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은 이번 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심판을 받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정부와 여당의 불합리한 독주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 대한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었던 것이다. 이 결과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겠다며 동반 사퇴했고, 박영선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대표의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나 상당수의 야권지지자들은 두 공동대표가 물러났다고 해서 새정연이 갑자기 변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보다 상황을 호전시켜 주기만 해도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130석을 갖고도 그 동안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전만 못해졌다. 박영선 위원장은 새누리당과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당내 사전 합의도 없이 밀실에서 합의해 버렸다. 야권지지자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 와중에 윤일병 사망사건(세월호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주장도 있다)이 일어났다. 아무도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옛날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 지금 군인이 맞아죽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고 역시 세월호 참사만큼이나 심각하다. 얼핏 보면 윤일병 한 명이 죽은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윤일병 사건 이 알려진 이후 군대 내부의 각종 사고사례에 대한 증언이 속출하고 있는 게 그 반증이라고 하겠다. 세월호 참사가 소수를 단위로 해서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어찌되었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안일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군대 내부의 모순은 하루 이틀 간에 생긴 것이 아니다. 군이 창설된 이래로 현재까지 후임병에 대한 구타나 가혹행위는 있었고,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자살했지만, 사회와 분리되어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군대의 폐쇄성은 모순을 키우는 역할을 했고, 그 결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이래서 군대문제에는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하고,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렵다. 다만 지금이 군을 개혁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을 확인하고도 예전처럼 피해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며, 관련자 문책을 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앞으로 윤일병 사망사건과 유사하거나 더 피해범위가 넓은 사건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죽을 수 있는 군인들을 이젠 구해야 한다. 사실이 이러한데 새정연 의원들은 관련자를 엄하게 문책해야 하는데도 ‘군의 사기’를 고려하여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한다. 그곳에서 윤일병은 맞아 죽었다. 이 뿐인가. 신병교육대의 훈련병한테 “1년만 참으면 상병이 되니 그때 가서 맘대로 해라.”, “카츄샤를 가지 왜 힘든 곳으로 왔느냐”고 한다.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넘기기엔 너무나 걱정스럽다.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기성세대들이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원래 험한 곳이고, 사고는 있을 수 있으니 모두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건, 윤일병 사고로 대변할 수 있는 ‘군대의 세월호 참사’가 이걸로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 생각도 무사태평하니 다른 일이 또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등학생, 대학생이 피해를 입으니, 그 다음은 기성세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무사안일한 정치권이나 이 사고에 관심을 갖지 않는 국민들을 보면서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은 이렇듯 이제는 전국적으로 군인이 죽어 나간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수를 합하면 세월호 희생자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참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안개 속을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개 속에서 고속으로 차를 몰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속절없이 들이받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과 정부한테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새정연 의원들, 당신들한테도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브레이크든, 안개등이든, 안전벨트든 그 중 무언가 하나의 역할만이라도 해 달라. 이제부터라도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군대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해야 하겠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합의 없이 이루어진 밀실야합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모든 사안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새정연, 현재 나타나는 국민들의 분노는 당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골든타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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