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단원고 희생자 '박예슬 양 전시회'에 가다

   
 

짧지만 구두처럼 예뻤던 예슬이의 꿈
구두가 좋아 엄마 구두를 자주 신어보기도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꿈 많은 아이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미처 피우지 못한 슬픈 꽃봉오리가 있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사랑했던 아이. 바로 지난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 故 박예슬 양이다.

이달 4일부터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가 훗날 딸의 전시회를 열어주기 위해 그림을 틈틈이 모았다는 故 박예슬 양 아버지의 인터뷰를 접하면서 기획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4일 예슬 양의 꿈이 담긴 작품 전시회를 다녀왔다.  -편집자 주-

   
 

전시장 입구 벽면에 가득한 메모들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이 편지를 붙이고 간 후, 메모가 하나둘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 중 한 편지는 예슬 양의 친구가 쓴 것이었다. “(중략) 다음 생에도 나랑 친구하자. 편지 쓰는데 중간 중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들릴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예슬 양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한 켠에 예슬 양을 닮은 밝고 화사한 꽃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휴지가 구비돼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우는 사람이 많아 휴지를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휴지까지 준비했을까. 더불어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천만 범국민서명’도 있었다. 방문한 시민 대부분이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 미안하다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이곳에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예슬 양이 유치원 때부터 사고 전에 그렸던 스케치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동생 예진 양을 그린 그림 ▲자신이 살고 싶은 집 ▲남자친구와 함께 입고 싶었던 옷을 그린 스케치 ▲구두 디자인 등…. 그녀의 재능이 돋보이고 감성과 애정이 녹아있는 작품이었다.

더 특별한 것은 예슬 양의 그림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림 속에만 있던 구두와 옷은 디자이너들의 손을 통해 재탄생됐다. 남자친구와 함께 입고 싶다며 그렸던 스케치는 옷으로 김숙경 디자이너가, 구두는 이겸비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이겸비 디자이너는 예슬 양의 구두 디자인을 보며 ‘이런 식의 (구두)굽을 본 적이 없다’는 등 디자인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남자친구와 입고 싶었던 옷은 동생 예진 양에게, 남자친구에 입히고 싶었던 옷은 예슬 양 남자친구에게 전달될 계획이라고 한다. 또 구두는 예슬 양 어머니 발 사이즈에 맞춰 제작됐는데 제작된 구두를 신어본 어머니는 편하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 안에는 작품을 설명하거나 찾아온 시민을 맞이하는 5-6명의 봉사자도 있었다. 자원봉사자 김미숙(50) 씨는 “예슬 양 혼자만의 전시가 아닌 단원고, 일반인 희생자들의 혼이 담긴 전시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분들이 미안한 마음으로 찾으시는데 작품을 보고 재능이 아깝다며 안쓰러워하신다”고 전했다.

유난히 20대 학생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는 미술을 전공하는 한 학생을 만났다. 대학생 박솔비(23) 양은 “나 역시 예슬이 나이 때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고 미술에 대한 꿈이 있었다”며 “꿈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예슬 양 또래의 자녀를 둔 어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독산동에 사는 주부 전옥진(47) 씨는 “어떤 아이인지 참 궁금했는데 밝고 예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예슬이 부모님의 마음이 어떻겠냐”고 울먹였다. 퇴근하는 길에 들렸다는 시민 이용우(28) 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세 달이 다 돼 간다”며 “아쉽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린 나이에 해보고 싶었던 게 참 많았을 텐데….”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전시장에는 노래 ‘거위의 꿈’이 흘러나왔다. 마치 예슬 양이 부르는 노래 같았다.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추모 동영상도 나왔다. 영상에서는 친구들과 계곡에 발을 담그며 즐거워하는 예슬 양의 모습, 어릴 적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사고 당시 울면서도 엄마를 안심시키며 ‘걱정말라. 곧 나가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영상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봉사자들은 청소를 시작했다. 기자가 취재를 마치니 한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제가 쓰던 것이긴 한데….” 하며 무엇인가를 건넸다. 자신의 가슴에 달고 있던 ‘노란리본 배지’였다. 

   
 

이번 전시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종로구 효자동 40-2 서촌갤러리에서 무기한 열린다.


“1반 수진이 아빠야. 우리 수진이랑 잘 있지? 정말 꿈이 많은 예슬이였구나.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하영이 엄마야. 그림 너무 잘 보고 간다. 하영이랑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어. 사랑해”

“꿈 많던 예슬아, 드넓은 하늘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길 기도할게”

“만개한 꽃을 보이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지 말자.
 가장 애틋한 봉오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음을 슬퍼하지 말자.
 그 찬란한 봉오리가 4천만의 기억 속에 이미 새겨졌고
 세월이 흐르면 더욱 또렷이 서로 다른 4천만 개의 만개한 꽃이 될 터이니” 
- <박예슬 전시회> 입구에 있는 메모와 편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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