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고려대 한문학과 강사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나는 대학에서 교양한문을 강의하고 있다. 가끔씩 옛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해서 설명할 때 조금 애를 먹는다. 요즘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사랑받는데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한다. 스펙을 쌓아야 하는 사람한테 ‘자신의 내면 수양을 위한 공부를 하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사람한테 ‘복숭아나무 자두나무는 거기 있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 아래에 자연스레 길이 생긴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양해(?)를 구한다.

“고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옳다고 생각했고,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이 고전의 내용이 여러분들의 바쁜 삶에 잠시라도 브레이크 역할이나마 해 줬으면 하는 겁니다. 알아 두고 가끔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64일째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때처럼 침통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세상에 큰 일이 벌어져도 일상생활은 해야 해서 학생들과 즐겁게 만나 수업을 했고, ‘삼국지인물전’ 관련 인터뷰도 했으며, 사람들도 만났다. 친구가 책 냈다고 동창들이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을 직접 만났던 일은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모두들 누가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크게 즐거워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야말로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충격적인 일을 접했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거리에 모여 우리나라 대표팀을 응원하겠다고 발표한 일이다. 어차피 열리는 월드컵, 거기에 우리나라 대표팀까지 출전을 하니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성원도 보낼 수 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월드컵에 축구 마니아들이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다만, 때가 때이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참사가 여러 사안들에 의해 묻히고 있는데다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월드컵이 열린다. 붉은악마 같은 큰 단체가 움직이면 언론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게 뻔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릴게 자명하다. 모든 걸 감안하고 어렵사리 거리응원을 하겠다고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이건 아니라 말하고 싶다. 지금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이 있다. 이 분들은 말한다.

“(사람들이) 잊을까봐 두려워요.”

이 분들 뿐인가. 유족이 아닌 많은 분들이 자중을 하고 있다. 유족들께 잘 보이려고, 남들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자중을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그래도 남의 슬픔을 조금씩 나누기 위해, 그것이 떠나간 아이들과 유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믿기 때문에 자중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쯤에서 고리타분한 옛 사람의 말을 들려주려 한다.

맹자는 말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누구나 놀라면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건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를 하려고 해서가 아니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자 해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해서도 아니다.” <『맹자』, 「공손추 상」>

우물에 빠지려 하는 정도가 아니라 300여명의 사람이 속절없이 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자, 어찌되었건 거리응원을 위해 영동대로가 통제 되었고, 세계적인 스타 싸이도 이 행사를 위해 급히 귀국했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거리응원이 취소될 리는 없다. 다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브레이크’의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붉은악마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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