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과 폐과통보에 반발한 안양대 학생들이 만든 대자보와 플래카드

합의와 대화 없이 진행된 구조 개편에 학생들 분노
일방적 학과폐지 통보…꿈 잃은 대학생
취업률에 따라 구조조정, 대학 아닌 취업학원 전락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흔히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진리를 탐구하며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본인들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려고 했다.

1980년대 뜨겁게 전개된 민주화 운동을 대학생들이 주도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그러면서 대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현재 대학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지난 2월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의 특성화 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그동안의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개선된 양적 지표를 넘어 앞으로는 고등교육의 양적인 투자보다 질적인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점이 이번 사업의 추진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또 각각 대학의 분야 중 비교우위에 있는 것을 집중적으로 키워 세계적 수준으로 경쟁력을 가지면서 대학서열화를 탈피하고 학부교육의 내실화 및 교육 내용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학문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이번 사업에 대한 교육부의 기본 방향은 사회적 변화를 수용한 학사 구조 개편 등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 사업비는 5년 동안 546억 원이 투입됐으며 대학이 학사구조 개편의 일정 수준을 충족시키면 가산점을 받아 사업비를 지원받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이 사업은 다변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미래 대학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합의와 대화 없이 진행된 구조 개편은 대학생들이 순식간에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입학하자마자 학과폐지,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학교는 학사개편, 학생들에게는 ‘구조조정’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안양대학교 음악학부 학생들은 신학기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피아노, 성악, 관현악, 작곡과로 구성된 음악학부에서 작곡과가 폐지된다는 것.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과 논의가 된 적은 없었다. 학생들은 지난달 10일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사항을 통해 폐지된다는 사실을 접했다. 그 누구도 ‘너희 학과가 폐지될 것’이라는 귀띔조차 주지 않았다.

안양대 음악학부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작곡과가 폐지된다는 것을 공지사항으로 확인했다. 학생들이 사실을 알고 난 후 2주 정도 시위했고 학내 고위인사와 이야기도 나눴다. 그래서 다시 회의를 했으나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답을 받았다”며 “결국 4월 24일에 올라온 공지사항 게시글로 작곡과는 폐지가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을 그대로 진행한다고 했지만 사실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편입을 하거나 반수를 생각하고 있다는 학생들이 많다”고 현재 학과의 상태를 설명했다.

이어 “수업을 한다고 해도 지원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고 거의 방치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작곡과가 폐지되면서 공연예술학과나 다른 과들도 지금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고 많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양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지난달 28일 “논란과 관련해 의논 중이기에 아직 확답을 줄 수 없다”고 밝혔으나 그 전인 같은 달 24일 올라온 공지사항 이후로 일체 관련 내용이 공지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안양대학교 작곡과 외에도 현재 상당수의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학사개편 중이다. 학교는 ‘학사개편’이라고 칭하고 있으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철저히 ‘구조조정’이다.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들도 학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지난 3월 27일부터 무기한 수업 거부에 들어갔으며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에서 침묵시위까지 실시했다. 서일대학교는 문예창작과외에도 연극과, 사회체육 골프과 등도 폐지된다고 통보했다.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업 거부는 이제 철회돼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위도 (정부종합청사에서 했던 시위 이후로)이제는 안 한다”며 “학교와 조율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 가장 진통이 심한 곳은 청주대학교다. 청주대학교는 지난해에도 회화과를 폐지한 바 있다. 올해도 청주대는 사회학과와 한문교육과를 폐과한다.

일부 청주대학교 학생들과 졸업생들은 “청주대에서 폐과는 계속 일어나던 일이다”, “지난해는 회화과, 올해는 사회학과… 내년에는 우리 학과가 폐과될까 두렵다” 며 어느 학과도 제대로 존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작정 폐지를 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동일학과에서 비교해 학과를 평가한다. 그렇게 A~E등급으로 나눠 최하 등급인 E등급을 3년 연속 받을 경우 폐과하는 것”이라며 “E등급을 받은 학과는 학교에서 결과를 통보한 후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데도 E등급을 3년 연속 받게 되면 폐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청주대학교 사회학과 학회장인 A씨는 <본지>와 통화를 통해 “학과 폐지는 부당한 절차라고 생각한다”며 “학교에서는 다른 과로 전과시켜주겠다는 것을 특혜처럼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학과에 입학한 친구들은 졸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 말하는 평가 지표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절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평가 지표가 매년 바뀌고 학생들도 잘 모르는 만족도 조사를 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평가’라고 하는가”라며 “학생들이 만족도 조사를 한 것은 맞지만 누구도 그것이 학과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것이라 알지 못했다. 학과가 아닌 학교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청주대학교는 현재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결재만 받으면 바로 ‘무기정학’ 처리된다.

A씨는 “우리가 과격하게 시위한 것도 아니고 천막농성도 안 하고 있다. 소규모 시위를 이어가면서 평화적으로 하려고 하는데…”라며 학교의 처분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아직까지도 청주대학교 사회학과는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청주대학교 총동문회와 민주동문회는 지난 8일 성명을 냈고 이에 더해 민주동문회는 곧 ‘폐과 효력정지 가처분소송’과 ‘본원소송’을 접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학과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날 사회대학에 붙어있던 수많은 성명서와 대자보들은 모두 철거됐다. 심지어 허가를 받은 게시물도 사라져 게시판은 어떠한 의견도 게시되지 못했다. 마치 학생들의 말에 귀를 막은 학교의 모습처럼 게시판은 소통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학과 학생들의 폐과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설명한 학교들과 비슷한 시기에 남서울대학교도 학사 개편을 진행했다. 예체능계열이던 운동건강학과를 보건의료복지계열로 바꾼 것. 다른 학교들처럼 남서울대학교도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해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예체능계열에서 보건계열로 학과가 이동되면 기존의 체육학사에서 보건학사로 전환되면서 체육학과생들에게만 발행되는 건강운동관리사 자격증을 딸 수 없게 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단순히 학과 이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체육계열로 장래를 생각했던 학생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는 일이었다.

남서울대학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서울대학교는 운동건강학과를 스포츠건강관리학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과 학교가 합의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앞서 설명했던 학교들과 엄연히 차이가 있다.

또한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것을 수용해 학생들이 계속 체육학사로 졸업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이 기존의 체육계열로도 장래를 생각할 수 있고 또 보건계열로도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돈 안 되는’ 학과는 구조조정(?), 취업률 낮으면 부실대학
대학은 취업률 올리기에 급급

안양대학교, 서일대학교, 청주대학교 등의 경우처럼 폐과가 되는 학과들은 취업률이 타과보다 높지 않은 인문, 예술학과다.

이번 교육부의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세부 선정 평가지표 중 특성화역량 평가지표 하위 영역인 특성화 여건(35점 만점)에 특성화분야 취업률의 배점이 ‘대학 자율 : 기본-수도권대’는 7점, ‘대학 자율 : 공학계열-수도권대’는 6점이 배정됐다.

이것 외에도 몇 년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부실대학의 선정 기준 속에도 ‘취업률’이 포함돼있다. 한마디로 폐지되는 학과들은 ‘돈이 안 되는’ 학과다.

취업률에 따라 사업비 지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짓는 점수가 주어지고 취업률을 맞추지 못하면 부실대학이 되는 현실 속에서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서울의 추계예술대학교는 부실대학으로 선정됐다. 추계예대는 예술 각 분야에 동문들이 포진돼있고 또 예술대학교로서 꾸준히 이름을 알려왔다. 학교를 졸업 한 후 전공 분야로 취업을 해도 ‘4대 보험’에 들지 않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 결국 4대보험에 가입해야 인정되는 ‘취업률’을 올릴 수 없었고 결국 그것이 발목을 잡아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 문제는 2011년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취업률이 떨어지기에 작곡과가 폐지되고 문예창작과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의 감소를 특성화 사업 시행계획의 배경으로 내세웠고 학교의 특성에 맞게 학사 개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 <본지>와의 통화에서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마다 특성에 맞도록, 학사 구조를 적합하게 바꾸기를 바란다. 강제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폐과를 한다고 해서 대학에 가산점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학교의 기존 학사과정만 따라가는 수업보다는 좀 더 사회 수요에 맞는 학사 구조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교육부에서 폐과를 강제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대학의 미래를 위해 길을 제시하려고 한 교육부, 교육부의 뜻대로 길을 만들지 않고 있는 대학들, 비뚤어진 길 위에서 취업을 위해 아슬아슬 비틀거리는 대학생들.

‘진리의 상아탑’으로 향하는 길은 2014년 현재 어디로 가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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