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고려대 한문학과 강사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나는 6개월 방위출신이라, 신병교육대 1개월을 빼고 나머지 5개월 동안 입영과 탈영을 반복했다. ○○사단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같은 중대 동기가 진짜 탈영을 했다. 중대가 뒤집어졌다.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헌병대에 불려가서 이런저런 조사를 받았다.

“그 병사 여자 친구 있냐.”

“성격은 어떠냐.”

“상급자가 괴롭히지는 않았느냐.”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중에서 세 번째 질문에 참 대답하기 어려웠다. 사람마다 ‘괴롭힌다’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시콜콜 말할 수 없었고, 아무리 빨리 제대할 6방이라도 분위기 파악을 해야 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탈영한 사이, 새로 온 소대장이 이등병들을 소집했다. 우리들의 고충을 듣겠다고 했다. 상급자들은 이 소집에 회의적이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가’ 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재욱이 너는 6방이니까 상급자들이 괴롭혀도 금방 나가잖아. 우리는 오래 있어야 돼. 네가 좋은 일 좀 해라. 그리고 너희 동기가 탈영했으니 너희들이 이야기를 해야지?”

지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정말 난감했고, 무서웠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거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저한테 불만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대신 저는 모르는 게 많으니 옆에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서른 명 쯤 되는 이등병들이 소대장과 마주 앉았다. 생전 어디 가서 말 한마디 못하는 나인데, 상급자와 동료가 뭔가를 정리해 줬어도 정말 떨렸다. 소대장이 말했다.

“상급자들한테 말 안 할 테니 편하게 이야기 해라. 문제 생기면 소대장이 막는다.”

내가 말했다.

“소대장님 말씀엔 감사합니다. 그런데 소대장님이 무슨 수로 어떻게 막아 주실 겁니까? 여기에서 저희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소대장님이 중대장님께 보고를 하면, 여기에서 이야기 했던 내용은 어차피 다 알려지게 돼 있고, 이 내용이란 게 상급자들한테 불리한 것일 텐데 나중에 가만히 있겠습니까? 저희들의 고충은 다른 게 아닙니다. 하급자라는 이유로 무엇이든 눈치를 봐야하는 이 상황, 소대장님까지 우리를 따로 불러야 하는 이 상황이 우리 고충입니다. 이것부터 소대장님이 알아 주셔야 다른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계획에 없는 말이었다. 솔직히 나도 겁을 먹어서 아무렇게나 주워섬긴 거였다. 동료들도 소대장도 당황했다.

“어? 그래? 하하. 그래. 알겠다. 그럼 내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하면 되겠나?”

“네. 차라리 그게 현실적입니다. 한꺼번에 다 개선하기도 어렵습니다. 저희들의 고충을 소대장님이나 중대장님이 아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한 번 들어보자.”

“군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훈련 때든 휴식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이유 없이 우리를 노려봅니다. 실수를 하면, 그 사람은 놔두고 바로 위 상급자한테 얼차려를 줍니다."

“……”

“얼차려를 금지했는데도, 여전히 간부들 눈을 피해 얼차려를 줍니다. 퇴근 후에도 산으로 집합시켜서 얼차려를 주고 있습니다.”

“……”

“이번에 탈영한 제 동기는 내성적인 친구입니다.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압박을 했기 때문에 탈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고참이 ‘야, 넌 왜 내성적이야’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

“이렇게 말하면 ‘군대니까 어쩔 수 없다’, ‘너희들도 상급자 되면 이해할거다’고 하실 겁니다. 이해는 할 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는 아마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걸 왜 한낱 이등병인 저한테 물으십니까. 저는 이런 문제점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소대장님께서 중대장님과 의논하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흘인가 나흘인가 지나서 내 동기는 자수를 했다. 며칠 사이에 바짝 말라버린 녀석의 얼굴을 보는데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그 녀석한테 동작이 굼뜨다고 한 소리 했다가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나자 더 미안했다. 그 때 같이 힘들어 했더라면 저런 일이 없었을 텐데.

철책 근무를 하던 임 아무개 병장이 총기사고를 냈다. 몇 사람을 사살하고 탈영했단다.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이고 임 병장의 탈영 동기에 대해서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임 병장이 관심병사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다. 모르긴 하되 군 당국에서는 사람이 죽은 결과만 놓고 임 병장을 처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것으로 짐작한다. 형식적으로 군대문화의 개선에 대해 몇 마디 하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사고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 넌 왜 내성적이냐!”

집단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생각을 근본부터 차단해 버렸으면서, 그에 대한 반성 없이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사고는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군 당국은 예전처럼 범인 한 사람을 처벌하고, 사망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고는 이 사고를 재빨리 덮어버리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임 병장의 탈영동기가 무엇이든, 이 사고를 임 병장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 해서도 안 된다. ‘까라면 까라’ 식의 무지막지한 군대문화가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탈영은 임 병장이 했지만, 탈영을 도와준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길 바란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린 임 병장은 지금이라도 총을 내려놓고 자수하기 바란다.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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