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新풍속도> ‘비밀스럽게 찍히는 커플사진’

   
▲ (사진제공= 천대필)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누군가 몰래 자신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찍는다면?

파파라치는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연예인 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특종 사진을 찍는 사진사를 의미한다. 요즘에는 자동차 신호위반 등을 촬영해 포상금을 타는 ‘카파라치’를 비롯해 노래방의 불법영업행위를 찍고 포상금을 받아내는 ‘노파라치’ 등 다양한 파파라치가 있다.

이처럼 어둡고 부정적인 파파라치와는 다른 ‘데이트 파파라치’가 최근 젊은 커플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데이트 파파라치란 사진사가 커플 중 한 사람에게 의뢰받아 이들의 데이트 장면을 몰래 찍어주는 것이다. 촬영은 의뢰한 사람과 사진사만 안다. 물론 두 사람이 함께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24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연인 커플 촬영’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데이트 파파라치 사진사 천대필(39)씨를 만나 데이트 파파라치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진제공= 천대필)

데이트 파파라치, 의뢰인 파트너만 모르는 ‘비~밀’

천대필 씨는 2011년 말부터 지금까지 데이트 파파라치 사진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처음 취미로 사진 찍는 것을 배웠는데 가족 빼고는 인물 섭외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동으로 가서 한번 사람들 몰래 사진을 찍어봤는데 예상 외로 잘 나오는 게 아닌가. 이후 천 씨는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있다. 연인들의 사진을 합법적으로(?) 몰래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용은 제각기 다르지만 천 씨의 경우 2시간 촬영에 14만원을 받는다. 거리가 멀어 비용이 많이 들 경우 차비를 별도로 받고 놀이동산으로 가게 되면 입장료를 받는다. 촬영 시간대는 주로 오후 1시부터이고 여름에는 해가 길어 6시까지도 진행한다. 요즘같은 여름 날씨나 햇빛 좋은 날에는 오후 3-4시 정도가 돼야 사진이 잘 나온다.

천 씨에 따르면 데이트 파파라치를 의뢰하고 사진을 찍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촬영에 앞서 천 씨는 먼저 두 사람이 연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받아 본다.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촬영 당일, 약속장소에 오기 전 둘이 찍은 셀프카메라 사진을 받는다. 이를 확인해야 어떤 커플이고 무슨 옷을 입었는지 사전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의뢰한 사람과 그의 파트너는 천 씨의 얼굴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의뢰인과 사진사가 서로 SNS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데이트가 끝나고 며칠 후 사진을 받아보면 ‘아 찍혔구나’하고 알게 된다.

미리 데이트를 시작하는 위치와 동선을 파악한 천 씨는 연인을 쫓아다니며 2시간 정도 사진을 찍는다. 촬영에 앞서 의뢰인이 사진사에게 미리 동선을 알려주는데 의뢰인이 데이트 중간에 동선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때 천 씨는 매우 당혹스럽다고 한다. 사진사가 미리 특정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우,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동선이 엉켜 커플을 잃어버리는 등 웃지 못할 경험도 있었다고 천 씨는 말했다.

간혹 데이트 파파라치 촬영 중임을 모르는 의뢰인의 파트너가 사진사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째려보거나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것. 이럴 경우 일부러 떨어져서 걷거나 잠시 몸을 피해 있기도 한다. 하지만 들키는 경우는 드물다. 연인이 데이트할 때 서로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진사가 꼭꼭 숨어서 찍지는 않고 어느 정도 커플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30~50m정도 거리를 두고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서는 1~2m 앞에서 찍는다. 

   
▲ (사진제공= 천대필)

 

사진찍기 좋은 곳… ‘경복궁, 삼청동, 인사동’

천 씨가 주로 촬영하는 장소는 ▲인사동 ▲삼청동 ▲덕수궁 ▲경복궁 ▲가로수길 등이 있다. 천 씨에 따르면 경회루 쪽으로 가면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또 청계천은 물, 풀, 조명이 있어 도시와 자연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 물이 가로 질러 있기 때문에 반대편이나 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반면, 인사동 쌈지길이나 삼청동 등은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고 사람들이 많아 파파라치컷 느낌이 잘 살아난다고 한다. 기자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청계천, 삼청동, 인사동” 이렇게 세 군데를 꼽았다.

단, 놀이공원은 사진 찍기가 좋지 않은데 이유는 놀이기구 타는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천 씨는 “2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경우 찍기가 참 애매하고 놀이기구 탈 때는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차라리 서울대공원이나 동물원이 낫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데이트 파파라치는 야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날씨가 매우 중요하다. 촬영 당일 비가 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고 특히 여름에는 장마가 있어 일기예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파파라치 사진의 매력, ‘연출없는 자연스러움’

젊은 커플들이 파파라치 사진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트 파파라치는 꾸미지 않는 순간을 포착하고 연인과의 특별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의뢰한다. 의뢰인으로는 주로 여성이 많고 드물게는 동성커플도 있다.

천 씨는 “한번 나가서 촬영하면 평균 600컷 정도 찍는다”며 “실제로 고객에게 사진을 넘겨주는 것은 한 300컷에서 400컷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일반 데이트 스냅사진이 20장~ 30장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진을 많이 주는 이유를 묻자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함이란다. 잘 나오지 못한 사진도 나중에는 추억이 되기 때문에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셈이라고 천 씨는 말했다.

스튜디오 사진의 경우 한 자리에서 계속 찍는다. 곰인형 등의 소품을 들고 있거나 환한 조명을 받으며 미소를 짓는다. 예쁘게 나와 흐뭇하긴 해도 ‘자연스러움’과 ‘이야기’가 없어 아쉬울 때가 있다. 시간과 이야기를 사진에 오롯이 담아주는 것이 데이트 파파라치 사진만의 특징이다. 그렇게 찍힌 사진을 보면 나 자신도 몰랐던 행동이나 표정을 보며 신기해 하거나 ‘그땐 그랬지’하며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데이트 파파라치를 커플들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천 씨는 야외 데이트 파파라치 촬영을 할 경우 계속 걷기만 하는 커플에게 스킨십, 장난 등을 취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사진 찍을 때 표정이나 행동이 더 자연스럽고 사진이 생동감 넘치기 때문이란다.

“표정 완전 웃긴다”, “내 뒤통수 왜 때렸어?”, “이때 정말 웃겼는데”…. 2시간 동안 사랑하는 이들의 순간 순간을 마치 정지된 동영상처럼 사진에 담는 데이트 파파라치. 이것이야말로 자연스러움과 이야기 그리고 색다른 추억을 남기는 ‘특급’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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