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찬 칼럼니스트
▸한국의정발전연구소 대표
▸서울IBC홀딩스㈜ 대표이사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대한민국 건국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한국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온갖 비난과 부정적인 평가가 시대적인 대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제는 어엿한 세계10위권 안팎의 무역강국이자 준선진국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정희 시대에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개인 혹은 단체나 그 가족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반체제 성향의 인사들과 최근 한국 내에서 강력한 체제비판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보계열의 열성인사들 빼고는 대부분의 한국민들은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의 성공적인 결과와 한국경제에의 기여에 대해 대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그 시대 조국근대화의 기수를 자처하며 일했던 60~70대 산업역군들은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위대한 국가건설을 이끈 국가최고지도자였다는 평가와 함께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2013년 박근혜정부의 탄생은 바로 박정희 시대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우리사회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 사례이다.

과거 60~70년대 경제성장의 정도가 한국보다 앞서 있던 필리핀이나, 태국,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이제는 경제개발의 둔화와 정체로 중진국 혹은 하류국으로 전락해버린 것과는 달리 한국은 분명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경제시스템과 과거의 위상과는 다른 분명 성공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 중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 시장에 당당히 진출 최고의 제품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브랜드들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의 뿌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고속경제성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 기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과 집중전략을 통해 밀어붙인 이른바 ‘외연적 압축 경제성장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는 데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이의가 없다.

필자는 우리 한국인들이 너무도 과거를 쉽게 잊는 경향이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물론 가슴 아픈 과거야 누구든 기억하고 싶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잊혀져야 하겠지만, 자랑스러운 과거는 후손에게 길이길이 물려 줄 문화적 정신적 유산이요 분명 자랑거리임에도 불구 한 시대의 공과를 너무도 쉽게 잊으려한다.

과거 일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배치된다고 전체를 매도하거나 평가절하하고 폄하하는 행위는 역사를 바라보는 공정한 자세가 아니다.

세상사 모두 ‘음’과 ‘양’이 공존하듯이 ‘공’이 있다면 ‘과’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공’이 많다면 ‘과’가 있다하더라도 반성하고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지 ‘과’를 핑계로 ‘공’ 전체를 매도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날 중국인들의 지혜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중국도 공산화혁명 성공 이후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르면서 공산화의 어두운 점을 경험한 나라이다.

1949년 모택동에 의한 중국공산 혁명이 성공하고 난 이후 장기집권을 하며 온갖 부정과 부패가 싹트게 되었다.

중국의 그 유명한 ‘문화대혁명’은 바로 중국공산화이후 새로운 지배집단으로 군림한 공산당이 지배하면서 중국내부의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이 ‘전홍대립(專紅對立)’(혁명 후 국가경영을 맡게된 테크노크라트 등 전문가집단과 혁명을 성공시킨 혁명세대와의 갈등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형태의 정치파워게임으로 붉어져 터져 나온 정치적인 대 숙청사건이었다.

결국 세월이 흐르고 ‘紅’을 대표하던 모택동이 사망하자 ‘專’을 대표하는 후임권력에 의해 모택동시절이 평가되고 단죄됐다. 강청을 비롯 4인방에 대한 숙청작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고 ‘흑묘백묘론’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자 등소평에 의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불구 실용주의 개방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운동’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에 해당한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숙청되었고 중국의 발전은 커다란 시련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후임권력은 ‘공칠과삼(功七過三)’ 이라는 지혜로운 노선을 채택해 과거로부터의 절대적인 단절을 선언하지 않고 과거의 공과를 균형있게 평가하며 국가적인 에너지를 경제성장에 결집시켰다.

중국인의 놀라운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권만 바뀌면 전 정권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자기가 무언가를 해보려는 욕심….

이러한 욕심이 화를 부르고 결국 국가적으로는 많은 낭비와 비효율을 가져왔다. 우리의 가까운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아쉬운 과거도 우리의 역사의 일부이다.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리석음보다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역사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늘 그 이면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상황논리가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을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고 단죄하려고 하다 보면 과거에 행하여졌던 모든 정책과 전략은 모조리 잘못된 것이 되고 일소해야할 구습처럼 느껴진다.

전 인류의 역사의 과정 과정을 살펴보건대 과거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디 있겠는가?

힘들고 고달팠지만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과거조차 그것이 박정희 정권시절의 업적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지워버리려는 일부 인사들의 우리 현대사에 대한 과도한 경직성과 과오만을 침소봉대하거나 부각시켜는 등 객관적 평가에 대한 인색함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국인들 스스로 과거를 부정하면 아무도 우리의 과거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를 폄하하고 지우려는 그 어떠한 기도도 현명하지 않으며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 스스로 폄하하고 평가절하 하곤하는 한국경제성장의 성공모델은 정작 남의 나라 특히 제3세계 국가와 개발도상국에서는 앞다투어 자국이 모범적으로 따라야할 성공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있지않은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스스로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 상대의 장점을 여간해선 인정하려 들지 않고, 상대를 폄하하려는 냉소적, 자학적 경향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동안 외침의 역사를 경험하며 때로는 저항민족주의의 형태로 배타성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자학적인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갖기도 했다.

많은 경우 한국인들은 개별적으로 매우 똑똑하며,우수하다. 각계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한국인들의 수가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부지불식간 우리들 곁에는 우리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폄하하는 자학적 성향이 깊숙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인들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일제 36년이라는 강점기를 거치면서 타율에 의해 형성된 것일 가능성이 많다.

일제는 한국인들의 자주적인 성향을 짓밟고, 한국인들을 열등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치졸한 민족말살정책 작태를 벌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학사관’이다.

한국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열등의식의 고취가 바로 ‘자학사관’의 핵심이다. 이러한 ‘자학사관’에 의해 지난 조선 600년간 한국인들은 당파싸움만하다가 나라를 잃은 멍청한 민족으로 자기매김 되었다.

‘엽전근성’이라는 말 또한 한국인들을 폄하하는 표현이었다.

‘엽전근성’을 가진 민족이기에 힘으로 억누르고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등 한민족의 민족적 자긍심을 짓밟는 표현들이 부지불식간 우리들의 의식구조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부 정치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자유의 메신저요, 민주투사로 부각시켜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없는 나라,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도로 전락한 종의 나라로 스스로를 폄하하고 저항민족주의를 부추키기도 했었다.

그것이 누구이든 현 권위에 대한 저항이 곧 선이며, 권위를 인정하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과연 역사속에서 이들은 진정 선의 대리인이었을까?

우리 모두 그것이 자신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선동적 구호였으며, 결국 그 자리에 앉더니 그 놈도 그 놈이거나 한술 더 뜬 놈들이었다는 점을 알게됐다.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세력의 뒷모습은 정작 그들이 비판하는 현존 세력보다 훨씬 더 타락한 경우가 적질 않았고 상대에 대해서는 지극히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일탈에 대해서는 지극히 너그럽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그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국가나 제도 또한 완벽하지 않다. 이처럼 정치에서는 완벽하지 않은 것을 두고 악이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느 틈엔가 우리는 자신의 모든 행위는 선이며 타인의 그것은 악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의 노예들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 시대는 악이며 이에 저항하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선이라는 절대무오류의 논리 같은 것 말이다.

박정희 시대 또한 역사 속에서 분명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질 못했다.

조국 근대화와 민주주의 발전은 사실 동전의 앞과 뒤와 같은 이야기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에 기초하지 않은 민주주의란 사실 가능하지도 않으며 무의미한 공론으로 치부하며 우선 국가적인 절대빈곤상황을 탈출하는 데 전력을 집중한 지도자였다.

만민이 가난으로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경쟁체제를 선택해야 했고, 이러한 경쟁체제는 늘상 음양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애당초 ‘사람’이라는 자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36년간의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일본의 전쟁보상금성격의 자금을 기초로 기적과도 같이 포항제철을 일으켜 세웠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당장은 서민들의 삶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인기없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을 밀어부치고, 농촌을 현대화하고 소득증대를 꾀함으로써 잘사는 나라의 초석을 닦은 산업시대의 국가지도자와 역군들에게 우리는 잘한 점은 인정해주고 격려하고 감사하며 박수는 쳐주지 못할 망정 그들의 모든 것을 터부시하고 수구세력이라고 몰아세우며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한국과 같이 근대화와 민주화에 동시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흔치 않음은 경이로운 일인 것이다.

한국인들의 소득격차 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각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더라도 앞으로 시정해나가야 할 사항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곧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자체를 부인해야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물론 일부 분배 지상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한국의 고속경제성장의 과실이 비교적 골고루 중산층과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개선해야할 과제다.

빈곤이 대물림되고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져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박탈감은 분명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엄연한 현실이 되었고 우리를 짓누르는 현실이다.

눈을 들어 주변을 돌아보라.

현재 초고속성장을 거듭하는 중국 또한 노동계급의 희생아래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인 부의 편차일 뿐, 중국 전체의 국부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중국인민을 탈출시키고 있지 않는가?

평등을 그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조차도 그 구조적 불평등이 불가피한데 하물며 시장경제와 무한경쟁을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체제하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가장 어리석은 행위는 바로 현재의 관점에서 고생스럽게 이룬 터전을 부정하고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과 지나온 과거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이다.

남들은 모두 부러워하는 결과를 놓고 왜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하며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가 말이다.

한국이 그나마 이만큼이나마 먹고 살게 된 것은 분명 산업시대의 강력한 지도자와 그 시대를 함께 살며 열심히 달려온 국민들의 땀방울의 결과일 터인데 그 사실을 왜 부정하고 폄하하려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를 부정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그들이라면 과연 이 짧은 기간 동안 이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묻지 아니할 수 없다. 

지나간 역사는 스스로 존중하고 이를 통해 배우려고 할 때 의미있게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무조건 옛것은 다 잘못되었고 내가 말하고 행동하고 평가하는 것만이 진리요 옳다는 독선은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정과 진행과정을 모두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면 자연 대한민국은 부정돼야할 국체이며 역사일 뿐이다.

이들은 북한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침묵하려고만 한다.

그러한 역사적 균형감각을 잃은 채 오늘의 우리를 바라보면 죄다 타도의 대상이고 잡아 죽여야 할 반동들이다.

우리는 늘 역사 속에 살아가면서 상황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지금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단죄하려 한다면 성한 역사가 어디 있겠는가.

모자라도, 부끄러워도 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요 우리의 삶과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부둥켜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탄생을 부정적 시각에서 보고 저주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시각과 행동은 그 균형점을 잃은 그릇된 사고인 것이다.

인간사회란 유토피아가 아니며 선만 존재하는 것도 악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뒤죽박죽 비빔밥 같은 것이다. 

다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거에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역사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요 책무인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뒤집고 바로잡는 것이 그리 말처럼 쉽질 않은 것이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그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이미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와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최대한 존중해주되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남과 북이 서로를 부정만 한다면 결론은 딱하나 둘 중 하나가 없어지는 수밖에 무슨 다른 길이 있겠는가?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저 공생하는 길 뿐이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며 말이다.

우리들 내부에서도 여와 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서로에게 못할 소리도 다 지껄이며 말이다. 결국 얻은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이 곧 상대를 부정해야할 이유가 되질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가지도자의 사심없는 역량과 국가를 구성하는 성원들의 일치단결로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 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강한 신념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칠 때 불가능해 보이던 많은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국가의 발전과 도약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지도자의 강한 영도력과 국민적 호응이 하나가 될 때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는 분명 우리 한민족 역사 속에서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부국강병을 향한 열정과 노력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위대한 한국인의 신화를 창조한 자랑스러운 시기였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잠재된 민족의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응원을 위해 서울시청 앞 과장을 가득 매운 저 붉은 악마의 함성을 보라. 지칠 줄 모르는 민족의 에너지를 느껴지 않았었던가.

모름지기 제대로된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리라. 전쟁 없는 나라에서 가족들과 함박 웃으며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 이 지구상 모든 나라의 국민들의 바람이며 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이리라. 

국가지도자에게 신의 속성인 ‘절대 무오류성’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한국이 이나마 세계의 경제대국의 대열에 설 수 있고, 언론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웰빙이 사회의 트렌드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름지기 산업시대를 거쳐 민주화시대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흘린 땀방울과 그 시대를 살아온 모두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의 산물임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않된다.

‘과’보다는 ‘공’이 훨씬 많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도의 ‘외연적 압축경제성장전략’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고 그의 부정적 이미지만을 부각시키는 행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정치선동적 수사로서는 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자신 스스로 한국인의 위대한 가능성을 욕보이는 부끄러운 자기부정적 모순일 뿐이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를 살아온 그리고 모진 시련을 견디어낸 한국인들의 위대한 도전과 신화적 성공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정신과 역사 속에 기억되어져야 할 유산이며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지혜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다음호에는 전두환 시대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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