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영글어진 채마밭에서 시간을 멈추고 서다

 

대체휴일이 있어 제법 길었던 추석연휴 동안 백운산으로 짧은 산행을 다녀왔다. 미리 계획된 산행은 아니었다. 처음엔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으로 연계산행을 하려했지만 다음날이 추석이라 차례준비로 바쁠 것 같아 백운산만 다녀오기로 했다. 새벽 5시쯤 깨어 집안 청소를 한 뒤 추석차례에 쓰일 제기 등을 씻어 정리해 놓고 함께할 일행이 있는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당역에서 수원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15분정도 지나 의왕 톨게이트에서 하차했다. 도로 밑을 좌로 가로질러 백운산으로 향하는데 입구 마을들이 마치 시골에 온 것처럼 고즈넉하고 인기척이 거의 없다. 흐드러지게 자라난 물풀들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과 징검다리, 가을빛에 영글어진 채마밭을 걷다보니 좀 전에 들렸던 고속도로 소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전혀 다른 세계로 건너온 느낌이다. 아쉬운 듯 남아있는 여름 햇살을 받으며 일행은 백운산 입구로 향했다.

▲ 백운사 입구

백운산 입구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의왕 톨게이트에서 백운산 등산로 초입까지는 대략 40여분이 소요 된다. 등산로 입구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운사가 나온다. 백운산 능선에 있는 백운사(의왕시 왕곡동 산3번지)는 경기도지정 제 36호의 전통사찰로서 고종32년(1895) 청풍 김씨 종중에서 건평20평 규모의 암자를 세운 것이다. 백운사는 원래 현재의 백운사 위치에서 3km정도 올라간 지점에 있었으나 고종 31년(1894) 산불로 소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지어졌다. 그 후 1916년, 1955년, 1971년, 1999년, 네 차례에 걸쳐 증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백운사 입구

백운사를 지나면 바로 등산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백운사에서 정상까지는 1km정도. 가파르게 경사진 나무계단으로 1시간이 넘게 오르려니 제법 힘이 든다. 12시 조금 넘어 백운산 정상에 도착하니 의왕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숲속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엔 도토리인줄 알았는데 그 소리가 조금은 묵직하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밤 떨어지는 소리다. 고소한 맛이 일품인 산밤이다. 밤 줍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 20여분이 금방 지나간다. 밤을 담은 비닐봉지가 제법 묵직하다.

▲ 백운산 정상

백운산은 해발 567m로 의왕시와 안양시 쪽에서 오르기 쉬운 산이다. 남서쪽으로는 광교산이, 북쪽으로는 바라산이 능선 상에 이웃하고 있어 연결 산행도 가능한 산이다. 주능선길은 산행하기에 좋으며 소나무가 많다.

백운저수지에서 백운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임도(林道)를 이용하여 고분재 남릉으로 오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분재로 직접 오르는 길이며, 세 번째는 바라산재로 오른 후 바라산과 백운산을 연결하는 코스다. 특히 첫 번째 코스는 임도 중간에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 임도를 끝까지 걷지 않고 정상에 올라도 되지만, 마치 깊은 산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길을 한가로이 걸으며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하산길은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산으로 이동한 후 고분재 갈림길에서 속말로 내려가기로 하였는데 이동거리는 대략 2.9km가 소요된다. 이동 중에 숲속을 살펴보니 참나무가 대부분이고, 고분재 갈림길 가까이 오니 머래 덩굴도 제법 눈에 띈다.

▲ 백운사로 향하는 등산로

백운호수 가까이에 내려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는데 차가운 계곡물 속 물고기가 발을 간질여서 자꾸 발을 빼게 된다. 전에 터키를 여행할 때 ‘캉갈온천’에서 체험한 닥터피쉬와 같은 느낌이다.

학의 2리 백운저수지로 내려오면 송어횟집과 찻집 등이 줄지어있다. 백운산에서 바라산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백운호수가 있다. 넓이가 상당한 백운호수(의왕시 학의동)는 1953년에 준공한 인공 호수이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동쪽의 청계산과 남동쪽의 백운산, 그리고 서쪽의 모락산이 만나는 지점에 약 25만평의 평지가 있는데 그 중 11만평이 백운호수이다. 이 호수는 원래 농업용수의 원활한 공급을 목적으로 조성 되었으나 그 후 주변의 수려한 경관, 맑은 공기 그리고 잘 정돈된 대형주차장과 호수순환 도로로 인해 의왕시민은 물론 인근 수도권 시민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라이브 카페, 수상스키, 각종전문 요리를 즐길 수 있으며, 백운호수를 따라 개설된 호수순환도로는 데이트코스로 손색이 없다. 특히 백운호수의 자랑인 라이브 카페는 각종 커피부터 희귀한 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색다른 차 맛을 느낄 수 있으며, 향긋한 차 향기와 어우러진 유명가수들의 라이브 음악은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백운호수 인근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올 기미가 보이 않는다.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의왕 톨게이트로 향했다. 의왕 톨게이트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사당으로 향하면서 백운산을 바라보니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곳처럼 느껴졌다. 마을도 조용하고 등산객도 적어서 그런지 정적인 느낌이다. 백운산을 등산하는데 있어서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성이 나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것이 백운산의 장점일수도 있을 것이다.

의왕시에서는 올해 백운호수를 중심으로 가을 축제를 개최하고 도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백운호수와 백운산을 방문하기에는 아직 불편한 점이 많다. 대중교통은 4호선 인덕원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배차 간격이 20~30분이다. 게다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나 많은 정류장을 거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의왕시는 백운호수와 백운산을 힐링명소,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서울 및 인근 수도권과의 연계교통망 증설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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