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을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 유서 남겨
성추행 사실 알리자 정규직 전환 무산
“청년, 여성, 비정규직의 꿈도 산산이 깨뜨렸다”

【투데이신문 이수형 기자】중소기업중앙회의 20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 이유는 수차례에 걸친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 사측에 알리자 정규직 전환 직전에 해고가 이뤄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으로 일하던 권모(25·여)씨는 지난 9월 26일 퇴직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살했다.

지난 2012년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권씨는 중소기업 CEO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권씨는 2년 동안 2~6개월 단위로 총 7차례에 걸쳐 이른바 ‘쪼개기 계약’ 형식으로 일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뛰어난 실력 덕에 회사를 퇴사하려고 할 때마다 상사들이 정규직 전환과 무기 계약직 전환을 약속하며 붙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씨는 지난 4~5월까지 같은 부서의 직장상사인 고 모 부장을 통해 사업운영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구두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권씨가 남긴 유서<사진제공_심상정 의원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성추행, 성희롱과 관련된 내용을 고 부장에게 전달하면서 부터다.

유가족 등에 따르면, 권씨는 SB-CEO 스쿨에서 수강생이었던 기업체 대표와 중소기업연구원 박사 등에 의해 음주강요, 노래방 동행요구, 성희롱을 당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원우(SB-CEO 스쿨 참가자)’들의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과 성추행 및 스토킹을 당했다.

이러한 사실을 직속상사인 성 모 차장에게 여러 차례 알렸지만 시정되지 않자 권씨는 결국 6월 29일 고 부장에게 이메일로 지난 2년 동안 SB-CEO 스쿨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성희롱·성추행 및 모 기업대표의 지속적인 성희롱과 스토킹 문제를 상세하게 기술해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고 부장의 성희롱 발언도 문제 삼았다.

이후 권씨는 성희롱 등이 근절되고 정규직 전환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기다렸지만, 사측은 지난 8월말 권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권씨는 “24개월간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현재 유족들의 고발에 따라 관련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한 상태다.

   
▲ 권씨가 중소기업중앙회 임직원들과 통화한 내역 <자료제공_심상정 의원실 제공>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중소기업중앙회가 권씨의 성추행·성희롱 사실이 번져나갈 것을 우려해 이미 예정되어 있던 정규직 전환 약속을 깨뜨렸다”며 “굴지의 경제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청년, 여성, 비정규직의 꿈도 산산이 깨뜨렸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법적 책임을 묻는 문제에 앞서 이 문제에 대한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적이 없다”면서 “성희롱 여부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 중에 있어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중앙회가 아닌 교육기관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해당 직원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바 없고 계약이 만기돼 나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성희롱 및 성추행이 있었다는 주장은 경찰 조사가 끝나면 다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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