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칼럼니스트】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너무나 다른 그들이 과연 식구가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연극이 ‘가을 반딧불이’이다.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부터 ‘나에게 불의 전차를’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전달하는 정의신 작가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 한 ‘가을 반딧불이’.

‘가을 반딧불이’는 공연 시작 전부터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일상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슈헤이 삼촌은 국수를 준비하고 스물아홉 청년 다모쓰는 보트선착장을 홀로 청소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여유롭고 따뜻한 일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렇게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8살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다모쓰와 그를 돌보며 살아가는 슈헤이, 40대에 실직자가 돼 버린 사연 많은 사토시, 임신한 몸으로 선착장을 찾아오는 마쓰미까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좌충우돌(左衝右突) 동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 명 더, 아들을 버리고 21년 만에 귀신으로 나타난 분페이까지.

의도치 않게 식구들이 늘어나 심기가 불편한 다모쓰. 결국 집을 나갈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마쓰마와 슈헤이, 사토시의 생각지 못한 각자의 사연들이 소개된다. 시내에서 ‘마쓰미바’를 운영하고 있는 마쓰미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실패한 삶이다. 5번 보트를 타던 손님 사토시는 가정도 직장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빼앗겨버린 처지다. 슈헤이도 과거의 힘들었던 사연을 토로(吐露)한다.

어릴 적 다모쓰를 버린 아빠 분페이는 ‘영혼’이 돼 구천(九天)을 떠돈다. 삶의 무슨 미련이 남아서 아직까지 다모쓰 곁을 지키는 것일까?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분페이의 영혼은 다모쓰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던 슈크림 빵을 21년 만에 생일 선물로 건넨다. 분페이가 아들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이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다모쓰는 어른이 된다. 남을 용서하고 나서야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연극 ‘가을 반딧불이’는 유독 식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식구(食口)라는 뜻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 장면은 티격태격 하다가도 언제나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여느 가정의 모습에서나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결국 이들은 또 하나의 공동체(共同體)가 되어 가는 것이다.

가을밤 고즈넉한 선착장 위로 반딧불이 하나가 빛을 발하며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분페이의 웃음은 뭉클한 감동과 함께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가을 반딧불이’는 7월 2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한 달여간 공연된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