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교가 호구인가?
[칼럼] 종교가 호구인가?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5.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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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군사도시로 잘 알려진 원주에는 크고 작은 절터가 약 100여개 정도 산재해 있다. 도시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원주는 군사도시가 아닌 절터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주에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 절터가 있는 이유는 불교를 국가 차원에서 숭상했던 시절, 원주가 주요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에서 원주는 5소경, 즉 지방에서 수도 경주의 기능을 대체한 5개의 작은 수도 중 하나였다. 또한 후삼국 시대에 호족인 양길은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키웠고, 양길과 궁예의 수하에 있던 왕건이 나중에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고려시대에도 원주는 행정, 군사,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인식됐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법천사지(法泉寺址)이다. 법천사는 신라 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이곳에서는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101호)과 탑비(塔碑, 국보 제59호) 등의 유적이 존재했었다. 이 가운데 지광국사현묘탑은 일제강점기 때 서울로 옮겨졌고, 법천사지에는 탑비만 남아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그 미적 가치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있다. 이와 같은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고, 이것을 통해 당시 법천사지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탑의 주인공인 지광국사 해린은 우리나라 에 존재했던 불교 교파 중 하나인 법상종(法相宗)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원주의 법천사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 종파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이전까지 법상종을 비롯해서 많은 종파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종파들은 서로 불교적 교리를 토론하면서 나름의 교리를 전개했다. 오죽하면 원효(元曉)가 다양한 불교의 교리를 열 개의 주제에 따라 정리하고 고차원의 통합을 추구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는 저서를 남겼을까?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는 다양했던 교파가 많이 줄었고,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조계종, 태고종, 진각종, 천태종 등 큰 종파에 가려져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종파가 통폐합 된 것은 각 종파 스스로 결합한 것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조선 세종 때 국가 차원의 인위적인 종파 통합 때문이었다. 세종은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종파를 교종과 선종 양대 종단으로 통폐합했다. 원인이 무엇이 됐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국가 차원에서 종단을 통폐합 한다는 것은 테러나 다름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우리나라 종파들은 종파 나름의 특색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세종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불교 종단에 대한 인위적인 통폐합은 표면적으로는 불교 교단의 부패함을 이유로 들었다. 즉 불교 교단이 인적 물적 재산을 불법적으로 축적하고, 승려들이 역(役)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므로, 교단을 통폐합해서 그 세력을 줄이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 이면에는 쿠데타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조선이었고,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합리화하고, 새로운 국가사상을 일으켜서 이전의 왕조를 평가절하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과정에서 불교는 국가에 의해서 밥을 축내고 국가를 망가뜨리는 천하의 몹쓸 존재가 되었고, 소수 종파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근 세월호 참사에서 정작 중요한 실종자 수색과 안전 시스템 확립은 점점 잊혀지고, 그 자리에 구원파라는 한 종교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혹은 여론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을 구원파와 연결시키고, 심지어 이전에 있었던 구원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까지 들먹이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정부나 언론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마치 구원파에게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고, 구원파라는 종교를 사이비나 이단으로 규정하려는 듯하다. 한 종교를 사이비나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종교 사이의 문제이지 국가나 언론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 최근 대통령, 여당, 정부 등 집권층과 이에 동조하는 언론의 행태는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종교를 건드렸던 조선시대 지배층의 행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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