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십일조(十一租)
[칼럼] 십일조(十一租)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9.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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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지난 8월 1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이하 예장 합동) 헌법전면개정위원회가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정지시키는 내용의 총회 헌법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2014년 8월 20일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장 합동총회 헌법전면개정위원회 서기인 한기승 목사가 “십일조라는 것보다는 헌법적 규칙에 나오는대로 교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당회의 결의로 공동의회 투표권을 (제한한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십일조) 안 한 (교인들이) 무더기로 와서 (투표하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결의'와 '투표권'을 제한한다, 그런 의미입니다.”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정안이 반발을 불러오자, 개정위원회는 '십일조' 대신 '교인의 의무'라는 단어를 개정안에 넣었다. 그런데 교인의 의무 조항에 십일조와 헌금의 납부가 의무화 되어 있기 때문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난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2014년 3월 8일자 신문고뉴스에서는 사랑의교회에서도 정관 개정을 해서, 십일조를 납부하지 않으면 사랑의교회 교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 역시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서 십일조라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십일조는 유럽에서 중세 이후 농민에게 부과되었던 세금의 일종이었다. 5세기 이후 기독교(여기에서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는 모든 종교를 말한다.)는 『구약성서』에 의거해서 빈자·병자의 구제, 교회운영과 성직자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신도로부터 수입의 10분의 1을 공헌하도록 요구하였는데, 8세기 후반 이후, 이것이 모든 교인에게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조세가 되었으며, 9세기 이후 그 징수권은 세속 영주의 손에 넘어갔다. 곡물, 포도주, 야채, 과일 등의 토지로부터의 수확물 외에 가축이나 축산물에도 비슷한 액수가 부과되었다. 징수방법은 처음에는 물건으로 납부하는 것이었는데, 13세기경부터 돈으로 내는 것도 행하여지게 되었다. 한편 16세기 초의 독일 농민전쟁에서는 농민에 의해서 부역, 지대와 함께 십분의 일세의 폐지가 요구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프랑스혁명, 19세기의 농민해방에 의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십일조가 기독교 신자의 의무인지 여부는 기독교가 생긴 이후 종종 문제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도 십일조가 꼭 필요한지에 관해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고, 다만 빈민을 돕는 것은 선한 일이라는 데만 동의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신약성서는 반드시 10퍼센트를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 유럽에 확산되면서 일종의 의무가 된 것이다. 미국처럼 국교라고 할 만한 종교가 없는 나라의 경우, 교회는 십일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좋은 일이라면서 십일조를 강조할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 개신교의 최대 교파에서 자신의 종교계의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십일조를 납부하지 않는 교인에게 교인 자격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여 십일조를 의무로 보는 것은 율법주의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서 신자의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은 목사나 장로 등이 자신들의 전횡을 통제받지 않으려는 의도가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하여 총회 헌법을 개정하려는 측에서는 ‘십일조는 교인의 의무이고,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은 이단이다. 이단을 가려내서 교단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반박하였다.

개신교 신자가 아닌 필자의 입장에서는 십일조가 의무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할 수도, 지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십일조를 둘러싸고 있는 논쟁이 담고 있는 이면에 더 관심이 생긴다. 즉 신자로서의 의무를 요구하고, 의무를 따르지 않으면 제제를 가하는 지극히 ‘과학적이고 법리적인’ 측면이, ‘신앙심’, ‘기적’, ‘사랑’ 등 ‘이성적일 필요가 없는’ 종교의 영역 내에서 강조되는 현상이 과연 종교 본연의 모습인지 고민스러울 뿐이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는 9년 동안 십일조를 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금액을 환불하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세속 안에 있는 종교가 끝까지 성(聖)스러워야 할 부분마저도 세속적 기준에 의해 해석되고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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