 같이 젊은 사람들과 대학생들이 많은 곳에서 잘 팔린다. 아니면 광화문이나 시청, 을지로입구처럼 유동인구가 엄청난 곳이나.
판매하는 장소가 어디가 됐든 빅판들은 본인들 스스로 ‘개인사업자’로 칭하면서 판매하고 있다. 우리가 강요한 것이 아니니까 개인사업자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빅이슈를 구입하시면 그 안에 빅이슈만 들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조그만 손편지나 사탕, 짧은 시를 옮겨적은 것들이 같이 있을 것이다. 다 빅판분들 개개인이 머리를 쓰고 본인들의 능력을 발휘해서 조금 더 잘 팔릴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든다. 빅판들의 재치에 감탄하게 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Q. 한국에서 빅이슈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경영이 불안정한 것과 수입의 100%가 빅이슈 판매 수익뿐이라는 것이 조금 힘들다. 후원을 받는 것도 좋지만 정기구독자를 늘리려고 하고 있다. 판매원들을 만나서 살 수 없는 분들은 정기구독을 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펼치고 있고 또 온라인에서 정기구독이나 잡지를 사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수입 다변화를 통해서 경영을 안정화해서 우리 힘을 비축해야만 홈리스들을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체계적으로 알차게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빅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장에서 좀 더 열심히 팔아주셨으면 좋겠다. 독자들은 항상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빅판들이 빅이슈를 판매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독자들과 항상 함께 있다 생각하시고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또 좌절하지 마시고 꿋꿋하게 자기 미래를 바라보면서 잡지를 판매하셨으면 좋겠다.
 
Q. 앞으로 빅이슈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따뜻한 기사, 감동적인 기사를 계속 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중적으로 흥미 있는 기사를 실음으로써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도록 하고 싶다. 동정으로 한 권 사주는 잡지가 아닌 독자들이 정말 필요로 해 구입하고 읽는 잡지가 되도록 키우고 싶다.
아,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빅이슈를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