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칼럼니스트】‘정당성 있는 살인은 존재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떠오르게 하는 연극이 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덕적 신념에 따라 고리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죽이고 골방에 처박혀 갈등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연극 ‘야간여행’은 2001년 얀 코스틴 바그너의 독일소설 ‘야간여행’을 연극으로 각색해 올린 작품이다. 얀 코스틴 바그너는 이 소설로 독일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말로상을 수상했다. 29살에 젊은 나이로 등단해 언론의 찬사를 받은 작품 ‘야간여행’이 한국에서 초연됐다.

연극 ‘야간여행’은 속도감 있게 출발한다. 주인공 마크 크라머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따라 한 남자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크라머가 향한 곳은 은퇴한 영화배우 프라이킨의 집이다. 크라머는 작가지망생이고 그는 이곳에 자신의 출판사 사장이자 자신의 먼 친척인 야콥 뢰더의 추천을 받아 자서전을 쓰러 온 것이다.

크라머는 그 일을 썩 내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라이킨의 젊은 아내 사라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는 프라이킨의 집에서 위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야간여행은 마크 크라머라는 인물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제공되며 크라머는 극에서 빠져 나와 극을 진행 할 수도 있다. 마치 진행자처럼 말이다.

마크 크라머가 이곳에 머무는 사이 야콥 뢰더의 살해사건을 조사 중이던 경찰이 마크 크라머를 찾아온다. 그는 위기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사실 자신의 소설이 형편없다고 무시하면서 차라리 은퇴한 영화배우의 자서전이나 쓰라고 말한 야콥 뢰더를 살려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마크 크라머는 그를 죽이고 영화배우 프라이킨을 찾아 프랑스로 온 것이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분석하다

마크 크라머는 사라를 차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과거 명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늙어빠진 프라이킨을 자살로 위장해서 죽일 계획을 짠다.

크라머는 살인을 계획하면서, 뢰더의 죽음을 되돌아본다.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정당한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정당방위’이며, 피해자를 ‘이 세상에서 해방시켜줬고 합리화시켜버린다.

그리고 죄책감은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야간여행은 이전 추리심리극하고는 다른 양상(樣相)을 보인다. 누가 죽였는지? 그리고 왜 죽였는지에 대한 논리성보다는 살인자의 심리적인 상황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쫓아 본 관객이라면 극이 마치고 난 후에 다소 허무해 할 수도 있다. 기승전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마크 크라머의 심리변화를 관찰하다 좀 더 극을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린 크라머에게 이상한 매력을 느낀다. 사실 이 자는 뻔뻔한 살인자에 냉소주의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크라머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크라머는 이미 부와 명성을 가진 뢰더나 프라이킨을 증오한다. 왜냐면 그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모멸감에서 시작된 살인은 무기력한 젊음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그가 세상을 보는 기준은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남의 아내를 탐내고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양복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밤새 날아다니는 모기와의 사투. 마치 영화 ‘사이코’를 보는 듯하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의 사악함을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주변사람들 누구도 그가 살인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야콥 뢰더는 그에게 유산을 남겼고, 사라는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잠자리까지 한다.

크라머는 끊임없이 발작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오르는 그 웃음은 깊은 슬픔과 허무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공연은 대학로 극장 동국에서 오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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