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며칠 전, 지인과 만나서 술 한잔했다. 시간이 늦어서 택시를 탔다. 라디오 뉴스에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족들이 만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늙수그레한 기사아저씨가 한 마디 툭 던진다.

“민주당 때문에 국회법도 통과가 안 돼요. 만날 발목만 잡으니까…….”

“민주당 때문이 아니라 새누리당 때문이죠.”

“세월호 사건도 그래요. 새누리당이 유족 만난다잖아요. 민주당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민주당이 무능한 건 사실인데요. 그나마 유족들이 단식을 하고, 문재인 의원도 단식을 하니까 겨우 움직이는 겁니다. 새누리당은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 사건 해결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중립인데요. 이제 세월호는 잊어야죠. 다 끝난 일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중립이요? 기사님 자식이 그렇게 죽었어도 그렇게 잊을 겁니까? 그게 중립이에요?”

“(발끈하며)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죠.”

“아저씨야말로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자식이 죽은 부모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아, 그게 아니라, 그거 밝혀서 뭔 소용이 있어요. 나라만 시끄럽고, 변하는 게 없을 겁니다.”

“밝혀서 책임자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안 나게 해야죠. 또 이런 사고 났으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나라가 시끄러워요? 나라 시끄러워서 아저씨 택시영업 못했어요? 아저씨 손해 본 거 있어요?”

“…….”

“아저씨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는데 왜 그 사람들한테 그만하라 마라 하세요? 세월호 유족이 아저씨 영업 방해했어요?”

“아니,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여론이 다 그래요.”

“지금까지 아저씨가 말씀을 하시고선 뭐를 아니라고 하세요? 그리고 아저씨가 말하는 여론이 뭔데요?”

“택시 타는 사람들이 다 그럽디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그럼 저는 뭔가요? 아저씨 택시 타는 사람들이 이 나라 여론 대표합니까? 지금 아저씨 말 들으니 이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요. 모르면서 ‘잊어라’, ‘그만하라’는 말 하는 거 아닙니다.”

“모르긴 왜 몰라요. 뉴스 들어서 알아요.”

“이게 뉴스인가요? 라디오 말고 다른 거 본 적 없으시죠? 광화문은 가보셨어요?”

“아, 광화문 가 봤지. 다 알아요.”

“가보니 어떻던가요. 가서 유족들, 단식하는 사람들 보고도 지금 잊으라는 말이 나옵니까? 네?”

“어차피 내 생각 손님생각 다르니 아웅다웅 할 일이 아니에요.”

“아저씨 생각이 뭔가요? 지금 보니 아저씨 생각은 없고, 라디오 생각만 있네요. 그리고 제가 지금 아저씨하고 아웅다웅하는 건가요? 아저씨는 중립도 아니네. 정부편이고 새누리당 편이네요. 차라리 그렇다고 하세요.”

“…….”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 아시죠? 아저씨 사는데 전혀 피해를 안 주는 사람들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게 쪽박 깨는 짓입니다. 아저씨나 가만히 있으세요.”

이미 정부와 새누리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면서도 ‘중립’이라고 변명하고, 할 말이 없으니 말머리를 돌리거나, ‘너나 나나 똑같은 놈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지만, 이런 상황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동시에 많은 분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새누리당과 정부를 성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천 명이 광장에서 외치는 건 분명 의미 있으며,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어도 내용 모르는 한 사람한테 이 일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그 이야기 거리 중 하나가 바로 세월호 참사일 확률이 높다. 이 참사의 원인은 유병언 일가가 아니라 ‘재난시스템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점, 일차적이고 표면적인 책임은 선장에게 있지만,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를 키운 정부, 그 정부를 움직이는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는 점을 힘주어 말해야 하리라고 본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 더구나 이것이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세월호 참사의 해결은 정파와 이념을 떠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므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종편과 보수언론, 균형 감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는 공영방송에 길들여져 그들의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하겠다.

“말해 봐야 소용없다.”, “괜히 싸움만 일어난다.”고 하실 줄 안다. 그렇다. 말해 봐야 이미 생각이 굳어 버린 사람들을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생각에 근거 또한 있다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그 안에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까지 떠올린다면 추석명절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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