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8월 29일, 작년 7월에 세상을 떠난 꽃다운 청년 병사 故 김지훈 일병의 추모식과 현충원 이장식이 열렸다.

지난해 6월 30일,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 김지훈 일병은 부관인 H중위에게 완전군장으로 얼차려를 받은 후 다음날 새벽, 부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당일 저녁, H중위는 김 일병에게 야간 완전군장 얼차려를 시켰고 평소 지속적으로 업무와 관련해 지적하는 등 가혹행위를 행했던 것이 각종 진술서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공군본부 측은 올해 1월 20일, 김 일병을 ‘일반 사망’으로 결정 내렸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가족의 의견과 여론의 압박으로 인해 공군 측은 재심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7개여 월 만인 올해 8월 12일, 유가족은 ‘순직’ 통지서를 받았다.  

분당추모공원에서 15비행단, 그리고 국립현충원까지…. 故 김지훈 일병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의 마지막 길을 <투데이신문>이 동행했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오전 12시, 분당에 있는 한 추모공원에서 김 일병의 유가족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김 일병의 유골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골함 앞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붙어있었다. 사진 속 가족들은 모두 해맑게 웃고 있었다. 추모공원 관계자가 김 일병의 유골함을 꺼내자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지훈아, 여기 있지 말고 좋은 데 가자”라고.

“사랑하는 지훈아! 벌써 1년이 되었구나. 훌쩍 떠난 너를, 바람 속에서 항상 느낀다”

건물 내부 1층으로 내려오니 김 일병을 추모하기 위한 작은 상이 보였다.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이 글귀가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가족과 친지들은 묵념을 하고 15비행단으로 옮길 준비를 했다. 국화꽃을 손에 든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동생은 형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꼬옥 안았다. 어머니는 작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서있었다.

차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 오후 1시쯤 15비행단 제2정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면회실로 들어서니 김 일병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김 일병의 대학 친구들은 한 켠에서 15비행단 가해자 H중위와 현재 공군본부 감찰관으로 있는 방조자 H단장의 처벌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본인 확인 과정을 거쳐야 부대 내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접수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신분 확인을 끝낸 사람들은 하나둘씩 주차장으로 이동해 버스에 탑승했다. 오후 1시 30분경, 김 일병이 목숨을 끊은 생활관 옆에서 두원공과대학교 강훈구 교수의 사회로 추모식이 진행됐다. 사회자는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생전의 부모에 대한 효심과 이웃에 대한 봉사정신의 은덕을 기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부모의 추모 글은 사회자가 대신 낭독했다. 주 내용은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제 아들은 분노와 절망의 방아쇠를 자신을 향해 당겼습니다. (중략) 모든 행위의 시작과 결과는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는 것이라고 말하던 녀석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H중위와 H단장)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떠난 제 아들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응당 받아야 할 벌을 제대로 치르고 나야 그들도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끝으로 “바람만 불어도 돌아봅니다. 거리의 청년만 보아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뛰어노는 아이들만 보아도 먹먹해집니다”고 말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다음으로 김 일병의 같은 학교 선배인 제갈국현 군의 추모글도 이어졌다. 글은 김 일병의 아버지의 제자 송명호 군이 대신 낭독했다.

“…이 와중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아무리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고 애써봐도, 때로는 좋은 아들이었고 좋은 스승이었으며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던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너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중략) 김지훈은 멋진 놈이었다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널 죽게 한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날까지 차분히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추모글은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촉촉하게 적셨다. 유가족과 추모객들의 마음을 아는 듯 매미는 더욱 세차게 울어댔다.

사회자는 “가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법적 처벌이 이뤄지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대한민국 군대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했다. 이어서 헌화의 시간을 가졌다.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함께 새하얀 국화꽃이 김 일병 사진 아래에 쌓여갔다. 추모장 바로 옆에는 김 일병의 동기를 비롯해 선임, 후임 병사들도 자리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곳에서 추모식을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세상에 이리도 잔인한 슬픔이 있을까. 아버지는 아들이 목숨을 끊은 생활관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김 일병 아버지의 제자 송명호(26)군은 “나 역시 공군을 나와서 공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존경하는 교수님의 아드님이 이런 일을 당하고, 공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 마음도 쓰렸고 창피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추모식이 끝난 후 사람들은 서울 국립현충원으로 가기 위해 공군 버스에 올라탔다. 김 일병의 유가족은 추모객들을 위해 물과 떡을 준비했다. 떡을 받아 보니 그 위에는 ‘아름다운 아들과 이별’ 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추모객들에게 눈물젖은 떡이었으리라.

버스 안에서 만난 오성옥(58)씨는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낼 때 사실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전쟁을 하다가 나라를 위해 순직했다고 하면 우리의 도리이고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다치고 치료가 잘 안 된다든지 지훈이처럼 벌을 받다 간다든지 그러면 엄마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나”며 울먹였다.

오후 3시경, 서울 국립현충원에 도착해 영현 봉안관에 들어섰다.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다. 김 일병을 비롯해 4명의 고인에 대한 합동이장식이 진행됐다.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 선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며 아들 사진을 계속 쓰다듬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에서 손을 떼지 못했고 얼굴을 파묻으며 사진을 끌어안았다. 현충원 이장식 공식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유골이 봉안돼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김 일병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다. 

김 일병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학내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온 송민지(사범대 체육교육과‧4) 학생기자는 “우리학교 학생이었던 김지훈 학우의 일이 학내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며 “부모님 심정까지는 감히 헤아릴 수 없겠지만 슬픔이 더 크게 느껴졌고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지훈을 사랑했던 친구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다는 김 일병의 친구 이상빈(23)군에게 그가 생전 어떤 친구였는지 물었다. 이 군은 “지훈이는 되게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주변 친구들이 공부와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또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많아서 친구들이 부러워했다”며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고 늘 한결같은 친구였다. 공군 측에서는 지훈이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저희(친구들)는 그런 것을 전혀 못 느꼈다. 교우관계도 좋았다”고 강조했다.

김 일병과 고등학교부터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는 윤민우(22)군은 친구 김지훈에 대해 ‘선생님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윤 군은 “지훈이는 저희한테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조언해줬고 그의 조언을 들으면 항상 문제가 해결됐다. 무슨 일이 있으면 늘 도움을 주는 친구”였다며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내가 부대에서 첫 휴가 나왔을 때 지훈이가 군대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는데 그때 밥 먹으면서 이야기한 것이 마지막”이라며 슬퍼했다.

더불어 그의 친구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되고 관련자들이 처벌받기를 소망했다.  

이 군은 “순직처리 받은 것은 당연히 원래 그렇게 됐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제 남은 것은 관련자들 처벌인데 순직처리 됐다는 이후로 사람들의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끝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윤 군도 “다행히 순직처리가 돼서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좀더 노력해 지훈이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의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일병의 고등학교 선배 김도연(24)씨도 “정확하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실하게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훈이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허망하게 세상 떠난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위한 조사도 원만하게 진행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故 김지훈 일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늘로 떠났다. 공군의 순직처리만으로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가해자와 방조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분노와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다.

추모식이 끝난 후 김 일병의 아버지는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간절한 외침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이제 시작인 듯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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