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칼럼니스트】인간의 욕망은 죄악인가. 

연극 ‘데스트랩’을 보고 있자면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에 더욱 탐나는 것. 나에게 없는 것을 탐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죄악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공’,‘꿈’ 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로 탈바꿈되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연극 ‘데스트랩’ 이러한 마음에 대한 ‘욕망’이라 정의한다.

연극 ‘데스트랩’에서는 미국 코네티컷 웨스트포트의 한 저택을 배경으로 한때는 잘나갔던 극작가 시드니 브릴이 등장한다. 그는 몇 년째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의 창의력은 고괄되고 그의 극작가로서의 인생도 이제는 초야(草野)에 뭍 칠 판국이다. 그런 그에게 한편의 희곡이 배달되어 온다. 제목은 ‘데스트랩’. 자신의 극작 수업을 받았던 클립포드 앤더슨이라는 청년이 보내 온 것이다. 

시드니 브릴은 고민하게 된다. 아니, ‘데스트랩’이라는 희곡이 그를 고민에 빠트렸다. 그 작품은 너무나 훌륭하고 흠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드니 브릴이 가진 감정은 질투심이었다. 물론 그것을 인정하는데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이 작품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이것이 살인의 동기를 만들어내고 이때까지만 해도 관객은 이 모든 것이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데스트랩’이란 희곡이 완성 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 연극 ‘데스트랩’이다. 살인의 동기도 대상도 반전에 반전을 더하면서 관객은 시종일관 벌어지는 반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욕망’이라는 덫에 걸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것을 결국에는 누구도 갖지 못하는 것. 바로 인간의 ‘욕망’,‘욕심’인 것이다. 

무대의 벽면에는 무대 소품으로 사용되었던 총과 칼, 갖가지의 위험한 무기들로 가득하다. 소품들만 보아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과연 어떤 도구가 어떻게 사용될지 궁금증을 유발하게 된다.

긴장감과 유머를 적절히 배합한 연극 ‘데스트랩’은 극이 주는 긴장감 가운데서 어이없는 실수와 캐릭터들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면서 코믹 코드를 곳곳에 잘 배치했다. 코믹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를 통해 관객들은 다양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데스트랩’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아이라 레빈의 작품으로 1978년 초연됐고 이후 4년간 1890회 공연하며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됐다. 1982년 크리스토퍼 리브, 마이클 케인 주연의 영화로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김수로 프로젝트’ 9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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