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저자 김태훈

   
 

▶인간적 면모와 용장의 모습이 공존한 위인
▶난중일기·선조실록·징비론까지 뒤져 700페이지 책 완성
▶기존 이순신 서적, 어린이 위인전 수준으로 신격화했을 뿐
▶‘명량 열풍’, 400년 전 이순신 통해 리더의 이상 투영
▶대한민국, 제2의 이순신 탄생 막고 있어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신(臣)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성웅(聖雄) 이순신과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8월 22일 기준 15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의 연출 방법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관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감동적이었다’고 영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올 초 마우나 오션 리조트에서 일어난 사고와 세월호 참사같이 예방하지 못했던 사고들과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정부의 냉담함 등을 보면서 심적으로 지친 국민들은 공·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리더의 모습과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 고뇌하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전쟁판에 뛰어든 ‘이순신’의 면모에서 위로받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일본과의 해전에서 이긴 영웅의 모습을 보고 감명 받은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무쌍하게 바다로 나선 이순신의 모습에 힘을 얻고, 전에 없던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나와 다르지 않은 이순신에 안심했다.

이러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는 사실 좀 새삼스럽기는 하다.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이란 충(忠)과 효(孝)로 똘똘 뭉쳐 몇 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끝까지 위대한 성웅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날것 그대로의 이순신 말하고파

그러나 딱 한 사람,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오래도록 공부했던 김태훈 작가는 “이순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며 지난 2004년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펴냈고 10년이 지난 2014년 다시금 이순신에 대한 책을 세상 밖에 내놨다. 그리고 이번 책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를 통해 김 작가는 ‘날것 그대로의 이순신’,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살이 타도록 뜨거운 햇빛을 적당히 흐린 날씨와 구름이 가려주던 지난 20일, 명동의 전국은행연합회 건물에서 김태훈 작가를 만났다. 다소 본업의 일처리로 바쁜 것 같아 조심스레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니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금세 일을 끝마치고는 “기다리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하다”면서 반기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김 작가를 만나기 전 ‘과연 누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반가워하면서 읽기는 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책부터 살펴보니 김 작가가 쓴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는 지난 7월 17일 1쇄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한 달도 채우지 않은 8월 15일, 2쇄가 발간됐다. 출판시장이 어렵다는데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구심. ‘직장인이라면서 이 책을 어떻게 썼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는 732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두께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회사원이라면 퇴근 후 책을 읽는 데만도 며칠이 걸릴 판인데 이 책을 전공자도 아닌 사람(김태훈 작가는 영문과 출신이라고 했다)이 썼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김 작가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겼는데 우리나라의 이순신 책들은 어디서도 인물의 내면을 제대로 그려내지 않았다”면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서양의 영웅인 시저의 경우, 유머러스한 사람이고 ‘대머리’, ‘바람둥이’라는 뭔가 살짝 부족한 면도 그리면서 결국 전쟁에서는 용맹하게 싸우는 모습을 나타냈다. 인간미가 느껴지니 그 사람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이순신의 책들은 그저 충·효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어린이 위인전 수준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이 그저 어린이들에게 인물에 대해 존경심만을 심게 하는 수준이라니,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기자의 머릿속에는 그저 ‘이순신 장군’의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만 떠올랐다. 김 작가의 말이 맞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기존에 나온 책들에 대해 김 작가는 “이순신의 전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 인물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저 전부 일관적으로 충과 효에만 집중해서 다 똑같은 위인전밖에 안됐다”라고 하면서 “현재 국민들의 눈도 높아졌고 또 의식도 올라갔다. 단순히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닌 인물에 대한 고민을 가진 책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이다”라고 요즘 추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최근 개봉한 ‘명량’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릴 때 봤던 영화는 그저 마지막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프다’라는 감정과 그만큼 위대한 사람이라는 ‘신격화’ 작업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명량’에서는 절규하는 모습이라든가, 어쨌든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고민과 생각에서부터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는 시작됐다. 그저 독자였던 사람이 스스로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김 작가는 직장인이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10년 전에 같은 주제의 책을 낸 적이 있다지만 이번 책은 700페이지가 넘는다. 책을 쓰면서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김 작가는 정말 놀라운 답변을 줬다.

그는 “전혀. 정말 재미있었다. 취미생활 수준도 아니었고 그냥 아예 몰두해서 쓰기만 했다. 사실 10년 전에 ‘이순신의 두 얼굴’을 낼 때는 토요일 이른 새벽부터 쓰기 시작해서 ‘좀 쉬어야겠다’하고 고개를 드니 일요일 아침이 되어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나이도 먹고 했으니 그 정도까지는 어려워서 새벽 4시 반에는 자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눈에서 피가 터졌다”라고 고생담을 늘어놓는데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몸은 다소 힘들었을지언정 재미있고 즐거우니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책을 쓰는 내내 김 작가의 주말은 이순신에게 꼬박 바쳐졌다. 어쩌면 열 달 동안 아기를 품은 산모와 같은 심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주말마다 이순신과 400년 전으로 되돌아가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는 기분이었을까?

   
▲ 이순신 장군 동상 ⓒ뉴시스

이순신 진짜 모습을 찾았다

어찌됐든 김 작가는 오랜 시간을 이순신만을 위해 사용했다. 선조실록을 찾아보고 유성룡의 징비록도 살펴보면서 난중일기에서 나타난 이순신의 감정의 실타래를 실제 있었던 역사와 하나하나 맞춰가며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과 이순신 사이에 있었던 일화다. 선조실록을 보면 ‘이순신과 원균을 대질(관계자 양쪽을 대면시켜 진술하게 하는 것)시켰다’면서 ‘이순신이 원균을 모함한 것이다. 원균의 말은 바르고 이순신의 이야기는 군색했다’고 이덕형이 선조에게 보고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면서 노량해전까지 모두 끝난 몇 년 후, 이덕형이 선조에게 ‘이순신과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대질시켰다는 말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보고 지금까지 모든 학자들은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작가는 이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 김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대질이라는 것을 서면 조사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결국 이것도 추측일 뿐 확실한 사실이 아니었기에 김 작가는 다시 선조실록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선조실록에 나온 내용은 대질(對質)이 아닌 상힐(相詰: 서로 비난함)이었다. 결국 오역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덕형도 믿고 이순신도 믿는다. 이순신의 경우는 자기 부하들에게 내용을 잘못 전달받아서 원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덕형의 경우는 왕에게 본인이 직접 한 이야기인데 과연 거짓말로 보고를 올렸을까 싶었다. 만약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했다면 당시 이순신을 후원하던 유성룡은 왜 이순신을 돕지 않은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식적인 추론을 했을 때 대질이라는 것이 곧 서면 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싶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서로 비난한 것이라면 서면 조사한 것은 거의 확실시 된 것 아닌가? 그리고 이순신의 성격이었다면 원균을 모함할 리가 없다. 그저 부하의 말을 듣고 실수한 것이라고 보는 게 그나마 말이 된다고 본다”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실수하는 이순신 장군이라… 그저 광화문 광장에서 종로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있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머리에 각인돼있는 기자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의 이순신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김 작가는 명량해전 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난중일기 1597년 9월 11일의 내용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았다.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심히 언짢아하였다’를 설명해줬다.

“이것이 명량해전이 있기 5일 전의 내용이다. 상상해봐라. 전투가 곧 벌어지는데 누가 봐도 우리는 약하고 상대방은 좀 많이 센 것 같다. 그럼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안 좋겠나. 그러니까 눈물이 흐르면서 진저리가 친 것이다. 이순신도 도망가고 싶고, 살고 싶을 것이다. 또 어느 날 일기를 보면 ‘오늘 모든 일은 다 원균 때문이다’ 라고 적어놓은 것도 있다. 결국 이순신 장군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전쟁에만 나가면 그렇게 용감하고 맹렬하게 싸운다. 인간적인 면모와 용장의 모습이 공존한다. 그것이 내가 이순신에게 푹 빠져버린 이유다”

   
 

대한민국에도 이순신은 있다

김 작가로부터 이순신 장군에 대해 듣고 있으니 1500만 관객을 동원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 작가도 ‘명량’에 대해 “영화 자체도 재미있게 봤고 이순신이라는 브랜드 자체도 굉장히 감동적이었다”면서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명량’을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다는 것에 대해 김 작가는 “사실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못 만들어지고를 떠나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기에 본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보다는 내일이 더 힘들 것 같다는, 미래로 향하는 디딤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버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면서 “우리가 내일의 희망에 대한 결핍을 해소시키기 위해 400년 전의 이순신을 불러와서 각자 원하는 리더의 이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는 이순신 같은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고 김 작가에게 되물었다. 그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이순신은 있다. 그저 아직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못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 아직 ‘이순신’적인 면모가 나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12척의 배도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길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직 그 12척의 배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사람을 발굴해내고 아껴줘야 하는데, 지금은 대다수가 그런 사람의 탄생부터 짓밟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 어딘가에는 ‘이순신’이 길러지고 있고 앞으로 나올 것이라고 본다”

   
▲ 영화 '명량' 포스터

평범에서 비범으로

김 작가는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나 이순신에 대해 많이 알고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 이상 연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지 궁금해 앞으로 다시 한 번 책을 쓸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할 이야기를 다 했다. 물론 아직 남겨 놓은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훌륭한 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쓸 계획은 없다고 봐야겠다. 2004년 이후 또 책을 쓴 것은 그때 이후로 내용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서, 더 훌륭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자신이 가장 원하는 바는 이순신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하고, 다양하게 조명한 책이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본인이 스스로 오랜 시간 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그에 대해 느낀 점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딱 한 마디로만.

“장군”

김 작가는 짧게 대답했다. 좀 더 구체적인 한 마디는 없을까요, 하며 재차 물었더니 김 작가는 “평범에서 비범으로.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이순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이순신은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것에 다가갈 수 있으면 다가가고 싶고, 배울 수 있으면 전부 다 본받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순신처럼 사람 자체가 매력덩어리인 사람이 되고 싶고 또 그와 같이 매력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고.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