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무성 칼럼니스트 ▸경북 구미경찰서 경위 ▸<학교폭력의 비밀을 말하다> 저자 |
【투데이신문 최무성 칼럼니스트】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본다. 친구의 잘못이나 나쁜 행동을 보고 담임선생님께 일러바쳤다가 훗날 고자질한 것이 밝혀져 나중엔 친구의 잘못은 온데간데없고 고자질 한 자체만 남게 되어 오히려 곤욕을 치르는 경험 말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두 번 다시는 친구의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무관심으로 침묵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형제지간의 잘못을 부모님께 시시콜콜 일러바쳤다가 형제들의 미움과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서로 고자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타이르고 형제지간에 사이좋게 지낼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고자질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며 자란다. 이 같은 병폐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여실히 나타난다. 타인과 사회의 모순점을 보더라도 지적하거나 나서서 개선할 줄 모른다.
학교는 어디까지나 정의와 정직을 최우선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아이들은 친구들 간의 다툼이나 금품을 빼앗고 괴롭히는 장면을 보고도 보복이 두려워 알리지 않는다. 학교 폭력의 나쁜 행위보다 고자질이 더 나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싸움 현장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 신고를 하게 되면 신고 경위 등 목격자 진술을 해야 하고 경찰서에 증인 출석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따르며 잘못되었을 경우 신분이 탄로 나 후환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처럼 남의 다툼이나 시비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충주 대원 고등학교는 사립 인문계 고등학교이면서 학생 수가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 학교는 한때 학생들의 학교 폭력과 흡연, 음주가 무려 40%에 육박했었지만 지금은 흡연과 폭력이 없는 학교로 탈바꿈하여 전국 최고의 모범 학교가 됐다.
대원 고등학교가 새롭게 달라진 것은 ‘1004(천사) 지킴이’라는 획기적 생활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승우 교사와 교직원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004 지킴이’는 핸드폰 문자를 이용해 학생들 스스로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폭력, 흡연 등을 한 친구들을 선생님에게 알려 지도를 받게 하는 것으로 발신 번호는 익명성 보장을 위해 ‘1004’로 찍는다. 제보로 알게 된 학생은 교사들로부터 체벌이 아닌 함께 진로를 걱정하며 올바르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대화와 함께 이 학교가 마련한 다양한 지도를 받는다. 특히, 흡연을 하는 학생의 제보가 들어오면 교사와의 상담, 지역의 한의원과 보건소 등과 연계한 무료 금연침 시술, 금연 일기 등의 다양한 지도를 받는다.
1004 지킴이가 처음부터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하지 마라’가 통하지 않고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요즘의 학생들을 1004에 동참시키기 위해 이승우 교사는 매일 아침 7시 20분 정도에 출근해 교통지도, 잡초 뽑기, 교내 청소하기를 했으며,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등 헌신적인 솔선수범과 교육을 펼쳤다.
이 교사가 이렇게 열정적인 노력을 펼치자 소극적이던 교사들과 학생들이 1004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004가 처음 시행되던 첫 달(2005년 3월)부터 하루 60여 건의 메시지가 이 교사의 핸드폰으로 전달됐다. 1004 메시지는 ‘애들이 담배피우고 지금 후문으로 오고 있어요.’, ‘○○가 소심해서 말도 안하고 친구도 없어요, 상담해 주세요’, ‘3반 교실에서 말싸움이 났어요, 이러다 싸울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등으로 다양하게 올라왔고, 이 교사는 이런 메시지들을 담당 교사들에게 알려 줬다. 교사들은 그때마다 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경찰, 판사 등을 초청한 전문적인 교육과 학생, 학부모가 함께하는 감동 캠프, 학교 폭력과 흡연을 주제로 펼친 표어, 포스터 대회, 글짓기 대회, 유인물 홍보 등을 펼치는 등 교사 위주의 지도에서 탈피하여 학생, 학부모 중심의 생활 지도를 추진했다.
그 결과 1004가 시작된 지 3개월 만에 흡연, 폭력 메시지가 사라지는 믿기 어려운 일이 나타났다. 그 후로 1004 메시지는 흡연이나 폭력이 아닌 진로 상담, 생활 고민 등을 요청하는 메시지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성적도 꾸준히 향상돼 2007년부터는 서울대를 비롯해 전국 우수 대학에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이렇게 흡연과 폭력이 사라진 대원고는 더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생활 지도 토론회를 열고 2006년부터는 흡연과 폭력, 쓰레기 없는 3무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1004 지킴이가 시작된 지 6년째를 맞는 이 학교는 지금도 학교 폭력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학생 흡연율도 어느 누가 보아도 믿기 어려운 0%를 기록하고 있다. 충주 대원고 교직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금연 실천 학교 공모에서 2005년~2007년, 3년 연속 전국 최우수 금연 실천 학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승우 교사는 2006년 신지식인 인증과 스승의 날 교과부장관상, 2007년 국가청소년위원회 ‘청소년 푸른 성장’ 대상, 교과부 공모 교단현장체험수기 최우수상(응모 제목 : ‘누가 우리를 믿으려 할까’), 2008년 대통령표창을 수상했으며, 전국 시도교육청 초청으로 각종 연찬회와 직무 연수 등에 강사로 초빙돼 특강을 하고 있다. 대원고의 금연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약 한 시간 분량의 교육 방송으로 제작돼 전국의 중·고등학교 및 보건소에 교육용 CD로 만들어져 보급됐다. 이 교사는 “학생생활 지도는 머리와 입으로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아이들은 교사들의 행동을 늘 뒤에서 보고 배우고 있다”고 말한 뒤 “학생 스스로 깨닫게 하는 깨달음의 교육을 실천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학교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비밀리에 하는 설문 조사보다는 사전에 학교 폭력을 신고하는 제도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그리고 고자질이 나쁜 것이 아니고 남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며 침묵할수록 잘못이 더 커져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학교 폭력을 숨기면 숨길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관심을 끌고 싶거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학교 규칙을 무조건 맹신해 급우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조금만 거슬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선생님에게 일러바친다. 수업 시간 중에도 급우들의 실수나 비위를 일러바쳐서 오히려 수업을 방해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문제 해결보다는 수업 시간을 빼앗고 학습 분위기를 망친다. 이런 아이들이 반에 서너 명 있게 되면 서로 이간질하고 감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엉망이 된다. 아이들에게 신고와 고자질의 차이를 엄격히 구분해 주고 무엇이 고자질이며 잘못 된 것인지를 새롭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학교 폭력에 대한 신고는 고자질이 아니다.
학교 폭력의 진짜 사각지대는 아이들이 친구들의 싸움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마음의 CCTV’가 고장 나 버린 데 있다. 아이들의 고장 난 마음속 CCTV를 고쳐 주는 것이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최선책이라 할 수 있다. 친구를 괴롭히고 돈을 뺏고 왕따시키는 것은 범죄행위이며, 이를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쁜 범죄행위임을 가르쳐야 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나 목격자가 선생님께 알리는 것은 고자질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행위를 신고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