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일본 교과서에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비중이 크지만 국내 고교 한국사 교과서 2종에는 사진조차 실리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관순에 대한 논쟁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역사에 관한 논란을 살펴 보다 보면, 그 중 상당수가 인물에 관한 논쟁임을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 자체가 원래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논란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인물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게 자연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쉽게 깨닫게 된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한 인물이 ‘영웅’에서 ‘인간 말종’까지 너무나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인물평가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지는 것이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차이가 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이 심하게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인물 평가라는 것이 현실적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현실적 필요에 따라 특정인물을 부각시키거나 매장시키는 일은 흔했다. 유관순의 모델이 된 잔 다르크부터가 바로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잔 다르크가 활약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떠받들어 왔는 줄 안다. 하지만 실상은 잔 다르크가 죽은 후, 수백년동안 그녀는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런 잔다르크를 발굴해서 지금처럼 프랑스의 영웅으로 만들어 낸 장본인은 드골이다. 영국으로 망명한 일부 프랑스군을 이끌고 독일에 저항하던 그는, 독일에 점령당해 좌절감에 젖어 있던 프랑스 사람들에게 저항의 상징으로 삼을 만한 영웅 모델이 필요했다. 그런 영웅을 제시하기 위해 발굴해 낸 인물이 바로 잔 다르크였다.

그나마 잔다르크는 드골이 사리사욕 채우기 위해 발굴해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업적을 남기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받는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프랑스를 구하라는 사명을 내렸다고 믿는 광신자를 당시 프랑스 왕이 이용해먹었고, 드골이 또다시 발굴해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광신자라는 말이 좀 심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영웅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내면 후유증이 적지 않다.

하나님이 하필 프랑스라는 특정 국가의 편을 들었다는 뜻이니, 영국사람들은 악마가 되어야 하는가? 이런 하나님이라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인류가 떠받들어야 할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특정 인물에게 특정 국가 구하라는 사명을 내렸다는 사실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말하는 곰이 마늘 먹고 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징이 아닌 액면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렇게 편파적이라고 해석하니, 진짜 원흉들은 손도 대지 못하면서 애꿎은 사람들 죽여 놓고 스스로 영웅 행세 하는 풍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것이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발굴해 낸 영웅의 이면이다. 현실적인 필요가 강조되기 때문에 오히려 영웅 자체의 실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기 쉽다. 그러니 진정한 영웅을 발굴하고 싶으면 사회에서 공인 받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연히 일본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점 같은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일본 역시 어떤 기준에서 그녀를 교과서에 올려놓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부 전문가들 말로는, 일본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을 발굴하는 대범함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일본의 침략을 막는데 공을 세워 한국 사람의 영웅이 된 이순신도, 잔다르크처럼 수백년동안 잊혀져 있다가 일본 사람들이 발굴한 영웅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반면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행적에 방패막이 하는데 이용된 인물이니, 오히려 일본에서 거부감 가질 이유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건 일본의 기준일 뿐 우리 사회에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기준은 아니다.

이렇게 보자면 유관순을 둘러싼 논쟁도, 어찌 보면 유관순 자체보다 그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유관순에 대한 논쟁이 제대로 되려면, 그녀가 같은 행동을 한 학생들 중에 특별한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할 이유를 제시해서 검증에 이어 공인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이런 일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 유관순을 이용해서 현실적인 욕심 채우기가 우선이다. 일부 전문가들 입에서는 유관순이 이미 유명해진 인물이기 때문에, 실체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여기에 유명인이 없는 특정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 덧붙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 많은 학생 중에서 하필 그녀의 이름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나 배경 같은 것은 관심조차 갖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유관순의 실제 행적과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보다, 그녀를 이용해서 지원 끌어들이는 이권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유관순 마케팅’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자신이 어떤 행적을 남기느냐보다, 나중에 어떻게 행적을 포장해주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이런 행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한 연구자의 실언이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김활란이나 박인덕 같은 친일파가 추천했다는 이유로 유관순이라는 인물 자체까지 깎아내리는 태도를 보인 점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친일파가 아니더라도 유관순을 추천한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언행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실언이라고 공인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이런 일로 말꼬리 잡아 용공조작을 하려는 행태는, 실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짓이다. 사실 유관순은 일부 검인정 교과서 뿐 아니라 국정교과서에서도 빠져 있었다. 그럼 그들 모두가 종북·좌빨이었다는 뜻인가?

이런 짓을 비호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나서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행각은 씁쓸할 뿐이다. 한선교 의원은 권희영 교수처럼 ‘북한에서 유관순을 모른다’는 말꼬리를 잡아 종북으로 몰아대는 사례가 있었음을 뻔히 보면서, ‘일부 일본 교과서에 수록돼 있으니 우리도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꼴이다. 북한을 따라 하면 절대 안 되는 짓이고, 일본은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논리이니 이중 잣대 이상이 될 것 같지 않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코앞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악용하는 짓을 비호하니 불신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태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절망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에 존경할 만한 인물을 발굴해내서 모범으로 삼자는 자체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다양한 측면의 검증을 막아 놓은 채,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영웅을 조작해 내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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