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군인부터 동화작가·영화감독까지… 色다르네

대기업 오너家 2·3세, 색다른 행보
가업 물려받아도 좋지만 내 인생은 내가
재벌의 새로운 추세 되나?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어느 순간부터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말이 생겼다. 드라마 등에서 신데렐라 스토리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젊고 잘생겼으며 흔히 말하는 ‘부티’나는 남자배우들이 주로 대기업 ‘회장님’ 아들 역할, 즉 ‘실장님’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극 중 ‘실장님’들은 주로 나이가 지긋한 회장님의 아들로서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재직한다. 이 같은 설정은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실제로도 대기업 회장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이끌어가고 있는 기업을 물려받는 일이 대부분이며 그리고 여기서 마치 서양의 ‘Jr.’처럼 ‘재벌 2세·3세’라는 말도 탄생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는 ‘아버지 회사 물려받기’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부모가 미리 닦아놓은 길을 걷지 않고 본인 스스로 인생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2·3세들이 등장하고 있어 화제다.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삼남 김동선 ⓒ뉴시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삼남,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 김동선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김동선씨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동선씨는 이달 초 마무리된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 개인전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가대표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동선씨가 이렇게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당시 17세로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았기 때문. 뿐만 아니라 동선씨는 고등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당당하게 시상대의 제일 높은 자리에 섰다.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한 2006년 이후로도 2010년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고 인천에서 열린 이번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땄다. 또 지난달 23일 있었던 마장마술 개인전에서도 2위를 하면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면서 동선씨는 2006년부터 3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내리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손에 넣었고 자연스럽게 병역문제에서도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다.
 
국가대표로서 전국민의 응원을 받았던 동선씨는 현재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와 선수로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개인전 경기가 끝난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동선씨는 “은퇴 전 마지막 경기였다”고 밝히면서 한화그룹에 들어가 아버지인 김승연 회장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선씨는 한화건설 매니저로 입사해 이라크 신도시 건설 현장에 파견됐으며 국가대표가 아닌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 SK그룹 최태원 회장 차녀 최민정
SK그룹 최태원 회장 차녀, ‘진짜 사나이’보다 더 진짜 군인 최민정
 
지난달 방영된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최정상 인기 여자 아이돌인 걸스데이 혜리는 부사관 체험을 하면서 의외의 면모를 선보였고 또 아이돌다운 치명적인 애교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텔레비전 속 아이돌은 아이돌일 뿐이었다. 지난달 15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117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입소식에 얼굴을 비춘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차녀 민정씨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재벌가의 딸들은 결혼 후 조용히 남편을 내조하거나 백화점, 명품 갤러리, 베이커리 사업 등에 뛰어들어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군인의 길을 택한 민정씨가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병역의무가 있는 아들도 아닌 딸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또 민정씨가 베이징대에 다니던 시절에도 집안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장학금과 입시학원 강사,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등으로 스스로 학비를 충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한 민정씨는 필기와 면접, 신체검사까지 거쳐 8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항해병과를 지원한 민정씨는 이날 입소식 후 복종주·극기주·단결주·명예주 등 11주 동안 단계별로 훈련을 마친 후 오는 11월 28일 소위로 정식 임관하게 된다.
 
이날 입소식에서 민정씨는 별다른 소감을 밝히지 않았다. 어머니인 노소영씨가 민정씨를 대신해 최태원 회장이 민정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삼남 이성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삼남, 색깔 있는 영화감독 이성한
 
2008년 영화 ‘스페어’를 연출하며 영화인의 길을 걷고 있는 이성한씨도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임대주택의 신화’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의 삼남인 성한씨는 ‘스페어(2008)’, ‘바람(2009)’, ‘히트(2011)’를 차례로 연출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히 성한씨가 연출한 영화 중 ‘바람’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역으로 인기를 모은 배우 정우와 ‘해태’역을 맡았던 배우 손호준이 같이 출연한 것으로 다시 한 번 소개되면서 재상영되기도 했다.
 
스페어, 바람, 히트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감독의 데뷔작으로서 성공적이다(스페어)’, ‘한 장면, 한 장면 버릴 게 없고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영화(바람)’ 등의 관객 평가를 이끌어냈다. 성한씨는 현재 독특하고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감독, 뚝심 있는 감독으로 충무로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차녀 조현민 ⓒ뉴시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차녀,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 동화작가 조현민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카피의 대한항공 광고는 누구나 한 번쯤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한항공의 새로운 광고들은 승무원이 제공하는 편안한 서비스, 취항지 등을 강조했던 기존의 광고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이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소개하고 감성을 자극하면서 각종 광고 시상식을 휩쓸었다.
 
이러한 광고를 기획·진행한 것은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팀장인 조현민씨다. 앞서 소개한 대기업 회장 자녀들과 조금 다른 것은 현민씨는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뉴질랜드 광고에서 직접 번지점프를 뛰면서 ‘번지녀’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얻기도 한 현민씨는 지난 7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일본 오키나와’를 펴내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당시 출판을 기념해 이뤄진 ‘작가와의 대화 시간’ 자리에서 현민씨는 동화를 쓴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일본 오키나와’ 책을 접한 독자들도 재미있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여권 발급, 여행 가방 챙기기, 비행기 내 에티켓, 간단한 생활 일본어 등도 함께 담겨있어 어린이들을 위한 적절한 여행 가이드북 같아 매력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현민씨는 이달 29일 두 번째 책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미국 윌리엄스버그’까지 세상에 선보이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
 
   
▲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장남 박서원 ⓒ뉴시스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장남, ‘바른생각’ 콘돔 만드는 광고인 박서원
 
최근 일본의 한 콘돔 브랜드가 일제강점기 때 군수물자로 콘돔을 공급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한 남성이 본인의 SNS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사가 그랬었구나… 열받네… ○사는 반드시 넘는다!”
 
이렇게 글을 남긴 사람은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씨로 서원씨가 대표로 있는 빅앤트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바른생각’이라는 이름의 콘돔을 출시했다.
 
사실 서원씨는 ‘바른생각’을 출시하기 전 2009년 반전(反戰)을 주제로 한 광고 작품으로 세계 5대 광고제(칸, 뉴욕페스티벌, 클리오 광고제, D&AD, 원쇼)를 휩쓸며 광고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두산그룹에도 오리콤이라는 광고회사가 계열사로 있지만 서원씨는 당시 오리콤에 입사하지 않았다(이달 1일부터 부사장으로 선임됐다). 대신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재학 중이던 2006년 본인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빅앤트를 설립해 홀로서기를 시도, 성공한 것이다.
 
잘 나가는 광고인인 서원씨가 갑작스럽게 콘돔 브랜드를 출시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서원씨는 ‘바른생각’은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혼모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만의 생각과 비전을 드러냈다.
 
이렇게 타 대기업의 자녀들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예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 오너들의 비리와 자녀들의 낙하산 채용 등의 뉴스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 ‘저 사람들은 좀 다르구나’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대기업 오너 부모님의 배경을 뒤에 업고 탄탄대로를 달린 것이 아니라 결국 본인이 노력해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며 칭찬해줄 만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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