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찬 칼럼니스트
▸한국의정발전연구소 대표
▸서울IBC홀딩스㈜ 대표이사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을 오늘날 경제적 성장의 반석을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장기집권과 민주화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에 대한 격렬한 비판 등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역사상 한 인물에 대한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극명한 예는 그 선례를 찾기 힘들다.

보는 이의 각도와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마련이지만 극명한 평가의 이분법적 논리는 박정희시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2분법적 평가 자세를 지양하고 부국강병의 프리즘에서 그 시대를 평가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읽는 이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박정희 시대는 부국강병정책의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예이다. 한 나라의 부국강병책이란 결국 그 시대를 이끌어 간 지도자의 철학과 무관할 수 없다.

한정된 국가재원을 한곳에 집중 선택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숱한 부작용은 결국 부국강병정책을 추구했던 박정희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지만 그의 재임 18년 기간 내내 그는 당시 한국이 직면하였던 절대빈곤상황을 극복하고 경제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분골쇄신한 지도자였음에는 큰 이론이 없다할 것이다.

그의 부국강병책은 주로 경제·과학·국방 분야에 집중됐다.

이른바 성장위주정책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한 박정희식 발전모델은 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성공적인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한국의 절대빈곤퇴치와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바 있다.

그것은 철저히 지도자의 일관된 철학과 그에 기초한 엘리트 관료들의 노력 그리고 묵묵히 그의 영도를 따라준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었다.

분명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창조했고 그 이후 한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의 토대가 구축됐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경제성장에 그 모든 것을 걸었던 박정희정권의 경제제일주의는 박정희라는 개인의 권위주의적 리더립과 그가 구축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합작품이기도 했다.

자칫 비생산적일 수도 있는 이른바 민주적 합의절차는 철저하게 그의 집권기간 내내 무시됐고 군대식 일사불란한 명령체계에 따른 경제정책수행이 진행됐다.

박정희시대에 놀라울 정도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 중 구조적인 이유는 바로 경제정책관리체제에 국회와 정당의 영향력이 철저하게 배제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이것은 그의 특유의 군대식 리더십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경제주도세력으로 리드한 행정부 특히 경제기획원, 재경부 등 정통전문관료집단은 이른바 ‘정치공해’로부터 철저히 보호됐고 이러한 정치적 요소의 철저한 배제는 이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토대를 대통령이 구축해 주었다는 점에서 향후 경제정책구현과정에 많은 의미있는 시사를 던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행정부 내 경제논리의 지배는 결국 행정부가 국회 등 외부권력기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했고 결국 이는 행정부의 독주체제 엘리트관료시대의 발흥을 초래했다.

대통령 비서실을 중심으로한 효율적이고도 일사분란한 경제정책집행시스템은 제한된 국가자원의 효율적 동원을 통한 압축성장의 시나리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물론 그로 인한 불균형성장이라는 명암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아마도 박정희가 그토록 경제제일주의에 매달렸던 이유는 그의 집권과정의 불법성과 관계가 깊은 것 같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였기에 경제성장을 통해 그의 정통성을 보장받으려는 강한 심리적 동기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그는 집권말기 분출하는 민주화 열기에 적지 아니하게 당황하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법하다.

어찌됐건 박정희시대의 본격적인 부국강병은 바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권과 민주화 등 정치적으로 소중한 가치의 희생을 대가로 가능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비극적인 최후와 얽힌 숱한 이야기들은 최근도 좌파논자들에 의해 그의 공을 갉아먹는 빌미가 되고 있다.

권력의 막바지 궁정동안가에서 연예인들을 불러놓고 매일 밤 향연을 즐겼다는 것이 이미 인구에 오래전부터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장준하 타살의혹사건에서 보듯 민주인사나 자신의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과 살해는 그의 산업화에 기여한 공에도 불구 그와 그를 잇는 정치적 후계자들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최근 제18대 대선과정에서 벌어졌었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논란의 중심의제 또한 박정희의 과부분에 몰려있음을 볼 때 역시 인과응보의 법칙은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철칙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그녀를 지지했던 많은 보수층이 기대했던 것은 그녀가 부친과 같은 일관된 리더십을 발휘 작금의 어려운 국가적인 난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신의 부활이라는 박정희시대의 암울한 시대상이 박근혜시대에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늘 명심에 두어야할 것이다.

역사는 늘 돌고 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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