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하이스코 신성재 사장(좌),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우)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셋째 딸의 이혼 소식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정 회장의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의 20년가량의 결혼생활이 막을 내렸다.

2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정 전무와 신 사장은 지난 1월 서울가정법원에 조정이혼을 신청했고 2개월 후인 지난 3월 이혼이 확정됐다. 조정이혼은 여타 이혼 소송 등과 달리 당사자들 간에 합의가 됐다면 조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이혼이 성립된다.

정 전무와 신 사장의 이혼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들이 이혼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이뤄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냉연부문이 합병된 것을 이혼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95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신 사장은 이곳에서 동갑내기인 정 전무를 알게 돼 결혼에 성공했다.

이어 1998년 현대하이스코로 자리를 옮긴 뒤 2001년 냉연수출팀장·수출담당 이사를 맡았다. 2002년에는 관리본부 전무로서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2003년 관리본부(기획담당)·영업본부(본부장) 부사장에 이어 2005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임명됐다.

당시 이러한 신 사장의 승진에 대해 장인인 정 회장의 후광을 뒤에 업고서 승진이 너무 ‘초고속’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현대하이스코의 냉연부문이 현대제철에 합병되면서 이러한 지적과 뒷말이 무색할 만큼 신 사장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신 사장에 대해 ‘초고속 승진’이라는 뒷말이 돌기는 했지만 사실 신 사장이 현대하이스코의 이사 자리에 오르고 난 후 실적을 살펴보면 그의 경영능력에 대해 발목을 잡을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신 사장이 2002년 3월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기 이전인 현대하이스코의 2001년 매출액은 1조4381억16754만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493억3722만 원, 당기순이익은 161억8556만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신 사장이 전무, 부사장, 사장의 자리에 차근차근 오름과 동시에 현대하이스코가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현대하이스코의 매출액은 4조461억3709만 원으로 2001년에 비해 181%가량 올랐고 영업이익은 7%가량 오른 1610억4046만 원을 기록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1조6087억6497만 원으로 2001년에 비해 고성장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을 두고 정 회장의 하나뿐인 아들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의 입지를 단단히 함으로써 경영 승계를 가속화시키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했고 또 이렇게 열심히 일궈온 현대하이스코의 핵심 분야를 현대제철과 합병시키면서 신 사장의 상실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말들도 뒤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에는 5조4030억6692만 원이던 현대하이스코의 자산규모가 2013년 12월 말 현대제철과 냉연부문이 합병된 이후로 2조2581억8607만 원으로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당시 현대 측은 일관제철 사업의 경영 효율성 극대화를 끌어올리기 위해 열연·냉연강판 생산 공정의 통합이 필요하다며 합병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냉연부문의 경우 현대하이스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업이기에 이를 현대제철에 합병시킬 수밖에 없었던 신 사장에 대한 동정론이 일게 된 것이다.

결국 이 합병을 통해서 정 부회장이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전체 과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이로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 승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정 부회장은 현대제철·현대차·기아차·현대오토에버·현대모비스·현대엔지비까지 6개의 계열사 이사직에 올라있다. 거기에 현대하이스코의 냉연부문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자동차 생산 전 과정을 전부 손에 넣었고 결국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은 정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투데이신문>이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하이스코 등에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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