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무더운 여름날, 그나마 서늘해진 저녁녘 한강 주변에는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득실댄다. 그들 틈사이로 힐끗 저녁메뉴를 엿보면 모두 공통된 음식이 놓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치킨과 맥주.

이처럼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 돼버린 치킨은 1997년 이후 외식 메뉴 1등자리를 한 번도 내준 적 없다. ‘불타는 금요일’에 동료들과 가볍게 한잔하려 할 때, 나이도 미각도 제각각인 가족을 모두 만족시키는 식사 겸 안주를 고를 때, 바쁜 일상 속 편리하게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싶을 때 사람들은 치킨을 찾는다.

게다가 기본인 후라이드를 변주한 고추장양념, 간장양념, 파닭, 마늘치킨 등 다양한 메뉴는 매주 시켜 먹는다 해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아 치킨은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어느덧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한 치킨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 있다. 바로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대한민국 치킨展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가 그 주인공이다.

농촌․농업 사회학을 전공한 젊은 연구자 정은정은 표준 표기인 ‘프라이드치킨’ 대신 ‘후라이드치킨’을 고집한다. 그가 이 책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서양에서 유래한 프라이드치킨의 역사나 맛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치킨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닭을 조각 내 기름에 튀긴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긴 하지만 닭튀김이라는 말도 튀긴 닭이라는 말도 치킨을 대체할 수 없다.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수입된 서양음식인 프라이드치킨은 미국식 크리스마스 문화를 향유하려는 한국인의 욕망을 자극했다. 또한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낸 조리법은 물에 삶는 백숙이나 닭 껍질의 지방으로 굽는 전기구이통닭은 따라올 수 없는 고소한 기름 맛으로 한국인의 미각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치킨은 소풍이나 운동회의 필수음식으로 자리를 굳혔고 드디어 지난 2002년 ‘대~한민국’의 함성과 함께 ‘치맥시대’를 열었다.

조촐한 회식자리의 만만한 메뉴이자 독신자들의 끼니로 자리 잡은 치킨이지만 한 마리의 치킨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마케팅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치킨展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의 저자 정은정은 치킨 자체뿐만 아니라 치킨을 둘러싸고 있는 시장체계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까지,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모두 책 속에 담아냈다.

그 내용은 총 5부로 이루어져있는 해당 책의 ‘치킨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나’,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치킨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1 — 백숙에서 치맥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닭’,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2 — 산업이 만든 치킨, 치킨이 지탱하는 산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은정은 "운동회와 소소한 회식, 월드컵 응원은 맥주(혹은 콜라)와 결합한 치킨이 공동체와 축제의 음식으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보여준다"며 "물의 맛에서 기름의 맛을 탐하는 것으로 바뀐 한국인의 입맛, 막장인생의 새로운 대명사가 된 치킨집 사장의 처지와 21세기의 양계유감까지 치킨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풍경을 꼼꼼히 그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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