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중학교 소속 15살 소녀, 체조 연습 중 머리 부딪혀 부상 당해
여자 체조계의 유망주, 뇌출혈로 인지장애 겪고 꿈 접어
학교 내 체조연습 중 벌어진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사고 선수 아버지 “신속한 대처 있었다면 심각한 부상 막을 수 있었을 것”
가족 “사고 CCTV 조작” vs 재단 “내부 보고용 편집”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한국 여자 체조의 ‘희망’이라 불리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포항제철서초등학교를 다니던 김지현(15)양. 당시 13살이던 지현이는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따며 여자 체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유리처럼 맑았던 소녀의 꿈은 깨져버렸다.

사고가 발생했던 2012년 1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현 양은 포항제철중학교 체조전용경기장에서 회전 기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연습 도중 처음 기술을 시도했는데 머리를 부딪혔고 이내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4분 뒤 두 번째로 회전 기술을 실시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지현 양은 공중에서 회전한 후 착지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부딪혔고 쓰러졌다.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으며 눈은 초점을 잃어갔다. 이후 포항성모병원으로 이송돼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마쳤지만 뇌출혈(외상성 급성경막하혈종, 중증 뇌부종) 판정을 받으면서 40여일 동안 의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됐다. 그 사이 부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예전의 날렵하고 똘똘하던 소녀가 아니었다. 몸 한 쪽이 마비돼 혼자서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수술로 인해 머리 한 쪽이 부풀었고 눈은 사시가 돼 잘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인지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떨어져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2년 8개여 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사고를 두고 포스코교육재단과 피해자 가족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크게 ▲사고 발생시간 ▲사고 후 지도자의 미흡한 대처 ▲CCTV 조작 ▲지원비 지급 문제 등이 있다.

   
 

사고선수 가족 vs 재단, 엇갈리는 사고 발생시간

통상적으로 뇌출혈 환자에게는 1분 1초가 중요하다. 시간에 따라 후유증의 차이가 크므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간. 이른바 골든타임(의학적으로 환자의 생존과 직결되는 의학적인 처치가 시행돼야 하는 시간)의 확보가 환자의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시 지현이의 수술을 집도했던 포항성모병원 백모 과장은 “응급실에 실려왔던 지현이는 양쪽 동공이 열려 있었으며 사망 직전의 혼수상태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병원에 좀더 일찍 왔더라면 지현이의 상태가 이토록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가족 측에 따르면 처음 사고가 일어난 시간이 오후 6시지만 구급대에 신고한 시간은 오후 6시 32분이다. 다시 말해 당시 코치 등 지도자들이 신고를 늦게 해 뇌를 다친 지현이의 부상을 키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체조 감독이 어머니에게 전화한 시간은 오후 7시 11분이었다. 그로부터 4분 뒤인 7시 15분경, 어머니가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하던 중 의사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아이가 죽는다”며 구두로 수술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이었고 지현이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상태였다.

반면, 사고가 발생한 시간이 ‘6시’라는 가족의 주장과 달리 재단 측은 ‘6시 20분’이라고 맞서고 있다. 재단 측에 따르면 지현 양이 6시 20분에 매트에 머리를 부딪히자 지도자가 그만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같은 동작을 실시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호흡곤란, 구토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이에 감독, 코치 등은 6시 32분경 119에 신고를 했고 6시 47분쯤 포항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고 재단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일부 선수들의 진술서에는 사고가 난 시간이 ‘오후 6시’로 나와 있다. <투데이신문>이 입수한 A선수의 진술서에는 “나는 운동하면서 시계를 보는 습관이 있다. 지현이가 머리를 부딪혀서 다쳤을 때 시계를 보니 오후 6시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B선수의 진술서에도 마찬가지다. B선수는 “내가 런닝머신을 뛰고 있었는데 지현이가 마루에서 기술을 하는 도중 머리를 부딪혀서 시간을 자동적으로 봤다. 그때가 오후 6시 쯤이었다”고 말했다.

지현 양의 아버지 김규 씨는 이 외에도 몇몇 선수로부터 ‘6시가 맞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해당 체육관은 재단소속의 초·중·고 학생들이 모두 같이 쓰는 공용공간이다. 사고 당시 증인들이 많이 있지만 수직계열(상급학교로 연결되는 구조)로 돼 있어 재단 측의 입장과 다른 증언을 할 경우, 선수들이 재단 소속 상급학교에 진학하는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신있는 증언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진술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김 씨는 주장했다.

반면, 재단 측 관계자는 “CCTV를 보면 아래 자막으로 시간이 나와 있다”며 “6시 20분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김 씨는 “거짓이긴 하지만 설령 재단 측 주장대로 6시 20분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감독은 부모에게 7시 11분에 전화를 했다. 결국 사고가 나고 51분이 지난 뒤 연락한 셈이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부모에게 연락하는 게 맞지 않냐”며 “감독의 휴대전화에는 집사람 번호가 항상 저장돼 있는데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의 얼굴도 못 본 체 수술실로 보냈고 죽은 자식을 만나게 됐을 수도 있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 포스코교육재단이 사고선수 가족 측에 공개한 사고당시 CCTV

   
 

원본 영상 없다더니…CCTV영상 조작 논란

사고발생 시간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체조전용체육관 내에 설치된 CCTV밖에 없다. 당시 체육관에는 4대의 CCTV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원본 영상을 볼 수 없었다. 당초 재단 측은 원본영상은 없으며 2분대의 동영상만 있다고 밝혔지만 이후 4분 29초짜리, 6분 49초짜리 등 새로운 편집영상이 계속 등장했다고 가족들은 주장했다.

가족 측에 따르면 사고 장면이 담긴 CCTV를 처음 본 건 작년 10월 경이었다. 지현 양의 어머니는 CCTV를 보기 위해 재단을 방문했지만 재단 측은 원본영상이 없다며 날짜와 시간이 나와 있지 않은 2분 여의 편집된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주일 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는 재단을 다시 찾았지만 보여준 영상은 2분짜리로 전과 같았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시점에서 어머니는 경상북도 교육청 장학사와 함께 재단을 찾아갔다. 당초 원본이 없다며 2분짜리 영상을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4분 29초의 영상이 등장했다. 재생 시간은 늘어났지만 중간에 영상이 갑자기 빨라지는 등 사고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가족 측은 주장했다.

재단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지현 양의 부모는 지난해 5월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재단은 올해 7월 7일, 변론기일을 앞두고 서울중앙법원에 증거영상을 제출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6분 49초짜리 영상이었다. 심지어 기존 CCTV영상에는 없었던 날짜, 시간이 표시된 자막이 나와 있었다.

해당 CCTV를 본 가족들은 ‘조작’임을 확신했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먼저 CCTV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자막과 하단에 날짜와 시간을 표시하는 자막의 색이 달랐다는 점이다. 지현 양 아버지 김 씨에 따르면 보통 CCTV 영상은 자막 색이 통일돼 있는데 해당 영상에는 ‘002’라고 쓰여진 상단 자막이 어두운 회색인 반면, 날짜와 시간을 표시한 자막은 흰색에 가까웠고 크기도 달랐다. 이것만 두고 보면 재단 측에서 기존에 있던 자막을 지우고 자체적으로 제작해 집어넣은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영상 중간(약 6분경)에 갑자기 영상이 10배속으로 빨라지지만 자막에 나와 있는 시간은 평소처럼 정상속도로 표시된다. 세 번째로는 영상을 보면 3분 30초대에서 한 감독이 지현이 곁으로 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모습이 사라진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이 담겨있는 부분을 편집, 삭제하거나 고속으로 재생시켜 처리하는 등 재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편집했다고 가족 측은 주장했다.

김 씨는 이런 점들을 지적하며 “포스코교육재단 측이 영상을 임의대로 편집하고 시간을 입증하기 위해 자막을 마음대로 넣은 것”이라며 “알리바이를 맞추기 위해 거짓된 자료를 만들어서 법원에 제출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영상을 보면 1차 기술 후 다친 지현이에게 ‘쉴 것을 권유했다’는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감독의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 아이 앞에 가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며 “지현이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문제가 심각해보이자 감독이 뒤늦게 다가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상을 살펴봐도 지현이가 1차 충격 후 쓰러진 후 힘들어하면서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고통스러워하지만 영상 속 등장하는 관계자 두 명은 무관심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점도 김 씨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처음에 제공한 짧은 동영상과 이후의 영상들은 재단 내부 보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편집을 했던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편집한 건 아니다. 보고를 위해 비전문가가 원본영상을 파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빨리 감기가 이뤄진 것이지 임의로 빨리 감은 것은 아니다”라며 “원본이 없는 이유는 가족 측이 사건 발생 1년 뒤에 원본 영상을 요구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가족의 주장에 대해 재단 측은 “사고에 신속히 대처했고 의학지식이 없는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씨는 “처음 영상을 복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정보 복원 기술력의 최고 수준인 회사에도 문의해봤지만 CCTV가 한 달 정도에 걸쳐 녹화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했기에 현재 기술로는 복원이나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영상이 나타나는 것은 결국 원본이 있었음에도 공개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편집한 뒤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성금을 다른 용도로 지출?

재단에서 지현 양에게 지급했다는 지원비에 대해서도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포스코 교육재단의 지원내용이 담긴 문서를 살펴보면 ▲치료비(상급병실료, 보호자 식대 등) 620만 원 ▲교통비(하루 2만 원씩, 7개월 간 지급) 330만 원이 있다. 그 외 ▲포항제철서초등학교 학생들 성금 830만 원 ▲체조지도자들 성금(보호자 식대, 보조기구 구입 등) 500만 원 ▲포스코교육재단 봉사모임 ‘소망회’의 성금 100만 원 ▲포항제철중학교 급식비 지원 40만 원 ▲장학금 110만 원이 나와 있었다. 이렇게 총 2500만 원을 가족에게 지급했으며 치료비 중 급여항목은 경상북도학교안전공제회에서 1500만 원을 지원했다고 재단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현 양 아버지 김 씨는 “학교나 일부 모임에서 모금한 성금을 받은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체조지도자들 성금 500만 원은 사고 이후 재단 관계자 여러 명이 한동안 저녁마다 병원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아내와 함께 한 저녁식사 비용이 포함돼 있고 20만 원 상당의 에어매트 구입비용이었다” 금액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착지 사고, 사전에 막을 수 있었나

착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매트나 지도자의 지도만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김 씨는 주장하고 있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지현이는 공중회전을 한 후 뒤로 착지를 했다. 보통 선수들은 착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청색 매트를 깔아놓고 운동한다는 것. 그는 “각종 대회 나가면 선수들이 회전 동작을 할 때 선수가 착지하는 지점에서 코치들이 잡아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술을 할 때) 지도자가 선수를 받쳐주는 게 당연한데 지현이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청색 매트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당시 지현 양이 실시한 기술은 고난이도가 아니었다. 몸을 풀거나 정리 운동하는 동작이라서 (지도자들이)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1차 기술을 실시할 때 지도자가 쉬라고 했음에도 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도자가 방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가족들은 대한체조협회 측에도 불쾌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서울중앙법원에서 대한체조협회 측에 4차례에 걸쳐 지도자의 의무사항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음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김 씨는 “사고가 난 곳이 포스코교육재단이고 대한체조협회장이 포스코건설의 회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한체조협회이) 어찌 보면 모기업을 건드리는 일인데 상처를 줄 수 있는 자료를 쉽게 넘겨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사고 이후 병원에 거의 1년 간 누워있었던 지현 양은 현재 물리치료를 받는 등 회복에 전념하며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왼쪽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 걷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주 넘어져 온 몸에 상처가 많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게다가 중학교 2학년생인 지현이의 지적수준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에 머물러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당시 뇌수술로 인해 30mm정도의 상처가 남아 그 자리에 머리카락이 없다. 또 머리 한쪽이 푹 꺼져있다”며 “사춘기인 지현이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고 있어 하루 빨리 수술을 해주고 싶다”며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는 지현이에게 외모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끝으로 “사고 직후 관계자들이 신속하게 대처했으면 아이의 몸에 장애가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체육관에 방치된 것은 그들의 과실”이라며 “학교 내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피해자 가족 측과 재단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고 이와 관련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현이 사고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재 지현 양이 재단소속의 포항제철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만큼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지현 양의 가족은 포스코교육재단, 개인(코치 등 관계자), 경상북도학교안전공제회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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