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100년 역사 광장시장, ‘구제의 메카’로 자리잡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서울 종로구 중심에 자리한 광장시장. 이곳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민들의 장터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이다. 밀리오레나 두산타워와 같은 대형의류 상가도 광장시장의 모태가 됐다고 한다. 광장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가 바로 ‘구제의 메카’라는 것. 구제란 중고 의류를 뜻하는 말이다.

갈수록 치솟는 옷값 때문에 근심이 늘어가는 요즘, 찌푸린 미간을 펴주는 곳. 바로 광장시장 안에 있는 수입 구제상가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0일 오후 1시쯤 광장시장을 찾았다. 을지로4가역 4번 출구에서 나와 5분 정도 걷다보니 광장시장이 보였다. 시장의 복문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1-2평 남짓의 구제가게들이 빼곡히 자리해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곳곳에 백열구가 반짝거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뿜었다. 가게들은 생각보다 지저분하거나 낡아보이지 않았다. 헌 옷이긴 하지만 일부 옷들은 깨끗하게 손질돼 있었다. 이곳의 옷은 주로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되거나 유통되는 옷이라고 한다. 구제상가는 평일 오후라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한산한 분위기였다. 기자가 가게들을 지나치니 “언니! 뭐 찾는 거 있어요?”, “잘 해줄게요. 한 번 보고 가세요” 라고 상인들이 소리쳤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구제스타일’

“이거 오늘 산 옷인데 정말 예쁘죠?”

한 가게에서 서울 여의도동에서 온 김정(60)씨를 만났다. 그녀는 광장시장 구제상가에 10년째 다니는 자칭 VIP고객(?)이었다. 스스로를 구제마니아라고 했다. 김 씨는 오늘 구매한 핑크색 코트를 입어보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요리조리 감상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찾던 독특한 스타일의 옷을 만났기 때문이다. 광장시장을 10년이나 다닌 이유를 묻자 “여기에는 특이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옷이 많아요. 저는 독특하고 젊은 스타일을 좋아해서 오게 됐죠”라고 말했다.

‘빼밀리’ 장광민(52) 사장은 “TV나 신문에 소개된 구제시장을 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곳은 다양한 옷이 많기 때문에 나만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요. 여기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쇼핑타운인 셈이죠”라며 “대학생, 아주머니 등 실속파들이 구제를 많이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마치 보물찾기하듯 가게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독특한 스타일의 옷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딱 어울리는 옷을 찾게 되는 영광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발품을 제대로 팔면 질 좋고 개성있는 옷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구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다. 구제가게에 옷만 있는 건 아니다. 독특한 문양과 형태의 넥타이, 신발 등 다양한 패션아이템을 판다. 두 눈 크게 뜨고 열심히 찾다 보면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나만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일산 주교동에 사는 김진호(25) 씨는 “1-2년 전부터 여기에서 옷을 사고 있어요. 예쁘고 특이한 게 많아서 종종 와요”라고 말했다. ‘김코디’ 상인 김모 씨는 “여기에는 외국 사이트에서 볼 법한 디자인이 많아요. 옷 스타일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다양하게 구비돼 있죠”라고 말했다.

   
 

“싸게 주세요”… 흥정, 구제옷 살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광장시장 구제상가의 또다른 재미는 ‘흥정하는 맛’이다. 구제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한 구제가게 앞에서 만난 유혜란(인천 문예전문학교 파티플래너학과‧2) 씨는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저렴한 옷을 사 입게 돼요. 그리고 상인 분과 가격 조절이 가능하니까 자주 오게 되더라고요. 광장시장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와요”라고 말했다. 또한 황지수(덕성여대 서양학과‧2) 씨는 “올해 초 친한 언니가 추천해줘서 오게 됐는데 한번 제대로 날 잡고 오면 15만원어치 사기도 해요. 특이한 옷도 많고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만족해요”라고 전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처럼 구제를 살 때는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 일반 옷가게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입다가 버린 옷이라는 인식이 강해 ‘구제는 싼 맛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J house 김문정(26) 사장은 “보통 구제는 한 번 거쳐온다는 이미지가 강해요. 일부 손님들이 (터무니없이) 싸게 해달라고 하실 때는 좀 속상하죠”고 말했다.

   
 

더러운 옷 아니야?… 구제상인 “부정적인 인식은 버려주세요”

구제가 주는 다양함과 독특함 때문에 연예인들도 많이 찾는다. ‘뻠’ 상인 전원석(23) 씨는 “여기는 브랜드도 다양하고 스타일이 특이한 게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동대문으로 안 가고 이곳에 오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라며 “황정음, 김나영, 오창석 등 연예인도 많이 찾아요”라고 전했다.

반면, 구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상인 김모 씨는 “구제를 보고 ‘거지 옷 아니야?’ 혹은 ‘죽은 사람이 입던 옷 아니냐’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중고의류이긴 하지만 저렴하고 자기 개성대로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미래’ 박소라(33) 사장은 자신이 구제에 빠지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저는 원래 옷을 좋아했어요. 우연히 옷을 사러 광장시장에 오게 됐는데 구제를 보고 나서 혼이 나갔죠. 마치 신세계였어요. 비유를 하자면, 처음 클럽에 갔을 때 마냥 신기해하고 들뜨는 감정이랄까요? (웃음) 그런 걸 처음 광장시장 구제상가에 왔을 때 느꼈어요. 똑같은 옷이 하나도 없더라고요”라고 전했다. 박 씨는 당시를 생각하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씨는 구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일본은 빈티지 마켓이 활성화돼 있어 구제 옷이 고가예요. 그런데 일부에서 구제를 ‘헌 것, 입던 것’이라며 안 좋게 보는 인식이 있어요. 새 옷에서 느낄 수 없는 구제만의 빈티지함과 개성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포사마’ 이장극(47) 사장은 “우리 가게에는 독특한 일본 구제가 많아요”라면서 “제가 여기에서 15년 정도 일했는데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힘들어요. 경기가 좀 풀렸으면 하네요”라는 소망을 드러냈다.

한편, 구제마니아들은 구제를 살 때 꼼꼼히 살펴보고 구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옷에 구멍이 났는지, 원단에 곰팡이가 피었는지 등을 따져보고 사야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구제옷에는 새 옷에서 찾을 수 없는 특유의 빛바램이 있다. 누군가는 필요없어 버리는 옷이겠지만 이것을 멋지게 활용하는 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렴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면 광장시장으로 ‘검은 봉지’ 들고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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