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를 찾아가는 길> 저자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송혁기 교수 ⓒ투데이신문

혜환 이용휴,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해 아쉬워
주석 뺀 이유는… ‘독서’에 방해될 수 있다고 생각  
이용휴의 글, 죽비처럼 사람들 깨우고 놀라게 해
송혁기 교수 “고전과 현대 독자 이어주는 가교 역할하고파”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흔히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장가하면 ‘연암 박지원’을 떠올린다. 그런데 연암과 쌍벽을 이룬 문단의 거목이 있다. 바로 혜환 이용휴다. 혜환 이용휴는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작가로 통한다.

이용휴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재야문사’로 살았다. 영조 말년, 많은 문인들이 재야문사에 불과한 혜환 이용휴에게 가르침을 받고 비평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만큼 이용휴의 글은 당대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깊어가는 가을, 우리 고전의 참 맛을 드러낸 혜환 이용휴의 글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 바로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혜환 이용휴의 산문 367편 중에서 46편을 새로 번역하고 평설을 붙인 것이다. 한양대 박동욱 교수와 고려대 송혁기 교수가 3년 동안 공들여 번역하고 품격 있는 필치로 평설을 썼다.

2010년 9월, 두 사람은 일평 조남권 선생이 계신 시회(詩會)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혜환 이용휴의 문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은 박동욱 교수와 17세기 말 18세기 초 산문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송혁기 교수, 이 두 학자는 조선 후기 남인(南人) 문단에 대한 조명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내게 된다.

혜환 이용휴의 글을 본 독자들이 고전의 흥미로움과 인생의 ‘참 됨’을 깨닫길 바란다는 송 교수. 그는 해제에서 “이용휴는 작품을 통해 남들의 생각, 이미 주어진 관념들을 철저히 해체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갈을 끊임없이 던진다”고 말했다. 냉혹한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이번 인터뷰는 특별히 한국한시를 전공한 <삼국지 인물전>의 저자 김재욱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3일 고려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김재욱 작가와 함께 송혁기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던, 김재욱 작가(김)와 송혁기 교수(송)의 훈훈한 대담을 아래에 담았다.

◆ 혜환 이용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많이 남겨

김: 사실 혜환 이용휴는 일반 대중에게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용휴의 글을 번역하고 평설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른 유명한 작가도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송: 우리는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실학자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고 대표작인 <열하일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한 <열하일기>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회 비판이 손에 잡히게 들어있다. 반면, 혜환 이용휴는 사회 비판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목을 덜 받은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대개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를 알고 있는 편이다. 이용휴는 교과서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던 작가다. 그의 작품이 대학 강단이나 전공자들 내에서만 공유가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고 유명함에도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한 작가 중 하나였기에 다루고 싶었다.

김: 그렇다면 혜환 이용휴가 어떤 분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송: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성호 이익에 대해서는 많이 아시는 것 같다. 실학자의 대표적인 분이었던 성호 이익의 조카가 바로 혜환 이용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성호 이익의 형 이잠이 노론에 대한 상소문을 올린 것이 잘못돼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이잠으로 인해 그의 후손들이 벼슬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차단된 것이다. 성호 이익의 조카들은 모두 뛰어난 학자였지만 벼슬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고 이에 이용휴는 문학의 길을 걸었다.

당시 산문 작가들은 주로 격식에 딱 들어맞는 글들을 썼는데 이용휴는 문학에서 새로움을 추구했다. 시에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산문에서도 고문의 격식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파괴하며 문학의 새로움을 추구했다.

김: 책에서 혜환 이용휴를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었다는 말씀인가.

송: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뤘다는 것은 후대의 평가만이 아니다. 당시 혜환의 제자 중에 이언진이라는 천재 시인이 있었다. 이언진은 역관(양반이 아닌 중인계층, 통역가)으로 이용휴에게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박지원에게도 인정받고자 시를 보낸다. 박지원은 이언진이 이용휴 제자이며 뛰어난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을 익히 들었던 터였다. 그는 이언진의 시를 폄하하고 ‘새로운 것만 추구했지 격이 없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평을 낸다. 이 평을 들은 이언진은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해 아주 힘들어 하다가 얼마 후 죽는다. 물론 연암의 평 자체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천재가 그렇듯, 이언진은 병약하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언진의 사망 후 연암은 그를 위해 멋들어진 전을 써준다. 이언진을 내심 뛰어난 작가로 인정했던 셈이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당시 재능이 있었지만 벼슬로 진출하지 못했던 작가들이 혜환과 연암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 사이에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봐도 연암과 혜환이 쌍벽을 이뤘다는 것은 후대에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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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주석, 과감히 빼다

김: 책이 발행된 후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우리 아버지께서 이 책을 두 번 읽었다고 하시더라. (웃음) 이 책이 선물하기 좋게 나왔다. 책을 받으신 분들은 선물을 받았으니 좋다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가장 보람있는 것은 혜환 이용휴를 몰랐던 분들이 ‘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 읽어보니 좋더라’라는 반응이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고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 게 좋다는 반응이 참 의미있게 다가온다.

일부 전공자들은 주석 없이 책을 쓴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솔직히 한문을 주석 없이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완전히 없이 하려고 했는데 일부 평설에 주석을 달았다. 하지만 문장 내에 주석은 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주석은 전공자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지식이 없으면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느낌을 갖게 할까봐 과감하게 주석을 뺐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전문가들이 그걸 알아줘서 고맙고 좋았다.

김: 죄송하다. 저는 전공자인데도 그 부분에 주목하지 못했다. (웃음) 책 제목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시중에 나오는 구도기, 수필 종류의 글을 수록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책을 보면 아님을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제목을 ‘나를 찾아가는 길’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송: 일단 내가 보기에는 책이 깔끔하고 예쁘게 나온 것 같다. (웃음) 책이 나온 후 다시 보니 제목이 아주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동저자인 박동욱 교수를 비롯해 편집자 등도 그렇게 생각했다. 제목을 정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많은 후보 중 ‘나를 찾아가는 길’로 정하게 됐다. 다른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다.

김: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 (웃음)

송: 제목을 달기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을 기획한 의도는 이용휴의 산문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학술적인 주석이나 배경 설명을 하지 않고 번역문만으로도 정말 맛있게 읽힐 수 있는 글을 뽑는 게 우선이었다. 선별기준이 이렇다 보니 하나의 주제로 모이지가 않았다.

책에 보면 ‘환아잠(還我箴)’이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서 ‘환아(還我)’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책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글로 봤다. 그리고 제목을 ‘나에게 돌아가기’, ‘나에게 찾아가는 것’ 등으로 변형시켰다. ‘환아잠(還我箴)’이 이용휴의 산문에서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 내면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허위의식을 깨트리고, 온전한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참된 나가 어디 있는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그냥 일종의 관습적인 허위인가 혹은 자신의 존재에서 나오는 것인가’ 등에 대한 문제를 깊이 들어가 짤막한 경구 같은 얘기를 많이 내놓은 것이 혜환 산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 부분을 잘 살려서 제목을 달았다.

김: 이용휴의 산문 작품은 모두 367편인데 책에 46편을 수록하셨다. 결국 많은 작품 중에서 주석이나 자세한 설명 없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가를 고려해서 실었다고 생각해도 되는지

송: 그렇다. 맞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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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환 이용휴, 발상의 새로움 추구해

김: 책을 보면 ‘이용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생각은 작품에 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남다른 생각을 던짐으로써 독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했다’고 나와 있다. 이용휴가 격식을 파괴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송: 예를 들어 이용휴가 죽음에 대해 다룰 경우, 보통 죽음을 이야기할 때 통상적으로 드는 구절을 쓰지 않고 일부러 비틀어서 얘기했다. 발상의 새로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는 익숙한 것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얘기한다. 형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람들이 늘 봤던 것과는 다르게 낯설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깨트렸다. 어떠한 충격을 주면서 참된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또 새로운 생각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썼다. 절에서 조는 수행자를 깨우는 ‘죽비’는 소리는 무지 크지만 아프지 않다. 이용휴의 글은 이 ‘죽비’처럼 사람들을 깨우고 놀라게 했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균열을 준 것이다. 더불어 이용휴 글의 특징 중 하나는 ‘이거다’라고 결론을 내기 보다는 ‘너 이렇게 생각해왔지? 근데 그게 정말 그럴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 이용휴의 비평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고 하셨다. 이를 볼 때 명성이 높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 유력한 집안 문사들까지도 이용휴를 찾아왔다.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문장가, 시인이었다. 시인이나 문장가는 독창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왔다. 미뤄 짐작하건대 고리타분하지 않은 새로운 문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문화…. 이런 것들을 원했던 사람들이 몰린 것 같다.

김: 이용휴의 글에는 가장, 동네의 선배, 작가, 사회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이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이용휴가 정말 되고 싶었던 ‘나’는 어떤 사람이고 교수님이 독자에게 권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송: 그것은 책을 읽어 보시면 안다. 회피성 발언인가? (웃음) 이용휴가 어떠한 ‘나’를 추구했고 어떤 삶을 권하고 싶었는지는 책을 통해 하나씩 차근차근 발견해나가셨으면 한다.

김: 준비한 질문은 아니지만 묻고 싶은 게 있다. 교수님도 이용휴처럼 단정짓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송: 이용휴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내가 답을 내리면 그건 좋은 평설은 아닌 것 같아 그랬다. (웃음)

김: 반면 공동저자인 박동욱 교수님의 경우는 평설자 본인의 생각을 가감 없이 쓰신 것 같다.

송: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드릴 필요가 있을 듯하다. 원래 박동욱 교수가 혜환 이용휴의 모든 글을 다 번역했다. 자료를 찾고 번역하는 과정은 박 교수가 다 하다시피 했고 이용휴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혜환 이용휴’의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박 교수와 나는 일반 독자들에게 이용휴 글을 소개하고자 의기투합해 3년 동안 준비했다. 그 과정은 참으로 즐거웠다. 2주에 한 번 만나서 한 편씩 번역하고 평설을 달았으며 내용을 고치기도 했다.

한 후배는 ‘평설을 읽고 난 후 마지막에 ‘송(송혁기)’인지, ‘박(박동욱)’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 누군지 예측하며 읽다가 누가 썼는지를 나타내는 낙관을 보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김: 맞다. 그건 나도 공감한다. 내 친구도 이 책을 봤는데 두 평설자의 멘트와 얘기하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했다. 이용휴 글도 그대로 의미가 있고 다른 스타일의 평설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

송: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웃음)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김: 이 책의 공동저자인 박동욱 교수님과는 동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이 한 작가의 글을 번역하고 평설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것도 같다. 두 분이 함께 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송: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서로 합의가 안 되는 부분에서 빼는 작업은 했지만 서로가 쓴 것을 고치지는 않았다. 의견충돌은 없었다. 정말이다. (웃음) 박 교수가 전체를 번역한 것을 토대로 작업했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 어려운 한문투, 고어투의 표현을 바꾸는 등 수정작업만 했다.

사실 내가 1년 동안 연구년으로 미국에 가 있었는데 그 동안 이 책이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함께 2년 넘게 같이 작업하다가 마무리는 미국에서 한 것이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작업을 끝마쳤는데 미국에서 영상통화를 한 건 박 교수가 유일하다. (웃음)

◆ 고전 번역, 보물상자 여는 일과 같아

김: <나를 찾아가는 길>.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송: 지금까지 논문과 같은 전공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글만 썼다. 논문은 전공자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지 않나. 내가 인문학, 한문학을 하는 전공자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데 나는 한문을 통해 이 시대와 소통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그 첫 걸음이 되는 셈이다. 지금도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고전을 잘 가공해 고전과 현대 독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고전이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출발로서 의미가 있다.

김: 다른 분야의 공부에서 느낄 수 없는 한문학만의 매력, 무엇이라고 보시나

송: 내가 학부 1학년 때부터 석사, 박사 과정까지 지도해주신 분이 대산 이동환 교수님이다. 그 분은 얼마 전까지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을 맡으셨는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고전을 번역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전 번역은 보물상자를 여는 작업입니다. 상자를 열쇠로 열면 보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문은 번역하지 않으면 심하게 말해 종이조각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것이 번역되면 훌륭한 글이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님의 말씀처럼 한문학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사실 한문학이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학문은 아니다.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려는 학생은 있지만 대학생들에겐 아닌 것 같다. 나는 학생들한테 지금 시대에 한문으로 된 문장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독특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문은 읽을 수 없는 암호와 같은데 이를 풀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특별하고 전문적인 것이다.

직업으로서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남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을 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우리가 번역하고 연구해야 할 자료 중에서 실제로 번역되고 연구되는 것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사실 연암 박지원이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연암의 글이 완역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연암 박지원이 이러한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당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많이 묻혀있겠나.

김: <나를 찾아가는 길>은 ‘대중 교양서’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학계는 보수적이고 교수가 연구 외에 해야 할 일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학자가 대중서를 쓰는 일’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대중서를 집필하셨다. 이를 학계에 대한 소극적인 반감의 표시로 여겨도 되겠는가. 이 부분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다.

송: 일단 학계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다. 이 책은 내게 논문 외에 처음으로 쓰는 글이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이 아주 가벼운 대중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연구했던 것들을 동시대의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의 일환으로 책을 썼다.

어떤 분들은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책을 내는 것 까지는 못한다. 내 연구하기도 바쁘다’라고 한다. 나는 이런 점을 존중할 수 있다. 학자라면 그렇게 해야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이거나 대학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이를 살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 서로가 비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까지는 분업이 안 된 상태에서 학자들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는 병폐가 있었다. 또 “학계에서 다 아는 건데 너만 아는 것처럼 책을 쓰냐”라고 하거나 “써봤자 읽는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쓰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존중하고 상보적인 관계가 유지됐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이런 작업을 더 하고 싶다. 물론 공부를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웃음) 여력이 닿는 한 기초적인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

   
▲ 송혁기 교수  ⓒ투데이신문

◆ 인문학, ‘그냥 놔둬야 한다’

김: 송 교수님 말씀에서 한문학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조금 무거운 질문을 드리겠다. 아시다시피 ‘인문학의 위기다’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됐다. 여전히 그 위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인문학이 위기에 처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송: 인문학은 늘 위기였다. 위기에 처하지 않는 인문학이라면 그건 인문학이 아니다. 인문학은 지금 있는 체제와 사회의 기존 방식에 대해 문제를 던지는 학문이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든 인문학이 그 시대와 불화(不和)하지 않는다면, 그 시대와 행복하게 결합한다면 그건 인문학이 아닌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에는 참 다양한 갈래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물신주의, 자본과 이익이 지상과제로 생각되는 세상이 문제라고 본다. 무엇보다 인문학에 ‘너희도 여기에 맞는 아웃풋(결과물)을 내 놓아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예전에는 어렵게 살면서도 훌륭한 저서를 몇 권 쓰거나, 신문 칼럼 몇 개 쓰는 것으로 시대적 소임을 다한다거나 그런 순수한 의미에서의 인문학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예전에는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고 해야 될 사람들이 순수한 인문학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 정부나 대학이 만들어놓은 여러 평가 시스템 속에서 자기를 평가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위기인 것이다.

김: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까.

송: 정책적인 대안을 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무책임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은 ‘놔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버려둬야 인문학일 수 있다. 인문학을 지원하겠다고 정부가 나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지원을 하려면 정말 우수한 인문학자들에게 조건을 달지 않아야 한다. 이건 인문학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노벨상’을 부르짖지만 학자의 역량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믿고 투자했을 때 100개 투자한 것 중 1~2개가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공산품 만들듯이 학자를 다루는 풍토라면 인문학이 아니라 어느 분야이든 결국 단기간에 목표를 채우는 성과들만 나오게 된다. 모든 분야를 국가가 주도하면서 단기성과를 내도록 채찍질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큰 학자가 나올 수 없다. 그야말로 무늬만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김: 책도 감동이 있었지만 책과 관계없이 저도 이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의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끝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송: 이 책은 특별히 순서를 따라 읽지 않아도 된다. 또 글 한 편의 길이가 짧아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이 책을 곁에 두고 오래 보셨으면 한다. 혜환의 글은 오래 두고 읽을수록 읽는 이에게 매번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한번 쭉 읽고 덮어놓는 게 아닌 가끔씩 펼쳐볼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수많은 성인이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
나는 나에게 돌아가기를 구하리라.

갓난아기나 어른이나
그 마음은 하나인 것을.

돌아와 보니 새롭고 특이한 것 없어
다른 생각으로 내달리기 쉽지만,
만약 다시금 떠난다면
영원토록 돌아올 길 없으리.

분향하고 머리 조아려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라.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 <나를 찾아가는 길>에 나오는 ‘나에게 돌아가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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