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순천에는 국립 순천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순천엔 이 학교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어요. 저는 지역구 의원이 아니지만, 이 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예. 의원님이 ‘순천대를 빛낸 동문’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 본 적 있어요.”

“이거 문제 아닌가요?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오고 거기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 공천을 받아 내려옵니다. 순천이 고향이라고 해도 젊은 시절을 외지에서 보낸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학벌주의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명문대 출신이면 막연히 ‘잘하겠지’, ‘예산 잘 따오겠지’하고 생각을 해요. 이러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죠. 그 지역을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얼마 전 새정치연합의 김광진 의원과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김의원은 ‘지역정치’를 주제로 말을 했지만,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학벌주의’가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정치 뿐 아니라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학벌주의는 우리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지 오래되었다. 능력이 떨어지고, 인품이 형편없어도 명문대 출신이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특권을 누린다. 기업에서는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고, 지방대 출신한테는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서류전형에서 모조리 떨어뜨려 놓고는 ‘실력이 모자라서 뽑지 않았다’며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이러니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입시에 목을 맨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이나 이유를 따져보는 일은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고등학교 성적과 단 한차례의 시험만으로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 아닐까 한다. 입시 제도를 근본부터 바꿔야 하겠고,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간에 학교의 이름보다는 사람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고 키워나가야 하겠다. 결국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셈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공허할 뿐이다. ‘창의력 있는 인재육성’, ‘인성교육 강화’, ‘모두가 행복한 학교’, ‘차별 없는 사회’, 그야말로 말은 잘한다.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에 맞춰서 이루어지는 이런 상황에선 창의력 있는 인재는 나오기 어렵다. 인성교육을 할 겨를이 없다. 성적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학교는 불행한 학교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엔 아주 심한 차별이 있다.

더 절망적인 건 이런 학벌주의가 어린 학생들한테도 이미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대를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로 부르며 비하하고, 서울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를 같은 학교로 인정해 주지 않으며, 같은 학교 안에서도 수시합격자와 정시합격자 간에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득점으로 합격한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에 대하여 ‘그 성적으로 나와 같은 학교에 왔다는 게 은근히 화가 난다’고 말한다. 치기어린 생각이라고 덮어주기엔 그 질이 너무 낮은 것 같다.

학생들이 저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이다. 아이를 그토록 사랑한다면서 아홉시 등교를 반대하는 돼지 같은 학부모들이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를 차지해도 ‘내 아이만 죽지 않으면 괜찮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 한다.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며 시간만 흘려보낸다. 그래놓고는 ‘살아보니 대학 출신이 전부는 아니더라’며 무책임한 소리를 내 뱉는다. 아이들이 ‘살아보는’ 가운데 반드시 입게 될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조선의 학자 정약용(丁若鏞)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인재를 모아 한 결 같이 모두 과거(科擧)라는 절구통에 집어넣고는 마구 빻고 때려서 이들이 부스러지거나 문드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인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 11, 「오학론4(五學論四)」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체념할 것인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입시제도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들이 변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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