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벽·백운대, 사람도 나무도 가을정취에 취하다

   
▲ 단풍

가을빛을 채 느끼기도 전에 초겨울이 다가온 듯하다. 지난 28일 서울에 첫 서리가 내렸고 강원산간과 경기 북부 등 일부 지역은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졌다는 기상청 소식이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겨울을 향하고 있다. 성급한 이들 중에는 벌써 덕다운 재킷을 챙겨 입은 이도 있고, 목도리로 중무장한 이도 출근길에서 마주친다. 산을 자주 찾다보니 단풍이 어느 시점이면 예쁘게 물드는지 대략 알기에 10월의 마지막 날 북한산으로 단풍산행을 다녀왔다.

함께할 일행을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오전 9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필자의 집에서 불광역까지 대략 1시간 30분 소요되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전 6시에 기상해 아침을 챙겨먹고 배낭을 꾸려 대략 7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이번엔 암벽산행이 아니어서 간단한 점심거리, 휴대용의자, 식수, 타프 등만 챙겼다. 그래서인지 배낭이 가뿐하다. 암벽등반을 할 때는 장비 무게만 10kg 전후다. 불광동에 위치한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려면 3호선 불광역에 하차하여 7번 출구를 나와서 출구를 끼고 돌아 직진하면 된다. 9시경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북한산을 가려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 붉은단풍

오늘 산행코스는 효자비 ☞ 숨은벽 ☞ 백운대, 인수봉사이 ☞ 인수야영장 ☞ 도선사 주차장으로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불광동에서 버스를 타고 시작점인 효자비 정거장에 내리니 온통 등산객 천지로 정신이 없다. 그만큼 지는 가을 단풍을 눈 속에 담으려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효자비 유래는 말 그대로 조선말 ‘박태성’이라는 이름난 효자에게서 유래된 지명이다. 서울 효자동에 박태성이라는 이가 살았는데 품성이 온화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묘를 이곳 ‘고양시 신도읍 효자리’에 모시고 매일같이 묘소를 참배한 후에 입궐하였다고 한다. 박태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년을 쉬지 않고 참배하였다고 하는데, 참배 길에서 만난 호랑이가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 그를 태워 참배 길에 동행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의 효행은 조정에 까지 널리 알려져 이를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조선 고종30년(1893년)에 이곳에 효자비를 세우고 포상 하였다고 한다.

효자비를 뒤로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북한산은 워낙 유명한 산이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많다. 산을 오르다 보면 지역명, 학교명 등을 배낭에 새겨 넣은 산악 회원들이 부지기수다.

효자비에서 백운대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처음엔 살짝 경사져 있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완만해진다. 산행 중 1~2회 쉬면서 천천히 가다보면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백운대, 북한산둘레길(교현리), 밤골공원지킴터, 이렇게 세 갈래 길로 나뉜다. 우리는 백운대로 향했다. 이곳에서 백운대까지의 거리는 대략 3km정도이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길 곳곳이 알록달록 단풍에 물든 나무들로 가득하다.

   
▲ 백운대 뒤편에서 바라본 단풍

가뭄이라 그런지 단풍이 채들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지는 나무도 눈에 띤다. 백운대 뒤쪽 등산로가 그늘이 져서 조금 어둡지만 그래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암릉 구간도 장엄해 보인다. 오르막길 구간을 올라와 숨은벽이 보일쯤 시간은 11시 30분을 가리킨다.

넓은 마당처럼 펼쳐진 바위에는 이른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얼핏 보면 화려한 등산복으로 인해 단풍보다 더 알록달록하다. 우리 일행은 숨은벽을 지나기 전에 식사를 하기로 하여 숨은벽 쪽으로 이동하였다. 숨은벽 밑의 넓은 장소를 잡아 배낭을 풀고 각기 가져온 점심거리를 풀었는데, 흡사 뷔페에 온 것 같다. 전문가의 손길이 깃든 김밥, 모시떡, 두부부침, 샌드위치, 야채볶음, 명이나물절임, 멍게젓갈, 연근조림, 마늘절임 등 없는 게 없다. 산행에서의 음주는 바로 안전과 직결되기에 가급적이면 산행을 마친 하산 후에 하는 게 좋다. 그리고 산에서의 중식은 장거리 산행이 아니라면 가볍게 준비하는 게 좋다. 배불리 먹고 움직이면 몸도 무겁고 위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중식을 마친 후 숨은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지나가려는데 기다리는 줄이 도무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숨은벽 바로 밑을 통과하기가 조금 힘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체가 생기는 것 같다. 기다리면서 숨은벽을 바라보니 헬멧과 장비를 착용한 팀들이 슬랩구간을 오르는 것이 보인다. 매년 9월 둘째 주에서 10월 셋째 주까지는 전국 등산학교들의 교육기간으로 6주간의 교육기간이 끝나면 인수봉, 선인봉, 만장봉, 숨은벽 등지에서 각 학교의 졸업생들이 실전 등반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골프입문처럼 ‘머리 올린다’는 개념의 합동등반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여서 이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 숨은벽 밑

숨은벽을 지나 백운대 뒤편을 올라가는데, 오르막길 구간이 상당히 가파르다. 게다가 마지막구간에는 나무계단까지 있어 조금은 성가시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오면 우측은 백운대, 좌측은 인수봉이다. 우리는 백운대를 올라갈까 하고 살펴보았으나 북한산 단풍을 보러온 등산객들이 줄을 서서 이동할 정도로 많아 인수야영장 쪽으로 가기로 했다. 인수야영장에서 하루재를 거쳐 영봉으로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부쩍 해가 짧아져 곧장 도선사 주차장을 거쳐 우이동 종점으로 내려왔다. 단풍잎 곱게 물든 북한산에서 지친 일상을 내려놓고 가는 가을을 행복하게 보냈다. 무엇보다 일행 모두 안전하게 산행을 마쳤으니 더없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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