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첫 에세이 <히말라야 환상방황>으로 돌아온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

 ▲ 정유정 작가 ⓒ투데이신문

◉인생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자유의지’라고 말하는 자기애(自己愛) 넘치는 그녀, 정유정
◉욕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채찍질 한다는 진정한 작가
◉첫 에세이 통해 그 동안 볼 수 없던 색다른 ‘인간 정유정’ 모습 선봬
◉“글 쓸 힘이 남아있는 한 끝까지 책을 쓰고 싶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베스트셀러 <7년의 밤>, <28> 등 블록버스터 영화같이 스케일 큰 작품을 선보이던 정유정 작가가 이번엔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주는 소탈한 작품 <히말라야 환상방황>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정유정 작가의 생애 첫 해외 여행기를 담은 에세이로 그 동안 작품에서 철두철미한 작가의 모습만을 보이던 그녀의 진솔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신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네팔의 히말라야를 첫 여행지로 정한 과감한 그녀는 자신을 ‘꺼져 버린 엔진’으로 비유하며 ‘다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17일 여정의 안나푸르나 환상종주를 택했다.

<투데이신문>에서는 머나먼 안나푸르나 땅에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자신을 되찾아온 그녀를 만나 진솔한 얘기를 나눠봤다.
     
Q. 그간 펴낸 소설의 배경이 섬, 해저, 알래스카 등 매우 다양했던 반면 실제 여행은 이번 히말라야가 처음이라던데 사실인가.

: 나는 방에 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그렇기에 사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번 작품인 <28>을 끝내고 뭘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아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게 됐다. 처음엔 히말라야에 갈 생각은 못했다. 그곳은 정말 대장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 이 때문에 나 같은 일반인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일반인도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고 그 순간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히말라야로 여행가겠다고 정했다.

Q. 첫 여행지가 히말라야라니, 두려움은 없었나.

: 당연히 두려움이 많았다. 나에게 고산병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산병은 5명 중 3명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걸 피해가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걸리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부터 무서웠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산병 때문에 죽지만 않으면 종주는 반드시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본래 성격이 뭔가에 꽂히면 기어이 해야만 하는 면이 있다(웃음).

Q. 매년 두 사람의 목숨을 통과세로 요구한다는 ‘쏘롱라패스(Thorung La Pass)’를 통과해야 하는 ‘히말라야 환상종주’ 코스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 여러 가지 코스가 있었지만 내가 히말라야를 수도 없이 갈 것도 아니고 이왕 가는 거 그 정도 코스는 돼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정도 코스는 밟고 와야 ‘히말라야를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웃음).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나는 엔진이 꺼져버린 것과 같은 상태였기에 17일 코스를 다니면서 욕망의 불씨를 찾아오리라 결심했었다. 힘든 상황 속에다 나를 던져야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히말라야를 한 바퀴 도는 코스인 환상종주를 선택했다.

Q. ‘쏘롱라패스’를 지나면서 묻은 타임캡슐 안에 ‘전사를 찾아서’라고 썼다는데 어떤 의미였나.

: ‘전사를 찾아서’라는 뜻이 <내 심장을 쏴라> 마지막 장면에서 수명이가 세상을 향해 나갈 때 나오는 문구인데 그건 자기 인생의 전사를 의미하는 거였다. 더 쉽게 말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자유의지’를 뜻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 승민이는 수명이에게 자유의지의 표상, 그러니까 ‘전사’다. 이 때문에 전사를 찾아서 떠난다는 건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서 나간다는 거였고 내가 그 부분을 오려서 간 건 내 인생에도 그런 전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의 불씨가 꺼졌으니 다시 그 불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전사를 찾아서’라는 문구를 오려가 묻고 왔다.
 

 

Q. 실제로 본 히말라야 풍경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달라.

: 한마디로 언빌리버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안나푸르나가 다섯 번 정도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볼 수 있다. 맨 밑은 아열대 기후인데 덥고 건조한데 습하기도 하다. 올라갈수록 점점 건조해지면서 우리나라 가을과 같은 날씨가 나타난다. 더 올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굉장히 황폐한 고산지대가 나타나고 5400m가 되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게 무슨 느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더라. 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없다. 눈과 바위와 모래 외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마치 화성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기묘하게 쓸쓸하고 슬프다. 또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작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곳을 넘으면 서부 쪽으로는 관광의 목적으로 개발된 트레킹 코스가 나온다. 동부 쪽으로는 완전히 오지인데 반대쪽은 트레킹 코스가 있는 게 굉장히 오묘하다. 그렇게 내려오다 보면 아열대 기후가 나타났다가 1000m~3500m 사이의 돌계단을 거치면 밀림이 나타난다. 타잔이 치타를 옆에 끼고 다닐 것 같은 거대한 밀림이 나타나는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등산을 하면서 느낀 건 안나푸르나를 올라갈수록 내가 산을 꼭 오르고 말리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이곳이 나를 좀 받아줬으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나푸르나가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야 하기에. 실제로 고산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돌아간다.   

Q. ‘안나푸르나’는 작가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승민의 꿈과 같은 곳으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님은 소설을 먼저 쓰고 안나푸르나에 가게 됐다. 실제로 가보니 소설 속 글로 표현해냈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나.

: 비슷했다. 가보니 내가 써 놓고도 ‘이래서 승민이가 이곳을 그리워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승민이었다면 그립고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를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안나푸르나가 그리웠다. 그곳에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그리웠다. 나는 처음엔 내가 특이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이 갔던 사람 모두 그랬다. 사람들이 말하는 ‘네팔병’이 정말로 있는 것 같다. 얘기를 들어보니 안나푸르나를 갔다 온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하더라. 한 번도 안 갔거나 여러 번 갔거나. 한 번만 갔다 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히말라야는 ‘신들의 땅’이라고 불릴 만큼 그곳이 주는 신비함이 있는 것 같다.

Q. 책을 보니 고생을 많이 했던데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가.

: 고산병이 가장 힘들었다. 책에 변비가 걸린 상황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어서 독자들은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산병이 가장 무서웠다. 변비는 참으면 죽지는 않지만 고산병은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엄청난 공포였다. 책에 써 놓은 것처럼 고산병 때문에 마지막에는 심장발작도 일어나기도 했다. 심장발작이 일어나 죽음과 대변하고 있던 30분 동안 극심한 공포를 느꼈는데 희한한 건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일어나서 산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Q. 같이 여행을 한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 이번 여행은 혜나와 검부와 함께 했다. 먼저 혜나는 나랑 체격이 비슷하고 요가강사였기에 체력도 좋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말하지 못하는 그런 세대의 사람인데 혜나는 자기 의견이 굉장히 뚜렷하다. 또 얼굴은 순하고 예쁘장한데 승부근성이 장난이 아니다. 자기가 곧 죽을 것 같아도 절대로 표현을 안 하더라.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서로 그랬다. 서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힘 빠지게 할까봐 힘들어도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또 다른 멤버인 검부도 우리에게 “very strong!”이라고 했다. 우리같이 강하면서도 다정한 사람들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웃음). 검부는 굉장히 시크하고 대장 기질이 있다. 젊었을 때 원정대를 끌고 높은 산을 다니던 사람이라 현재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가이드 일을 성에 안차 하고 항상 에베레스트를 그리워한다. 또 검부는 경험이 많아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정확히 예측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원래 어떤 일을 할 때 굉장히 투덜대는 타입인데 여행 내내 검부를 거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따랐다. 여행이 끝나고 셋이 에베레스트를 가기로 약속했다.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산 위에서 함께 했던 동료와 나눴던 감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틋한 것 같다. 지금도 그들이 그립다.

 

Q. 히말라야 여행으로 어떤 것을 느꼈나.

: 내가 본래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됐다. 여행을 통해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다. 나는 평소에 스스로를 ‘살기 위해서 싸움꾼처럼 살아와서 그렇지 원래는 매우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가서 발견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싸움꾼이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내 모습에 대한 어떤 강박이 없어졌다. 남들에게 내 자신이 조금 더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고 약한 모습, 민망한 모습은 안 보여야 하는 그런 강박이 좀 있었는데 그곳에서 진정한 내 자신과 만나고 난 후 그런 게 없어졌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겠다’고 내 자신을 인정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사실은 내 이상향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내 안의 가장 맘에 드는 모습을 찾아 가장 좋은 방식을 통해 살아가기로 했다.

Q. 책에 보면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밀어 넣기 위해 여행을 택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렇게 까지 한 이유가 궁금하다.

: 성격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내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몰지 않고 보통 상황에서도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된다. 나는 글을 쓸 때는 나를 항상 가둬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나가서 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계속 생각나니까 아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없애버린다.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시키려면 나를 벼랑 끝에 갖다 놔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다.

Q.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그 동안 써온 소설과는 다른 첫 에세이인데 어땠나.

: 오히려 소설보다 쓰기 편했다. 에세이라는 게 내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괜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쓰기는 훨씬 수월했다. 본래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꾸며 행동하면 힘들지만 다 놔버리고 나를 드러내면 쉬운 것처럼. 또 여행을 다니면서 메모를 계속 해놨기에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이 잡혀있어서 글을 쓰기가 편했다. 메모를 보면 그 당시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독자들이 그 동안 나의 작품을 보고 나를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강인한 여자로 알고 있는데(웃음) 이번 에세이는 나도 이렇게 편한 내용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나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싶었고 그동안 너무 강한 내용이 담겨 있는 내 소설로 인해 고문당했던 독자들에 대한 팬 서비스의 측면도 있었다. 또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이 일반인들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Q. 히말라야 여행을 가기 전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하던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나.

: 나는 그 동안 내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며 달려왔다. <28>을 쓸 당시에도 슬럼프가 한 번 왔었는데 이번에 온 건 그것과는 달랐다. 슬럼프라는 게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글이 안 써지는 건데 이번에는 아예 글을 쓰고 싶은 욕망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마치 불씨가 꺼져버린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겪는 슬럼프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됐다. 곰곰이 내 자신을 돌아보니 나는 내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며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엄마가 아프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십 몇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었다, 마치 로봇같이. 그 때는 내 자신을 로봇이라고 쳤을 때 쉼 없이 움직여 배터리가 다 닳아 방전된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 정유정 작가 ⓒ투데이신문

Q. 작가님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이번 작품 중간 중간 어머니와의 추억이 많이 소개돼 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란 남다른 존재지만 작가님에게는 더 애틋해 보였다.

: 나에겐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트라우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23년이 됐는데 정신적으로는 사실 지금도 극복이 안 된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내 인생에 가장 큰 타격이었다. 좋은 곳에 가면 엄마 생각이 난다. 히말라야에서도 화장하는 강가에서 강물로 시신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나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하는데 상처라는 건 극복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상처는 낫지 않는다. 단지 자기 자신이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면 나중에는 망각에 의해 잊혀져버리는 것뿐이지 상처 그 자체는 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

Q. 아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아들에게 어떤 엄마인가.

: 책에 나와 있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아들과 약속을 했다. 어떤 약속이냐면 아들이 태어날 때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하겠다’라는 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약속만큼은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살게 했고 아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간다. 대신에 항상 아들에게 얘기하는 게 있다. 바로 네 인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 나는 아들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엄마다(웃음).

Q. 원래는 간호사였다고 하던데 어떻게 작가가 됐나.

: 간호사로 5년 정도 병원에서 근무했고 이후로 건강보험심사평가가원이라고 병원을 감사하는 곳에서 9년을 일했다. 그곳이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웃음). 연봉도 내가 남편보다 2배나 많았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꿈은 작가였다. 단순히 글을 잘 쓰기보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써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른다섯 살에 퇴직하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꼭 직장을 그만두고서 시작해야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은데 만약 작가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절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죽으나 사나 여기서 끝을 봐야한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그만둔 후 글쓰기를 시작했다.

Q. 글을 쓰는 가치관이 있나.

: 나는 항상 작가의 책무에 대해서 생각한다. 작가는 어떤 정치적인 발언이나 입장표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사회적인 책무를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을 다른 것이기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예로 들어 피해자가 몇 명이고 사망자가 몇 명이라고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진실은 그 사실 너머에 있는 것, 작가의 시각 바로 그 자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잔다르크라는 영화를 몇 명의 감독(작가)이 만들었는데 그 때마다 잔다르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자 다 다르다. 어떤 감독은 잔다르크를 성녀로 보고 다른 감독은 잔다르크를 국가적 영웅으로 보고 또 다른 감독은 잔다르크를 하나의 사람으로 보고 영화를 만든다. 이런 각기 다른 시각 자체가 나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쓸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볼 때의 내 시각, 거기에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 <28>을 생각했을 때 독자들이 나에게 소설 속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느냐, 수진이라는 착한 여자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야 했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재난이나 전쟁이 났을 경우 가장 먼저 참혹하게 희생당하는 대상이 바로 어린 아이와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28>에서는 그 인물이 수진이었다. 수진이는 희생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이미 죽도록 돼있었고 또 그냥 죽는 게 아니라 가장 잔혹하고 처참하게 죽는 것으로 그려져야 했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진실’인데 독자가 이런 스토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자신과 타협하고 수진이를 살려준다면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사 독자가 나에게 ‘저 여자는 정말 이상한 여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쓸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작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Q. 글을 쓰는 타입이 어떤가. 본인의 글에 심취해 자기 스타일대로 쓰는 타입인가 독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쓰는 타입인가.

: 두 가지 다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소설가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라고 생각한다. 마에스트로는 지휘를 하면서 제3자가 돼서 이성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바라보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안에 녹아들어 그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하는데 작가도 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작품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서 내 역할을 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지휘자의 눈으로 호흡이 맞는 지를 살펴본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감성적이어야 하고 어느 순간에는 이성적이어야 하는데 그 감정처리를 하는 부분이 어려운 작업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가 쓴 글을 다 잘 썼다고 하고 싶지만 냉철하게 머리로 아닌 부분을 찾아내야 하니 말이다.   

Q. 그동안 출간했던 책들이 모두 어두운 내용이었다. 때문에 작가님이 글을 쓰는 주체지만 혹시 글을 쓰면서 역으로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없었나.

: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그 소설하고 똑같이 호흡을 한다. 주인공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우울하면 나도 우울하고. 소설을 쓰는 동안 쉴 때는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가면 또 주인공의 상황에 빠져버리고. 때로는 그에 대한 우울증이 찾아오지만 술 한 잔 마시고 나면 또 기분이 좋아져 글 쓸 힘이 생기곤 한다(웃음).

Q. 퇴고를 굉장히 많이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퇴고 끝에 나온 본인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할 것 같다.

: 자신감이 들 때까지 원고를 고친다. 대놓고 ‘내 책 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웃음). 왜냐면 독자는 책을 사면서 돈만 투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투자해 책을 사고 시간을 투자해서 책을 읽고 또 책 안으로 들어가 작품에 빠져들려면 자신이 정서적인 부분까지도 투자해야 한다. 독자는 이렇게 세 가지를 모두 투자해야 하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러워야 하고 충분히 그 어떤 깊이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을 작가가 제시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작품이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글을 써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원고를 고치는 편이다.

 ▲ 정유정 작가 ⓒ투데이신문

Q. 작가님의 작품은 묘사가 뛰어나 친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작품도 책에서 묘사된 문장을 바탕으로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다음 장을 넘기면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친절한 작가라고 생각되는가.

: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나섰으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상황을 던져줘야 한다. 그게 아니고 작가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얘기를 써놓고 책을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책이라는 건 독자가 원하는 얘기를 쓴 게 아니라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는 건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좋아할 독자가 어디 있겠나. 이 때문에 자신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게 독자에게 글로써 설명해줘야 한다. 때문에 독자가 책을 읽고 ‘그래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건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후속작은 언제 나올 예정인가.

: 지금으로는 2015년 말까지 진행 중인 작품을 끝낼 예정이고 2016년 초쯤 책으로 나올 것 같다.

Q. 작가로서의 목표가 무엇인가.

: 작가로서의 내 목표는 타자를 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는 소설을 내놓는 거다. 사실은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작가가 외국에서도 몇 명 안 된다. 스티븐 킹 정도나 돼야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수준의 책을 내놓을 수 있지, 나중에는 글을 쓸 힘이 달리고 소재거리가 떨어지고 하니까. 심지어 헤밍웨이는 자살하지 않았나. 때문에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계속 완성도 있는 소설을 내놓고 싶다. 또 독자들에게 영원히 이야기꾼으로 기억되는 것. 그게  작가로서의 목표다.

Q. 인간 정유정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 나는 내가 죽을 때 ‘내가 원하는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 정말 단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살았다. 심지어 어디서 술을 마시는 것조차도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고 내가 원해서 했던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길 바란다. 불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웃음). 하여튼 나는 내 인생을 지배하는 테마가 있다면 ‘자유의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사는 것. 특히나 나는 젊은 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에 나머지 인생은 인간 정유정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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